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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Oct 05. 2019

조커의 모습에서 보는 나의 모습




영화 <조커>를 보고 나서 일단 연기에 먼저 반응했다. 지금까지 영화화된 배트맨의 조커들은 대부분 훌륭했지만,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조커>가 이렇게 대단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호아킨 피닉스는 웃으면서 울고, 웃으면서 화를 냈다. 그 차이를 아주 쉽게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웃음 속에 감춰진 감정을 잘 전달했다. 불쌍해 보이던 아서가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대단해 보이도록 만들고 그 캐릭터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만들었다.


사실 우리 모두는 그런 경험이 있다. 자신이 가진 어떤 것을 이용해 취업을 하고 최대한 삶을 이어나가려 한다. 하지만 어떤 때에는 자신에 대해 주변에서 인정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때가 있다. 학교 생활을 해도, 사회생활을 해도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그래서 대부분은 우울해지고, 자존감은 무너진다. 그리고 결국에는 분노가 찾아온다. 각자 자신만이 가진 분노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너지는 감정의 폭도 모두 다를 것이다.


나의 자존감은 유리 같아서 자주 깨진다. 깨진 유리를 다시 새로 갈아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늘 주변 사람을 신경 쓰고, 주변의 감정을 신경 쓰며 살았다. 그래서 더욱 나 자신을 감추고,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웃음을 보였을지 모른다. 진심으로 웃는 때도 많지만, 어떤 경우엔 아서와 같이 가짜 웃음을 연신 지어야 했다. 물론 상대방은 그 속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 없다. 내가 상처 받은 만큼 내가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줬을지도 모른다.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서 보다 가식적인 관계들이 시작된다. 직장 상사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고 웃음을 짓는다.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이 보이지 않는다. 직장생활을 할 때도 많은 사람이 나를 깎아내렸다. 그들은 내 발전을 위해 여러 가지 조언을 던진다. 물론 도움이 되는 말도 있다. 하지만 어떤 때에는 분노가 치밀어오기도 한다. 영화 속 아서와 같이 그들에게 총알을 날리거나 펀치를 날릴 수는 없다. 그저 참다 참다 사표를 내밀로 회사에서 도망쳐 나올 뿐이다.



그렇게 잘 참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면 나를 인정해 줄거라 생각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매주 글을 쓰기 시작한 지 2년이 다되어가지만 내 글에 대한 자신감은 붙지 않는다. 여전히 내가 나의 글을 SNS나 카카오톡에 공유하는 것은 굉장히 불편한 일이다. 그저 쉬운 클릭 몇 번이지만 할까 말까 늘 한참을 망설이다 공유한다. 어쩌면 글에 대한 반응이 신경 쓰이고 자신이 없어서 일 것이다. 써온 글이 300개가 가까워지고 있지만 내 글에 만족한 적이 별로 없다. 크게 히트한 글도 없다. 어떤 때에는 그런 것들에 분노가 치민다.  


영화 <조커>의 아서가 조커가 되는 과정은 감정적으로 이해가 간다. 그는 나보다는 훨씬 더 나쁜 조건에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가 총을 들고 엘리트들에게 총질을 하게 된 순간, 그의 분노가 발산되고 잃어버린 자존감을 회복했을 것이다. 어쩌면 현실적으로 최악의 방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커에게 그 분노 외에는 가진 것이 없었다. 그는 그의 가족이나 친구로부터 전혀 위로를 받지 못했다. 주변에 그를 격려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는 사람은 영화 속에서 딱 한 명뿐이었다.


내 자존감이 무너지더라도 나는 주변에 나를 위로해 줄 많은 사람이 있다. <조커>를 보며 나를 떠 올린 건 내가 늘 나를 바보나 실패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늘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매번 따라오지는 않았다. 글을 쓰는 것도 크게 반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랑하고 공유하는 것은 늘 익숙해지지 않고, 그 반응까지 신경 쓰다 보니 더욱 자존감은 떨어져 갔다. 그런 모습 속에서 내 안의 ‘조커’를 본다. 그리고는 내 주변의 가족과 친구를 본다. 내 안의 ‘조커’가 표출되지 않도록 내 옆에 있어줄 그들은 내가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도록 말을 건넨다. 그런 위로 아래서 내 안의 분노는 점차 사그라든다.


<조커> 안에서 나를 발견했지만, 그가 가지지 못한 내 주변의 빛들도 다시 발견한다. 재미있는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훌륭한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내 이야기를 할 수는 있겠구나. 이렇게 써 내려가야 하는구나.

그렇게 안도하며 다시 글을 써 내려간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내가 조커가 되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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