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도 삶은 계속 이어진다. 구분하는 숫자만 바뀌었을 뿐, 일상은 바뀔 것이 없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도 바뀔 것은 없다. 나와 아내, 그리고 아이 모두 그저 똑같은 하루를 맞고 또 보낸다. 새해 첫날, 내 머릿속은 사실 복잡했다. 아내와 아이를 중국으로 보낼 시기가 점점 다가오고 있어 잠이 오지 않는다. 어떤 방식으로 주말에 비행기를 타고, 중국에 도착해 집으로 향할지 이런저런 생각이 맴돈다. 아마도 올해는 계속 이런 고민을 하며 보내게 될 것 같다.
이번 새해 첫날은 이런저런 고민 속에 장모님 댁에서 보내게 되었다. 아이는 외할머니 집에서 보낸다는 말에 연신 뛰면서 신나 했고, 아내는 아내 나름대로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니 기뻐했다. 나에게도 나름 편한 장소였으니 가족 모두가 만족할 만한 시간을 보낼 기회를 얻었다. 장모님 댁에 도착해서도 아내는 일하기 바쁘다. 그 가운데 여전히 내 머릿속은 복잡했고 잠은 오지 않았다.
늘 어떤 문제에 직면하면 머릿속에서 그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누군가 관계가 틀어지거나 다투면 그걸 가능한 한 빨리 해결해야 마음이 놓였고, 그것이 풀리기 전까지 고민하는 그 순간순간이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부모님과 관계가 틀어졌을 때나 학교나 회사에서 해야 할 큰일이 있을 때면 늘 잠을 설쳤다. 혼자 끙끙 앓으며 그것을 이겨내려 노력하는 성향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이야기를 하지 않고 혼자 고민하며 그것을 해결하려 한다. 이런 성향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주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그나마 아내를 만나고 나서는 머릿속이 복잡하면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어렵게 입을 떼면 그때부턴 한결 이야기하기 편하다. 그런 대화가 결론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2020년의 고민은 나의 고민이기도 하지만 아내의 고민이기도 하다. 그에 더해 아내는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까지 고민한다. 그래서 어쩌면 나보단 아내의 머릿속이 더 복잡할지도 모른다.
장모님 댁에서 보내는 일주일 정도의 시간은 아내에게 일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육아에 대한 부담을 덜어 일에 집중하고 다른 지방으로 출장까지 다녀올 수 있는 그 시간을 아내는 허투루 쓰지 않는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아이와 놀면서 내 시간도 보낸다. 하지만 여전히 머리는 복잡하고 이야기할 상대는 마땅치 않다. 그저 아이와 밖에서 산책을 하고, 장난감으로 역할 놀이를 하고, 아이가 잘 땐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장모님은 아내가 없는 그 시간에도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주신다. 특별히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준비해 아이에게 밥을 먹이신다. 아이는 넙죽넙죽 밥을 받아 연신 오물거린다. 확실히 아이는 외할머니가 해주는 음식이 입에 맞는 모양이다. 나도 그에 질세라 열심히 먹는다. 맛있는 생선찜과, 고기탕이 내 손을 바쁘게 만든다.
사실 장모님이 아이를 위해 음식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내가 없어도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준비하셔서 아이가 잘 먹을 수 있게 해 준다고 생각했다. 밥 먹는 시간에 장모님은 아이에게 연신 밥과 음식을 떠먹여 주셨으니까. 그렇게 밥을 먹다 어느 순간 돼지고기 탕을 먹다가 탕 속의 고기들을 봤다. 그 고기들은 내가 편하게 먹을 수 있게 내 앞에 고스란히 모여있었다.
"고기 냄비에 또 있으니까 많이 먹어. 여기 당근이 거는 있어 이거는 네가 다 먹어"
"너무 많아요. 장모님, 그래도 너무 맛있어요!"
중국말로 천천히 이야기하시는 장모님은 아이뿐만 아니라 나를 챙기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야채볶음을 하시고, 아침에는 밖에서 파는 빵을 사 와 두유와 함께 주셨다. 아이에게 집중하시는 듯 보이지만, 내가 먹을 무언가는 확실히 먼저 챙겨 두셨다. 그리고 밤에 아이가 잠들고 나면 늘 주시는 것이 있다.
"그 술 먹을래? 기분 안 좋을 때 먹으면 좋아!"
"아 장모님이 담근 그 술이요? 하하. 네 주세요"
장모님이 담근 술이 있다. 매실주와 비슷한 그 술은 늘 내가 오는 날이면 밤에 한 그릇을 떠주신다. 아내가 출장 간 그 날은 묻지도 않으시고 술을 떠 놓으셨다. 아이를 재우고 나오는 내게 술을 한 잔 먹으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신다. 아내의 일 이야기, 처남의 이야기, 아이의 이야기 등등 내가 100% 알아듣지 못하는 걸 아시겠지만 계속 이야기를 해주신다. 그렇게 장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복잡한 머릿속을 잠시 비워둔다. 술 한 잔과 함께.
이렇게 새해의 삶도 이어진다. 올해는 장모님의 이야기 그리고 장모님의 술과 함께 새해를 시작한다. 커가는 아이도, 일하는 아내도, 고민하는 나도 어차피 같이 맞이해야 할 같은 새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가봐야 안다. 장모님이 해주시는 사소한 이야기들처럼 언젠가는 올해의 일들도 그저 사소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새해 첫 주, 장모님 댁에서 장모님의 사랑을 다시 봤다. 나에게 몰려있는 고기, 그리고 날 위해 준비된 술을 보며 올해도 꽤 좋은 해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게 내 고민을 살짝 내려놓는다.
장모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