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생기고 이제 아이에게도 외가와 친가가 생겼다. 아이는 친가에 가는 것도, 외가에 가는 것도 좋아한다. 아이에게 친가 혹은 외가에 간다고 하면 일단 기뻐한다.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이야기하고,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외할머니와 같이 놀 거라고 이야기한다. 가면 아이를 위해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고 반가워한다. 할머니는 사탕과 젤리를 건네고, 할아버지는 과일을 건넨다. 외할머니는 한국에서 먹지 못했던 빵과 다과를 건넨다. 그걸 받아 든 아이는 연신 뛰며 자신의 기분 좋음을 티 낸다.
나의 외가와 친가는 분위기 자체가 달랐다. 친가는 산골짜기를 들어가고 들어가 작은 농촌 마을에 위치해있었고, 가면 맑은 공기와 자연 속에서 뛰어놀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때 까지는 가는 길이 힘들어도 막상 도착하면 꽤 재미있게 놀았다. 도착하면 늘 할머니, 할아버지가 반겨주셨는데 특히 할머니가 더 반겨주셨다. 한참 동생과 놀고 있으면 가만히 보고 계시다 다가오셔서 작은 봉지사탕 두 개를 우리 손에 쥐어 주셨다.
"너그들 이거 하나씩 묵어래이. 달콤하다카이"
시골에서 찾기 힘든 달콤한 그 사탕은 나와 동생의 입을 달콤하게 적셨다. 그렇게 입을 오물거리는 우리를 할머니는 한참이나 흐뭇해하며 바라보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당시에는 대하기 어색하고 어려웠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그 대면 대면함은 지속되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시골에 가는 건 신나면서도 할머니, 할아버지는 친숙해지기엔 조금 어렵게 느껴졌다. 두 분이 계시지 않은 지금, 한 번도 반갑게 인사를 못했던 건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할머니와는 특별히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볼 기회가 없었다.
반면 외가는 도심지에 있었다. 부산에서 서울로 이사하신 후로는 꽤 자주 방문할 기회가 생겼었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외할머니는 대학시절까지 뵐 수 있었다. 외할머니는 나와 동생에게 많은 것을 주셨다. 특히 먹는 것을 잘 챙겨주셨는데, 늘 맛있는 밥도 수북이 퍼주시고, 달콤한 사탕이나 과일도 쉼 없이 쥐어주셨다. 외할머니에 대한 마지막 기억은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신 후, 내가 대학 친구들과 외할머니 댁에 방문했을 때다. 몸이 불편해 걷기도 불편하고, 앉았다 일어서기도 불편하셨던 외할머니는 나와 친구들이 극구 말리는데도 밥 한 상을 차려야 한다며 준비를 하셨다. 미역국을 끓여 주신다고 고기와 재료를 준비하시고 요리를 하려고 하는 외할머니를 말릴 수가 없었다.
"내가 밥 한 끼는 차려줘야 안 되겠나"
"할머니 제가 요리는 할테니까 어떻게 하는지 옆에서 설명해 주세요. 제가 직접 할게요"
"그랄끼가. 괘안켄나? 어휴 힘들어서 우짜노"
할머니의 지시를 받아 아바타 요리사가 되어 이런저런 요리를 완성했다. 외할머니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서인지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외할머니는 그렇게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챙겨주시고 좋아해 주셨다. 그리고 좀 더 가깝게 찾아뵐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덜 어색했던 것 같다.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따뜻함은 사실은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단지 그걸 느끼는 내가 차이를 생각하는 것일 뿐, 할머니가 사탕을 주시던 마음과 외할머니가 요리를 해주시던 마음은 결국 같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나와 동생이 노는 모습을 멀리서 보시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내가 아이를 볼 때, 늘 마음이 따뜻해진다. 멀리서 아이가 노는 것을 보고 있으면, 아이의 그 모습 자체가 사랑스러워 마냥 보게 된다. 그렇게 빤히 보고 있으면 아이는 내 손을 잡아끌어 자신의 놀이에 참여시킨다. 아이를 바라볼 때 느끼는 그 따뜻함을 아이의 외할머니와 할머니도 똑같이 느낄 것이다. 아이는 외가를 가도, 친가를 가도 사랑받는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에게 사탕과 맛있는 밥이 골고루 주어진다. 아이는 그 사랑을 아는지, 그들을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할머니, 외할머니 사랑해요"
지금 내게는 할머니도, 외할머니도 없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여전히 할머니, 외할머니가 있다. 내가 그들에게 사랑받았던 것처럼 아이도 오래오래 그 사랑을 받고 또 아이 나름의 사랑을 그들에게 주었으면 좋겠다. 또한 아이가 그 사랑을 구분하지 않고 같은 종류의 사랑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좋겠다. 그들의 국적이 다르고 표현하는 방식도 다르다. 그리고 그들이 주는 음식도 다르다. 아직까지 아이는 그 다름을 크게 인지하지 못한다. 외가에 가면 외가의 방식을 받아들이고, 친가에 가면 친가의 방식을 받아들인다. 어쩌면 아이는 이미 적응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외가에 가면 중국말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외할머니에게 애교를 부린다. 반면 친가에 가면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할머니에게 안아달라고 떼를 쓴다. 외할머니와 할머니, 그들의 방식은 다르겠지만, 결국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으니까. 아이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