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가장 친한 친구와 다툴 때가 있었다. 잘 싸우지 않지만 한 번 말싸움이 시작되면 결국 큰소리를 치게 된다. 나와 이렇게나 가깝고 친한 친구인데, 특정 사안에 대해서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왜 내가 이야기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지 큰소리로 되물었던 기억이 있다. 생각해보면 나도 힘들고 그에 대항하는 친구도 힘든 일이었다. 바로 풀기보다는 하루 이틀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이야기를 해보면 별문제 없이 다시 예전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서로를 발견한다.
가족과도 마찬가지다. 부모님 그리고 동생과는 싸울 일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부모님과는 대립하기보다는 혼나는 위치에 있었기도 하고, 굳이 부모님의 의견에 대항하는 기질은 아니었기 때문에 대체로 부모님의 말을 잘 따라 대립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동생과는 자주 의견 대립이 있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한 살이 많다는 이유로 내가 옳다고 내 의견을 밀어붙였던 것 같다. 동생이 옳았던 적도 있었을 텐데, 서로 그런 이해를 먼저 하기보다는 그저 내 기분의 상함을 앞세워 큰소리를 치기 바빴다. 그렇게 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된 건 성인이 된 이후에도 한참이나 지나서였다.
원체 누구와 대립적인 관계를 만들고 그런 일을 하지 않는 성향을 가졌다. 아마도 내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기보다는 먼저 듣고 그에 대해 방향을 맞춰 반응을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와 대립하고 싸워야 할 때, 그리고 누군가가 나에게 화가 났을 때는 심장이 요동친다. 순간 그 사람의 적이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계속 불편하고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리고 내가 상대방을 생각하며 맞춰준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지나고 보면 실제로는 그 사람을 더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그 안엔 그 관계가 잘못될 거라는 두려움이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나와의 관계를 끊고 가버릴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내 행동을 더욱 움츠러들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도 마찬가지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어떤 방식으로 풀어줘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 낙담하는 상황을 만든다. 그러다 나도 화를 내거나 이별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아내와 만나고 아내와는 크게 싸울 일이 없었다. 연애할 때는 한 번도 다툰 적이 없다. 결혼을 하고 같이 생활을 하면서도 크게 다툴일이 없었다. 초반엔 나이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몇 년이 지나서는 성격이 맞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내를 만난 지 8년이 다되어가는 지금은 서로 다른 생각이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어떤 때는 둘 간에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아주 사소한 문제로 논쟁이 되다가도 적당한 위치에서 의견을 조율하고 방향을 정한다. 대부분의 부부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의견을 알아가는 과정이 결혼 인지도 모르겠다.
서로 아주 잘 맞는 것만 같았던 나와 아내는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더욱 자주 논쟁을 벌인다. 가장 많은 경우가 감기에 대한 태도일 일 것 같다. 아내는 다른 질병에 대해서는 병원을 바로 가는 편이지만 감기만큼은 고열이 나지 않는 이상 병원을 잘 가지 않는다. 감기약도 잘 먹지 않고, 특히 항생제는 최대한 지양한다. 이 태도는 아이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아이가 기침과 콧물 정도의 증상이라면 최대한 물을 많이 먹이고, 따뜻한 옷을 입히는 등 자연적으로 나을 수 있게 돕는다. 아내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감기와 맞서 싸워 이겨낼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감기와 싸우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증상이 꽤 오래가는 경우가 있다. 열은 없지만 기침이 심한 경우, 보는 부모는 괴롭다. 그래서 못 참고 병원을 보내고 싶어 진다. 이런 상황에도 아내는 인내심 있게 아이의 증상을 세세히 살핀다. 열을 재고, 따뜻한 물을 수시로 먹이고, 배 진액을 준비해 아침저녁으로 먹인다. 아내는 그렇게 아이와 있는 시간에 아이를 세세하게 살핀다. 병원을 가야 할 상황인지 아니면 좀 더 상황을 지켜볼지를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이것이 아내가 감기를 대하는 태도다.
얼마 전에 아이가 기침감기에 걸렸었다. 조금 나아지다 다시 심해졌다를 몇 번 반복했다. 기간이 길어지자 내가 보기 괴로웠다.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와 다시 논쟁을 벌였다. 감기는 치료제가 없고 단지 증상을 완화시켜줄 뿐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아내와 그래도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는 것 같으니 조금이라도 먹여보자는 나의 입장이 서로의 입을 통해 상대방의 귀로 들어간다.
"우리 이제 병원에 보내요"
"이제 좀 나아진 거 같아요. 조금만 더 버텨봐요"
"아이가 힘들어하잖아요"
"약 먹으면 감기가 다 치료되는 건 아니잖아요. 대부분의 감기 바이러스는 치료제가 없어요."
늘 같은 논쟁이다. 결국 병원에 다녀오기로 하고 약도 받아왔다. 아내는 약은 끝내 먹이길 거부했다. 아내가 설득되지 않아 화가 난 나는 그냥 약을 뜯기 시작했다. 아이를 불러 약을 건네며 약 먹는 방법을 설명해 준다.
"당근아 저녁 다 먹었으니까 이거 약 한 번 먹자. 기침이 나을 거야"
"자기가 뭐 하는 거예요!!!"
약을 먹였고, 아내는 그저 화난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그렇게 그 밤은 서로 대화를 하지 않은 채 지나갔다. 늘 그렇지만, 말을 하지 않는 아내는 무섭다. 이 사람도 결국 나의 모습에 실망해 떠나지는 않을지, 계속 날 미워하지 않을지, 혼자 생각하며 불안감을 자초한다. 서로 목소리를 높이고 감정이 상한 이후에 아내는 빨리 다시 대화를 해 풀기를 원한다. 하지만 나는 그 대화를 시작하기를 두려워한다.
그 날은 마침 우리가 만난 지 2,700일이 되는 날이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꽃배달 사이트에서 큰 꽃다발을 하나 주문했다. 오후 2시에 도착하는 그 꽃다발에 카드 메시지도 적어 아내와 다시 대화를 시작하길 원한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꽃을 받은 아내는 다행히 기분이 풀렸다. 그리고 우리는 그날 저녁 다시 대화하기 시작했다.
“어제는 내가 알던 자기가 아니었어요”
“나도 너무 화가 나서 그랬어요. 너무 걱정돼서...”
“그건 이해하는데, 이제 거의 나아가서 좀 더 기다려도 되었을 것 같아요.”
“다음엔 꼭 같이 의논해서 결정해요.”
아내도 모든 감기에 약을 먹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 번은 아이가 독감에 걸렸었다. 아이는 기운이 없어 계속 침대에 누워있었다. 다른 때와는 다르게 아내는 얼른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독감 검사를 했다. 결국 확진 판정을 받고 약을 받아왔다. 받아온 약은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모두 먹였다. 약을 다 먹고도 아이 증상이 조금 남아있어 한 번 더 병원에 방문하여 약을 처방받아 끝까지 먹였다. 독감 약은 다 나을 때까지는 끊기지 않고 먹여야 한다면서 끝까지 챙겨 먹였다. 그렇게 아이는 금방 나았다.
이런 과정은 꽤 힘들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둘 사이의 접점을 어느 정도는 찾을 수 있다. 어쩌면 이런 논쟁들이 앞으로도 계속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그걸 해결하는 건 결국 대화다. 서로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감정이나 생각을 다 알기 어렵다. 조금 두려워도, 조금 화가 나도 다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아내와 서로의 눈을 보며 대화를 할 때 다시 한번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된다. 분노했던 아내의 눈을 본 다음 날, 꽃을 보고 미소를 짓는 아내의 얼굴과 함께 다짐한다. 앞으로도 어떤 상황에서도 눈을 보며 이야기해 보겠다고.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로 중국과 한국이 모두 뒤숭숭하다. 중국의 장모님과 처남은 집에서 일주일에 3번만 나올 수 있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날 때마다 일요일에 받은 출입카드 3장 중 한 장을 내며 출입에 제한을 받고 있다. 또한 원래 이번 달 중국에 가기로 했던 아내와 아이도 서울에 머물고 있다. 조심에 조심을 하며, 혹시 감기 증상이 있으면 바로 병원에 갈 준비를 한다. 열까지 나면 바로 보건소에 전화를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런 상황이 오면 어떤 식으로 대처할지도 이미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빨리 이 상황이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한국의 상황에 대한 소식을 장모님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감염자가 늘어나기 시작하자 장모님의 문자가 부쩍 늘었다. 우리 모두 조심하자는 안부 문자다. 언젠가는 이 시기도 지나갈 것이다. 좀 더 빠르게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매일매일 해본다. 요즘은 뉴스를 보는 하루하루가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