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당연히 회사에 출근해서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추가 근무를 의미했다. 과거 집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늘 주말이나 휴일에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능하면 피하려고 했고 일이 많았던 과거에는 그렇게 피하는 노력이 허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집의 책상에 회사 노트북을 올려놓고 앉아있는 시간이 꽤 많았다.
하지만 최근 Covid 19 사태로 회사 전체 재택 근무령이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공지에 급히 나가 노트북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책상은 아내가 이미 일을 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나는 식탁에 노트북을 놓고 근무환경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휴원 중인 어린이집 때문에 내 주변을 맴돌고 있는 아이도 챙겨야 했다. 대충 일할 환경을 만들어 놓고 의자에 앉았다.
마침 첫날은 꽤 바쁜 날이었다. 거의 하루 종일 자리에 앉아 일을 처리해야 했다. 일단 아이는 집에서 주로 일하는 아내와 시간을 보냈다. 사실 아내도 많이 바쁜 가운데 아이까지 보느라 제대로 일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자기 얼마나 걸려요? 나 일 좀 해야 하는데..."
"음.. 나 30분 정도면 일단 잠시 시간이 날 것 같아요. 조금만요."
재택근무의 육아는 서로 주고받기가 잘 돼야 하는 것 같다. 내가 일이 한가할 때 육아는 내 몫이 되고, 아내가 상대적으로 한가할 때 육아는 아내의 몫이 된다. 어떤 선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적당한 시점에 주고받기가 잘 되어야 서로가 힘들지 않다. 어떤 때는 일이 끝나지 않아 상대방의 불만을 듣기 쉽다. 정말 서로 일이 많을 때면 아이에게 유튜브를 틀어주고 잠깐 보게 하고 둘 다 일을 처리한다.
아이는 정말 심심해 보인다. 유튜브를 틀어줘도 혼자 보고 있으면 재미가 없다고 한다. 10분 정도 프로젝터 화면에 집중하던 아이는 나에게 와서 장난감을 가지고 같이 놀자고 한다. 내가 바쁘다고 하면 아내에게 가서 놀자고 한다. 아내에게 마저 거절당한 아이는 다시 내 옆으로 와서 자신의 의자에 조용히 앉는다. 그리고 혼자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아... 심심하다. 아빠 너무 심심해요."
"당근아. 미안해 아빠가 얼른 이것만 처리하고 한 번 놀자."
"아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가면 안돼요?"
아이는 내 눈을 보고 묻는다. 할머니, 할아버지 집이라도 가면 안되는지.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한다. 차로 10분 거리인 부모님 댁에 갈 수는 있지만, 늘 밟히는 건 나와 아이가 가서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고생하시는 어머니 모습이다. 그런 아이의 말에 결국 부모님 댁에 방문하면 아이는 그런대로 신나 한다. 나와 아내는 덕분에 일할 시간을 벌 수 있다. 하지만 매일 그렇게 부모님 댁에 갈 수는 없다.
마침 내가 일이 좀 한가할 때, 아이와 놀면 아이는 정말 신나 한다. 진심으로 노는 걸 즐기며 깔깔대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기분이 좋아진다. 잡기 놀이를 하고, 숨바꼭질을 하고, 장난감 역할 놀이를 하다 보면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심심함을 날려버리고 노는데 집중한다.
일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아이는 다시 시무룩 해진다. 그럴 때 꺼내는 건 작은 장난감이다. 당일 배송이 되는 쇼핑몰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타요 친구들을 하나씩 예약 주문해 놓으면 하루에 하나씩 새로운 장난감이 도착한다. 오늘은 불도저 빌리, 내일은 포크레인 포코, 내일은 캐리와 봉봉이. 아이는 매일 밤 자기 전 나에게 묻는다.
"아빠 내일은 누가 와요?"
"음.. 내일은 경찰차 패트가 오지 않을까?"
"패트가 와요? 우와 신난다!!!"
아이는 잠시나마 장난감을 가지고 놀 생각에 몸이 저절로 하늘을 난다. 그 맑은 표정에 그나마 안도감이 든다. 그런데 이렇게 재택근무가 내내 이어지면 금방 월급이 동날 것 같은 불안함이 들기도 한다. 타요 친구들이 거의 다 집에 오기도 했지만.
그렇지만 장난감 만으로는 아이의 심심함을 다 날릴 수는 없다. 아이는 어떤 순간엔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한다. 식사 준비를 내가 도맡아 해야 했기에, 일하던 나의 노트북을 바닥에 내려놓고 식사 준비에 열중했다. 아이는 심심했는지 여기저기 다니면서 놀았다. 어느 순간 아이를 봤을 때, 내 노트북을 밝고 위에 올라가 있는 걸 발견했다.
"당근아! 내려와! 이거 망가지면 아빠 일 못해!!"
"아빠 미... 미안해요 엉엉. 무서워...."
내 호통에 아이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를 한 번 보고는 노트북을 살펴보는데 에러 화면인 블루스크린이 떡하니 나와있었다. 다시 한번 아이에게 이거 고장 나서 어쩔 거냐는 호통을 치고는 노트북을 재부팅했다. 여러 번의 재부팅 끝에 다시 원래 화면을 킬 수 있었다. 아이는 내 눈치를 살피더니 나에게 와서 사과한다.
"아빠 미안해요. 내가 몰랐어요. 다음에 안 올라 갈게요"
"아빠도 소리쳐서 미안해. 아빠도 다음에 이거 바닥에 안 내려놓을게. 그리고 아빠가 많이 못 놀아줘서 미안해. 아빠가 일안 하면 회사에서 혼나"
그렇게 저녁식사를 하고는 회사 노트북을 끄면서 퇴근을 한다. 아이와 차에 가서 유튜브를 보기로 했다. 아이는 차에 있는 큰 모니터로 유튜브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아이가 정말 심심해하면 아이를 앞에 앉혀 유튜브를 보게 하고, 나는 뒷자리에서 와이파이를 연결해 노트북으로 일을 한다. 한 시간 정도는 그렇게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일도 할 수 있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이가 큰 소리로 이야기한다.
"아빠 아까 미안했어요. 이제 우리는 친구야! 같이 또 놀 거야!"
"그래 우리 친구 하자!"
그렇게 나는 아이와 친구가 되었다. 이미 친구였지만, 싸운 후 다시 친구가 된 셈이다. 그리고는 기분이 완전히 풀렸는지 한 마디를 덧붙인다.
"난 아빠가 제일 좋아!"
쉽지 않은 재택근무 와중에 이런 아이의 말이 내 마음에 차곡차곡 쌓인다. 이런 따뜻함으로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