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한 달, 우울증 문턱의 아내를 만나다

by 레빗구미


2월 말부터 3월은 내내 재택근무가 이어졌다. 전 세계적으로 퍼지고 있는 코로나 19 때문에 전 세계인들이 집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일을 하고, 밥을 먹고, 놀고, 자고. 평소에 집에 있던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게 되었다.


보통은 내가 회사에 출근하게 되면 평일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아침과 밤뿐이다. 그때 아이의 밥을 챙기고, 아이와 잠깐 놀고 나면 어느덧 다시 잘 시간이 된다. 이때는 아내의 요구도, 아이의 요구도 단순하다. 그저 아이와 함께 놀아주면 된다. 떨어져 있는 10시간 남짓의 시간 때문인지 아이는 내가 나갈 때와 들어올 때 반응이 많은 편이다. 나갈 땐 무사히 다녀오라고 안아주고, 들어올 때는 내 앞으로 뛰어와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더 늘어났다. 몇 년 동안 재택근무를 이미 하고 있었던 아내와의 시간도 같이 늘어나게 되었다. 일이 많은 날엔 아이를 어린이집 긴급 보육을 이용했다. 그래도 4시에는 끝나니 아침에 내가 아이를 데려다주고, 오후에 다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저녁에는 재택근무 퇴근을 하고 나서 저녁을 먹고 놀이터로 가서 잠시 같이 시간을 보냈다. 아이 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순간이다.


한 달의 재택근무가 이어지자 아이는 익숙해졌는지, 4시에 집에 돌아와 내가 일하고 있는 식탁의자 옆에 앉아 이렇게 말한다.


"아빠 일하는 동안 잠깐 유튜브 보고 있을게요. 그리고 같이 놀아요~!"

"그래 고마워, 조금만 보고 있어~"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나마 혼자 유튜브를 가만히 보는 시간은 한 시간 정도가 최대치지만 그 시간이라도 가만히 버텨주는 아이가 고맙게 느껴진다. 내 몸이 어느덧 재택근무에 적응한 것처럼 아이도 재택근무에 적응하고 있다.


아내는 잘 버티고 있는 걸까.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 재택근무를 하며 버티고 있는 걸까. 재택근무를 하면서 보는 아내는 열심히 일을 한다. 너무 바빠 서로 대화할 시간도 없다. 바빠서 인지, 아니면 내가 재택근무를 하고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아내와는 부쩍 어색함이 느껴진다.


"요즘 자기한테도, 당근이 한 테도 좋은 감정이 안 들어요. 다 내가 하는 거 방해하는 것 같아요"


아내의 한 마디에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3년 넘게 계속 일과 육아를 병행했던 아내는 거의 쉼 없이 달려온 셈이다. 외국인이어서 친구가 한국에 많이 없기도 하고, 그나마 있던 친구들과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도 제한적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를 할 시간도 없었다. 일하는 시간이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였는데 그것이 지금 한계에 도달한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 감정, 아내는 모든 것에 우울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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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집에 있을 때 주로 내가 아이를 보고, 아내에게 시간을 주었는데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는 그 비중이 나에게 더 기울어졌다. 아내는 그렇게 육아에 대한 부담을 덜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으로 매우 딱딱한 상태였다. 아이가 아내에게가 말을 건네도 아내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그동안 쌓였던 여러가지가 재택근무가 계속되면서 터져버린 것 같았다. 내가 특별히 뭘 하지 않고 그저 옆에서 일만 했는데도 아내는 어두워졌다.


"자기야 그러지 말고 바빠도 누군가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해보면 어떨까요? 만나고 싶은 친구 만나고 시간 보내고 와요."

"알겠어요."


짧은 대화 끝에 아내는 친구를 만나겠다고 한다. 아이도 엄마의 기분을 눈치챘는지 칭얼대기는 아빠인 나에게만 한다. 그러고 보면 아이는 나보다 훨씬 감정적 눈치가 더 빠른 것 같다. 아이도 엄마가 왜 그렇게 무뚝뚝해졌는지 궁금해한다.


"마미는 왜 저렇게 기분이 안 좋지?"

"마미는 일이 너무 바빠서 너무 힘들데, 기분이 안 좋아서 지금은 마미에게 놀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해. 당근이는 당분간 아빠랑 재미있게 놀자~"

"우리 놀이터 가기로 했잖아~"



아이는 그런대로 이해하는 것 같다. 아이를 달래기는 쉬워도 아내를 달래기는 어렵다. 아내는 친구와 만나서 저녁식사를 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고 온다. 그 사이 아이 샤워를 시키고 재운다. 밤에 돌아온 아내는 조금은 기분이 나아 보인다. 그래도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감정에 도움이 된 것 같다. 아내는 자기 전 나에게 볼만한 영화나 드라마의 다운로드를 부탁한다. 아내가 잠자리에 들자 나는 곧장 인터넷에 접속해 여러 영화와 드라마를 다운로드하고 중국어 자막을 찾는다. 꽤 시간이 걸리고 번거로운 작업이지만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사실 아내의 무뚝뚝한 모습은 아내를 만나고 처음 대면하는 모습이다. 20대 중반이었던 아내를 만나 이제는 30대 중반이 되었는데, 자신의 일을 하면서 아내는 부쩍 자아를 찾고 성장했다. 처음 만났던 아내와 지금의 아내는 많이 달라졌다. 좀 더 이성적이고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다. 자신이 하는 일과 능력에 대한 자신감도 매우 높다. 여러 모로 여전히 소극적이고 조용한 나와는 대조된다. 아내가 빠진 감정의 그늘이 내게는 큰 공포심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아내가 더 깊은 늪에 빠지지 않도록 분주하게 움직인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니까.


그렇게 아내에게 혼자 만의 시간을 주고 몇 주가 지나서야 아내는 조금씩 예전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고, 나에게 자신이 본 드라마나 영화 이야기를 한다. 그러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자기는 나 아직도 사랑해요? 난 예전처럼 그런 감정이 아니에요"

"나는 사랑하죠. 그런데 예전과 같은 그런 열정적인 사랑은 물론 아니에요."

"그래요? 그런 열정은 최대 3년까지 라는데 정말 그런가 봐요"

"사랑의 형태가 변한 거죠. 감정도 변하고요. 우리가 만난 지 8년이 되었으니, 자연스러운 과정이겠죠"


아내는 변했다. 아마도 나도 변했을 것이다. 이번에 재택근무를 하며 아내의 뒷모습을 자주 쳐다본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 영화를 보는 모습, 밥 먹는 모습 왠지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안쓰러운 감정도 든다.


생각보다 아내는 빨리 감정의 늪에서 벗어났지만, 이런 감정의 파고는 다시 찾아올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지 생각이 많아진다. 점심을 먹고 산책을 나가 동네를 돌고 나서 근처의 꽃집에 들러 작은 꽃다발을 하나 사서 아내의 책상에 올려놓는다. 언젠가 우울한 감정이 다시 찾아올지라도, 최선을 다해 다시 돌려놓겠노라고. 그런 생각을 담아 아내에게 꽃을 놓고는 살며시 웃음 짓는 아내의 입꼬리를 보며 돌아선다.


바이러스로 암울해진 세상과는 다르게, 어느덧 따스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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