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아이와 나눈 죽음에 대한 대화

by 레빗구미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 이후를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운이 좋게도 아직 내 주변에서 아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친척이나 외할머니 등의 죽음을 경험하고 부모님과 같이 경험을 했지만 감정적으로 매우 슬프게 느껴지는 그런 죽음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 감정이 정확히 어떨지 알기는 어렵다. 누군가와 영원히 헤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아픈 일이 될지 직접 경험하기 전에는 진정으로 느끼기는 어려울 것이다.


매년 크고 작은 사고가 나고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작별하는 소식을 접한다. 특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큰 사고들은 잊기 어렵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사고, 세월호. 이제는 나열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꽤 많은 일들이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성인이 되기 전 겪은 사고들을 미디어에서 볼 때는 재난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흥미진진했고,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지를 정말 손에 땀을 쥐면서 지켜봤다. 감정적인 슬픔보다는 엄청난 위기 속에 있다는 긴장감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어느 정도 성인이 된 이후, 어머니가 꽤 오랜 기간 동안 병상에 계셨다. 그때부터 누군가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본 것 같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죽음으로 인한 슬픔을 겪을 때 그 감정을 그대로 느꼈던 던 것 같다. 어머니가 내일부터 곁에 없다고 생각했을 때, 마음은 시큼해졌고 이내 눈은 촉촉해졌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죽은 이들을 그리워할 때 내 마음도 같이 그리움을 느꼈다.


"자기는 내가 갑자기 없으면 어떨 것 같아요?"

"안돼요. 자기는 나보다 먼저 죽으면 안 돼요. "


언젠가 연애 기간 중에 아내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내가 갑자기 죽거나 없어지면 어떨 것 같은지에 대해서. 그 당시 아내는 기겁을 하며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아마도 아내는 내가 먼저 죽었을 때 겪어야 할 그 슬픔과 허망함을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죽음이란 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중국인인 아내에게도, 한국인인 나에게도 똑같이 찾아온다. 단지 그것이 언제 올지를 모를 뿐이다. 그 죽음을 모두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안다고 할 수 있다. 아내의 반응처럼 나의 죽음보다는 내 주변의 죽음을 더 두려워하게 되었다.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 그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려고 꽤 노력한다.


어느 날 아이의 한 마디에 꽤 긴 대화를 하게 되었다.


"아빠 나 빨리 아빠처럼 크고 싶어요!"

"당근이도 아빠처럼 금방 어른이 될 거야"

"정말요? 우와 신난다!"

"당근이가 어른이 되면 마미는 할머니가 되고, 아빠는 할아버지가 될 거야"

"그래요?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는요?"

"그때가 되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서 다시 만나지 못할 거야"

"응? 그럼 아빠랑 마미는요?"

"아빠랑 마미도 언젠가는 하늘나라로 떠나겠지?"

"으... 왜요? 그럼 나는요? 나 혼자 무서울 건데."

"당근이도 언젠가는 하늘나라로 가겠지? 그런데 아주 한참 지나서. 아빠랑 마미도 아주아주 한참 있다가 떠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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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아직 죽음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아이에게는 그저 멀리 떠나서 돌아오지 못한다고만 이야기할 뿐이다. 나와 아내도 하늘나라로 떠난다고 했을 때, 아이의 표정에 잠시 드리운 슬픈 표정이 헤어짐의 공포를 느끼게 해 준다. 아직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아빠와 엄마를 다시 보지 못한다는 슬픔은 지금 아이에게는 가장 큰 공포일 것이다.


재택근무 덕분에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 것에 감사한다. 물론 아이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이동하는 출퇴근 시간을 절약한 덕에 밥을 같이 먹고, 잠시 집 주변에 나가 산책을 할 수 있다. 그런 시간이 늘어날수록 아이는 내 손을 잡고 더 친밀하게 놀기를 재촉한다. 그리고 그런 친밀감 덕분에 아이를 재우는 시간에 꽤 다양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매년 4월이 되면 큰 사건이 늘 떠오른다. 지워지지 않는 인장처럼 가족들에게 돌아오지 못한 학생들이 생각나고, 남은 가족들이 느꼈을 슬픔이 느껴진다. 4월의 한가운데, 아이와 했던 대화 속에서 죽음에 대해 또 한 번 생각한다. 더욱더 아이를 지키고, 그 지키는 시간 동안 최대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잠들기 전 침대에서 한참을 장난치던 아이는 조용히 속삭인다.


"아빠 사랑해요"


세상 어떤 말보다 달콤한 그 말을 들으며 나의 죽음 전까지 아이 옆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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