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되면 대부분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가까이 있기 때문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가족과 무언가를 하게 된다. 어디론가 여행을 가거나, 같이 밥을 먹으면서 가족이라는 상대방과 시간을 보낸다. 서로 돈이나 선물을 주고받고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면서 보내야 하는 달이 아마 5월일 것이다.
어린아이 시절 어린이날은 또 하나의 생일이었다. 매년 어린이날이 가까워지면 이번엔 무슨 선물을 받게 될지, 아니면 어디로 놀러 가게 될지 한 껏 기대에 부풀어 있었던 것 같다. TV에서는 어린이날 특집 프로그램이 나오고, 맛있는 무언가를 먹을 수 있는 그 날. 나와 동생의 밝은 얼굴을 보던 부모님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너무 오래전 일인 데다, 당장의 기쁨을 즐기고 있었을 어린 시절엔 나를 바라보는 부모님의 고민 어린 시선을 보지 못했다.
그 어린이날의 기쁨을 지나고 나면 어버이날이 이어진다. 주로 학교에서 카네이션을 만들어 당일 오전에 부모님께 달아드렸다. 학생 시절 어버이날은 그저 카네이션이나 편지를 드리면서 감사를 표하는 날이었다. 그마저도 뭐가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감사하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고 꽃을 달아주는 것 자체도 어색했다. 그래도 부모님은 늘 우리에게 웃으며 고맙다고 이야기해주셨다. 내가 만든 꽃이 그렇게 이쁘지 않더라도 부모님 눈에는 그래도 이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 마음을 이제는 어렴풋하게나마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그때의 부모님은 당장 본인들이 받을 카네이션보다는 본인들이 챙겨야 할 자신들의 부모님에게 무엇을 해드려야 할지를 더 고민했을지 모른다. 그 당시 사회 분위기 상 어버이날에 이어 스승의 날까지 의무적으로 챙겨야 했기에 그들에겐 5월이 꽤 벅차게 느껴졌을 것 같다. 어버이날 행사를 가족들과 마치고 나면, 자연스럽게 스승의 날을 챙기게 된다. 나와 동생의 선생님들에게 어떤 선물을 해드려야 할지 고민하셨을 텐데, 어느 정도 적당한 선물을 해야 자신의 아이들에게 좀 더 도움이 될지 고민이 많으셨을 것이다.
지금 나와 아내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모두 챙겨야 한다. 어린이날엔 이제 어린이로 거듭나고 있는 아이를 위해 무언가를 해줘야 하고, 어버이날엔 한국의 부모님을 위해 무언가 해 드려야 한다. 중국에서는 어머니날과 아버지 날이 별도로 있기 때문에 어머니날이 있는 5월에는 장모님만 챙겨드리면 된다. 어쨌든 이제는 아래위로 챙겨야 하는 낀 세대가 되었다. 지금 부모님들은 어버이날이 되기 전에 늘 먼저 말씀하신다.
"우리 선물 같은 건 챙기지 않아도 된다. 너희들 먹고 싶은 메뉴 정해서 밥이나 같이 먹자"
아마도 어버이날을 챙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마음에 걸려 그렇게 이야기하시는 것 같다. 부모님에게 카네이션을 몇 번 보내드리기도 했지만, 결국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현금이나 원하시는 선물로 귀결되는 것 같다. 뭘 이런 걸 준비했냐고 하시다가도 그걸 받으신 이후에는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누구나 그렇듯 그런 선물을 받으면 좋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다행히 한국에 있는 부모님은 밥이라도 같이 먹고, 직접 선물을 드릴 수 있지만 타국에 떨어져 계신 장모님은 직접 챙길 수가 없다. 매년 해외 꽃배달을 이용해 꽃을 전달하기도 했지만 올해는 아내와 상의 끝에 하지 않기로 했다. 코로나 19가 퍼지고 있는 지금은 더욱더 조심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에 외부 배달 등을 좀 더 신중하기로 했다. 얼마 전 중국에서 이미 발급된 외국인 비자도 모두 무효화시켰다. 당분간 새로 비자 발급을 해주지도 않을 것 같다. 아마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장모님 댁에 직접 방문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최근 장모님은 부쩍 외로워하시는 것 같다. 아내가 몸이 어떤지, 아이는 잘 지내고 있는지 나에게 직접 문자를 보내신다. 하나하나 바로 답변을 하면 늘 귀여운 이모티콘을 보내시면서 대화를 마무리하신다. 본인의 딸과 외손녀가 얼마나 보고 싶으실까. 지난 일요일은 중국의 어머니날이었다. 그때도 아이에게 중국어로 "어머니날 축하드려요"라는 영상을 찍어 보내면서 축하를 해드렸다. 아내에게 부탁해 장모님이 쓰실 용돈을 보내달라는 부탁도 했다. 장모님의 반응은 우리 부모님의 반응과 똑같다.
"고마워. 뭘 이런 걸 주고 그래. 너희들 쓰지. 그리고 꽃은 안 보내도 괜찮아. 번거롭잖아. 얼른 풀려서 같이 밥 먹고 싶다. "
장모님은 이 말과 함께 늘 이 말을 덧붙여 주신다.
"부모님께 안부 전해드려. 건강하시고 모든 하시는 일 잘되시라고. 어버이날 축하드린다고. 꼭!"
아내보다는 나에게 그 말을 전하시고, 그 말이 잘 전달되었는지 늘 확인하신다. 뭐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묻고 있다고 하면 우편으로 보내겠다며 주소를 확인하신다. 그래서 나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무언가 해드리려고 한다. 아내 몰래 꽃을 보내고, 선물을 보내보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장 좋아하시는 건 직접 얼굴을 보여드리는 것 같다. 그나마 몇 개월에 한 번씩은 아이와 함께 방문하여 얼굴을 대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쉽지 않게 되었다.
영상통화로 간간히 아이의 모습을 보여드리지만, 아이는 아직 영상통화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저 뛰고 스쳐 지나가는 모습만 보여줄 수 있다. 장모님은 그 상황에서도 아이에게 묻는다. 밥은 먹었는지, 재미있게 놀고 있는지, 중국에서 먹고 싶은 것은 없는지.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셔야 하는 장모님이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머니의 날에 가벼운 식사한 번 할 수 없고, 근 시일 내에 찾아뵐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다. 그래도 음성이나 영상으로 나마 안부를 물을 수 있고, 코로나의 상황이 조금은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의 목소리를 녹음해 장모님께 메시지를 보낸다.
“母亲节快乐!(모친졔콰이러!) 谢谢您!(쎼쎼~:감사합니다!)”
그리고는 그걸 듣는 장모님의 입가에 머문 미소를 떠올린다. 코로나 19가 일상화된 2020년의 5월이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