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렛고>(2019)
친지나 가족을 잃는다는 것은 한 세상을 잊어야 한다는 것과 같다. 가족을 잃은 후의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우울증을 앓거나, 다시는 볼 수 없는 가족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낸다. 과거에 자신이 다른 행동을 했다면 가족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지, 그 상황을 다시 마주한다면 꼭 가족을 살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며 머릿속으로 여러 번 의미 없을 상상을 하곤 한다.
그만큼 과거를 돌릴 기회를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은 자꾸만 과거에 집착하게 만든다. 하지만 실제로 과거를 돌릴 기회를 얻는다고 해도 어떤 행동과 선택을 해야 상대방을 살릴 수 있을지 알기는 어렵다. 과거로 돌아간다 한들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를 고민하며 다시 새로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은 죽었지만 과거에 살아있는 가족과 연결이 된다면 어떨까.
영화 <돈렛고>는 사고로 죽은 조카 애슐리(스톰 라이드)와 통화하게 된 삼촌 잭(데이비드 오예로워)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잭은 경찰로 파트너 바비(미켈티 윌리엄슨)의 지원 속에 근무하다 자신의 형과 형수, 조카 애슐리가 살해당한 현장을 직접 목격한다. 특히나 아주 가까운 관계였던 애슐리가 처참하게 살해당한 것을 목격한 잭은 다시 제대로 근무현장에 복귀하지 못하게 된다.
가까웠던 가족을 차례로 잃는다는 것은 큰 충격일 것이다. 그때 그 과거를 다시 돌릴 기회를 찾는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영화 속 잭은 과거의 애슐리와 통화를 하게 되면서 현재 자신의 시점에서 과거의 일을 막으려고 최선을 다한다. 영화가 후반부로 갈수록 과도해 보이고 답답해 보이는 그의 행동이지만 가족 모두를 잃은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
잭은 최선을 다해 조카 하나만이라도 살리려 애쓴다. 자신의 몸이 서서히 망가지지만 그건 그에게 중요하지 않다. 아마 가족을 잃은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다. 자신의 몸보다는 다른 가족의 삶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잭은 영화 내내 자신을 온전히 내던진다. 그렇게 지치고 힘이 빠져가는 잭의 얼굴은 그가 얼마나 필사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면서 비슷한 영화들이 떠오르는 건 당연하다. <프리퀀시>(2000) 나 <이프온리>(2004) , <소스코드>(2011) 같은 오래된 영화들이 떠오르는 건, 이 영화가 그런 과거의 영화들의 흑인 버전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영화가 선택하는 결말 자체도 너무 일반적이고 뻔해서 좋은 영화도, 재미있는 영화도 아니게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