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데이스 오브 아메리칸 크라임>(2020)
가까운 미래의 가상공간을 설정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는 영화들이 있다. 최근에 나온 <사냥의 시간>이 대표적이다. 현재의 모습이 여전히 남아있지만 그렇다고 현재는 아니다. 근미래의 어느 시점, 그리고 좀 더 나빠진 설정을 더하면 그런대로 SF 장르의 모습을 갖춘다. 이런 영화들은 대부분 우울한 미래를 그린다. 사회 시스템이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해 온갖 범죄가 성행하고, 빈부격차는 굉장히 심해진 세상 속에서 많은 사람은 인생 역전을 꿈꾼다. 그런 영화 속 모습들은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어두운 면들을 확대시켜 바라보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 속에 놓인 주인공들의 어려움은 관객의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된다.
넷플릭스에는 이런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종종 업데이트된다. 최근에 업데이트된 <라스트 데이스 오브 아메리칸 크라임>도 미국 근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특정 뇌파를 통제하는 전파를 켜게 되면 범죄를 하는 사람들을 마비시켜 고통을 주는 방식으로 사람을 통제하는 사회를 그린다. 그것이 바로 시행되는 것이 아니고, 영화 시작 시점에서 일주일 후에 그 시스템이 시작되고, 그전에 돈을 훔치려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149분이나 되는 이 영화를 보는 동안 괴로웠다.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통제하려고 하는 시점에 주인공들은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한다. 돈을 가지고 국경을 넘는다는 계획이지만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누구와 할 것인지도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여자 주인공은 매우 구시대적 캐릭터다. 매우 진보적 인척 하지만 결국 자신의 몸을 이용해 남자들을 범죄에 가담하게 하고 남자들의 보호를 받아 살아남는다. 전문적인 프로그래머로 설정되어 있지만 극 중에서 주도적으로 어떤 일을 해나가지 못한다.
액션이 훌륭한 영화도 아니다. 설정만 조금 신기할 뿐이고,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장면도 너무나 허술해 긴장감이 떨어진다. 여러 극적인 상황에서 주인공들을 상대하는 적들은 갑자기 바보가 된다. 이런 종류의 SF영화에는 설정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나 색깔이 있어야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것이 없다. 그저 설정에서 머물러 버린다.
감독은 <테이큰 2>, <테이큰 3> 등을 감독한 올리비에 메가턴이다. 넷플릭스에서는 제작비를 지원하며 감독에게 완전한 자유를 준다고 알려져 있다. 이 영화는 그 자유를 온전히 누리지만, 영화 속 캐릭터와 이야기에는 자유가 없다. 완전히 감독의 통제를 받아 뻗어나가지 못하고 모두 갇혀버렸다. 정말 오랜만에 최악의 영화를 만났다. 역시나 좋지 않게 본 <사냥의 시간>은 그래도 미래의 영상이 꽤 훌륭했고, 배우들의 연기도 뚜렷했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제법 명확했다. 하지만 <라스트 데이스 오브 아메리칸 크라임>은 영상도, 연기도, 액션도, 이야기도 모두 낙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