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무언가에 대한 재능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나에게 없거나, 아직도 발현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나에게 남아있을 30-40년 정도의 삶 가운데에서 아직 발견하지 못한 재능이라는 것을 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이가 차곡차곡 쌓여가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내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결국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워낙 조용한 성격과 나서지 않는 성격 탓에 남들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사실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호기심은 여러 가지 일들에 도전해 보게 만들었다. 대부분은 작은 도전들이었다. 모르는 골목길들을 그냥 걸어보면서 무엇이 있는지 탐험해 보고, 곤충이나 물고기를 키우면서 간단한 실험을 통해 무언가를 파악해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 처음 컴퓨터를 샀을 때, 게임을 하고 싶어 설치하는 방법을 친구에게 배워 집에서 혼자 설치에 도전해 보았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결국 해내었고 그런 작은 성취감은 다양한 게임을 설치하고 실행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컴퓨터가 먹통이 되어 애프터서비스를 맡겨야 할 때도 있었다. 컴퓨터가 먹통이 되어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결하려 노력했다. 여러 방법도 말을 듣지 않을 땐 결국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이런 여러 번의 실패 속에서 컴퓨터 활용에 대한 정보들을 하나씩 쌓아나갈 수 있었다.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지만 고등학생에 올라가서는 학교에서 치러지는 수많은 시험들에는 대부분 실패했다. 중하위권을 맴돌던 시험성적을 올리려고 나름대로는 다양한 공부 방법을 시도했다. 쓰면서 외우기, 집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공부하기, 음악 들으면서 공부하기 등등.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는 해보았지만 게임에 집중하는 시간보다는 투자를 덜하게 되면서 공부에는 실패했다.
사실 무엇이든 잘하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공부를 잘한 다는 것은 다른 친구들에게도 그리고 부모님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었고, 내 학창 시절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도전해도 쉽게 결과가 따라오지 않았다. 공부 방법이 문제였을 수 있고, 정말로 공부에 재능이 없어서였을 수 있다.
겨우겨우 노력한 끝에 대학교에 가게 되었지만 그곳에서도 실패는 이어졌다. 20대의 초입에선 공부에 실패했고,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실패를 맛보았다. 학사경고 두 번. 4년의 대학교 생활 중, 입학 후 2년 동안 내가 받은 성적표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늘 소외되는 것 같았고, 공부에 적극적으로 매달리지도 못했다. 말 그대로 몸은 학교에 있지만 마음은 학교 주변을 맴돌았다.
그 당시의 나는 아마도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어떤 방식으로 공부를 해나가야 했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던 것 같다. 사람들과 어울리려 여러 모임에 참석은 했지만 늘 조용하게만 있었던 모임 속에서 나는 어디론가 점점 가라앉고 있었다. 관계의 실패는 나를 바닥으로 끌었고, 해야 할 공부에도 손을 놓게 만들었다. 어느 발표수업의 발제자였던 나는 한 주, 두 주 발표를 연기했다. 마지막 발표 기회조차 연기하려 교수님을 만났던 날 교수님이 한 말은 그 이후 계속 나를 찔렀다.
"평생 그렇게 살 거야?"
거기에 따라오는 내 마음속 생각과 감정은 우울했다.
"아, 나는 이것밖에 안되는구나. 나는 아무 재능이 없구나"
그때는 절망감 외에는 무엇도 찾을 수 없었다. 사람도, 공부도, 노는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술을 마시고 취했고, 주말이면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나서 휴학을 했고 군대에 다녀왔다. 군대는 좀 더 막힌 지옥이었다. 제대 날짜만 생각하며 다시는 그런 환경에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모든 것이 좋지 않았던 그때, 내가 대학교 2년 동안 경험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이 군대의 유일한 좋은 점이었다. 그런 삭막한 환경에서 성인이 된 나 자신에 대해 꽤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복학하고는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해야 숨을 쉬면서 사람들과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공부에 얽매이지도 않았고, 사람에 얽매이지도 않았다. 내가 놀고 싶으면 그냥 놀고, 공부를 하고 싶으면 공부를 했다. 과거에 무조건 직진하는 방법으로만 문제를 해결했다면, 복학 이후에는 여러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다. 내가 좀 더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수업을 택했고, 열심히 공부하는 방법 대신 다양한 경험을 쌓는 방법을 택했다. 교수님의 프로젝트에 조교로 참여하거나 진행되는 조사 분석 아르바이트를 찾아 참여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학교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아졌다. 내가 하고 싶지 않은 것은 싫다고 이야기했고, 먹고 싶으면 먼저 먹고 싶은 것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서로 간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 관계 속에서 재미를 느꼈다. 그리고 내가 관심 있는 과목들을 선택해 수강하고, 주로 논술 시험 위주의 강의를 택하면서 뭔가 배운다는 것에 대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통계 분석이나 엑셀 작업을 하는 것에는 과거 게임 설치 등으로 경험한 작은 실패들이 문제 해결 방법에 도움을 주었다.
그런 것들을 하면서 찾은 몰입과 재미는 이후의 내 삶의 방향에 대한 생각을 바꾸었다. 재능이라는 것은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과정에서 작은 실패들을 만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직진으로 돌아가기 어려우면 조금 멀리 돌아가도 된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결국에는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사실 일을 구해 취업을 하기까지 꽤 멀리 돌아갔다. 취업을 하는 많은 방법 중 나에게 가장 맞는 방법을 택하다 보니, 꽤 시간을 많이 들여야 하는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결국 취업에 성공한 이후, 속으로 외쳤다.
"나도 할 수 있구나. 좀 느리지만 나도 할 수 있는 거였어"
사실 취업을 한 이후의 직장생활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학교에 갓 들어가서 어려움을 겪었던 2년 간의 시절은 내 기억 속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으로 남아있다. 나의 재능이 무엇인지 찾으려 애썼고, 공부를 잘하고 싶었지만 돌아온 건, 두 번의 학사경고와 교수님의 차가운 일침이었다. 그때의 나는 전형적인 실패자 그 자체였다. 다행히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았지만, 좀 더 좌절감을 느꼈다면 삶의 끈을 놓아버렸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나의 실패가 보잘것없고 작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다가오는 실패의 모습은 다르고 그것의 크기 또한 다르다. 그 실패가 각자 삶의 모습을 변화시켜 지금을 만든 것이라면 그 실패가 작든 크든 잊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어쩌면 그런 작은 실패들이 모여 우리를 큰 변화로 이끄는 것일지도 모른다.
평생 그렇게 살 거냐는 물음에 이제는 대답할 수 있다.
"네, 평생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 거예요"
앞으로도 실패에 절망하며 살기보다는 그 실패를 통해 내가 나아갈 방향을 보려 노력할 것 같다. 40대가 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재능을 찾지 못했고, 여전히 많은 실패를 겪고 있다. 브런치에 다양한 글을 써나가지만 나보다 더 잘 쓰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글을 쓰고 지우고, 업데이트하고 후회하고, SNS에 공유하고 다시 지우 고를 반복하며 글쓰기에서도 작은 실패들을 쌓아나가고 있다. 원하는 지점까지 가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며 한 걸음 씩 나아가고 있다. 어쩌면 죽기 전에 내가 가진 재능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 재능을 못 찾으면 어떤가. 수많은 작은 실패들을 통해 적어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면 좀 더 나은길로 돌아갈 수 있는지를 어느 정도는 알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