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던 리치:소멸의 땅(2018)
엑스마키나의 감독이 돌아오다
알렉스 갈랜드 감독은 서던 리치를 감독하기 전에 엑스마키나(2014)라는 SF영화를 만든 적이 있다. 그 당시 암울하고 어두운 미래에 AI 기술과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었고, 매끈한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었다. 엑스마키나에는 정말 인간같은 AI가 나오는데, 주인공인 칼렙(돔놈 글리슨)과 AI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썸아닌 썸을 매끈하게 그리며 인상적인 영화를 만들어냈다. 이 영화 속에 나타나는 AI의 디자인과 연구 장소의 배경은 너무 말끔하고 깨끗해서 어떤 신비감을 주는 컨셉이었다.
갈랜드 감독이 다음 작품으로 선택한 영화는 서던 리치 였다.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고, 소설을 전체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갈랜드 감독은 책을 1권만 읽었고, 2, 3권은 읽지 않고 1편을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의 결말이 1편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아마도 앞으로 계속 나올 2편과 3편의 방향을 많이 다른 방향으로 가게될 것으로 보인다.
어떤 영화인지 예측할 수 없는 영화 서던 리치
엑스 마키나에서 훌륭했던 미술은 다음 작품인 서던 리치를 만나면서 더욱 발전하게 된 것 같다. 서던 리치는 사실 미국과 같은 특정 국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넷플릭스에서 온라인으로 공개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이 알려질 기회가 그다지 높지 않은 영화다. 현재로써는 한국에서는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스트리밍이나 다운을 받아 보는 방법 밖에는 없다. 처음 이 영화를 접하고 영화가 시작할 때까지도 어떤 영화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포스터를 봐도, 예고편을 봐도 어떤 내용인지 쉽게 예상하기 어려웠다.
영화는 레나(나탈리 포트만)이 주인공이다. 영화의 처음에는 레나가 유일한 작전의 생존자로서 인터뷰를 시작하는 장면이 보여진다. 그녀의 시점으로 작전 투입 직전의 상황이 보여지게 된다. 그냐는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과거에 군대에서 복무를 한 경험이 있다. 직업 군인인 남편 케인(오스카 아이작)이 군 작전에 투입되었다 실종된 1년 후 부터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레나의 남편이 갑자기 나타나고 심각한 질병 증세가 나타난 이후, 남편의 군 작전에 관여되어 있는 심리학자인 벤트레스 박사(제니퍼 제이슨 리)를 만나게 되면서 레나는 서던 리치로 합류하게 된다. 서던 리치는 일종의 군 부대 이름으로 어느 순간 부터 알수 없는 막이 생긴 지역의 주변에 위치해 있으며, 그 막 안으로 들어간 인간, 동물 등이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레나도 팀에 합류하게 된다.
전문가 집단의 여자 팀이 이끌어가는 이야기
이 영화는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여자다. 심리학자, 생물학자, 인류학자, 측량사 등등 각종 전문가들을 모아 팀을 구성해서 가게 되는데, 모두 목숨을 걸고서라도 모험을 해야할 이유가 있는 듯 보인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탐험에 실패했던 이전 군인 팀은 모두 남자라는 것이다. 이전에 투입된 남자 팀은 기괴한 일을 겪으며 죽거나 실종된 것으로 보이고, 유일하게 레나 남편인 케인만 밖으로 살아 나오게 되지만 심각한 코마 상태에 빠진다. 남자의 실패를 만회하러 들어가는 여자 팀이라니, 신선한 설정이다. 과거에 고스트 버스터즈 리메이크(2016)에서 여성 팀이 나오긴 하지만, 아주 전문가 집단이라고 하기 어렵고 코믹한 영화였다면, 서던 리치의 여성들은 모두 고학력 전문가 집단이고, 사회적으로도 어느정도 지위에 있는 여성들이다.
신비한 막이 영화에 처음 등장하는 순간에 어떤 신비감을 들게 한다. 무지개 빛을 가진 투명한 막을 보는 순간 그 안에 들어가면 뭔가 신비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그 막에 들어가서 보여지는 신비한 식물, 꽃, 동물 들은 어떤 기괴함을 느끼게 하는데, 이 기괴한 느낌이 영화의 긴장감을 더욱 높이게 된다. 영화의 다양한 생물들이 이상하게 변하는 것은 일종의 DNA변화와도 같다. 암세포와도 비교할 수 있는데, 모든 생물의 세포는 자기 분열을 통해 어떤 개체를 만들고 유지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 인간, 동물, 식물 모두가 동일한 세포 분열을 통해 그 본연의 모습을 유지할 때는 큰 문제가 없지만, 분열에 문제가 생기면 기존 세포와 다른 암세포가 계속 분열하게 되어 결국 개체를 죽게 만든다. 영화 초반에 세포 분열과 암세포에 대한 내용이 레나의 강연으로 제시가 되는데, 이 세포 분열에 대한 일련의 설명은 결국 영화가 뒤쪽에 이런 내용이 전개된다는 암시와 같다.
분열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신비로운 풍경
영화의 중반부 이후에는 더 기과한 생물이 등장하는데, 이를 보면 한 편으론 아름답고 평화롭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탐험을 하는 팀의 멤버들은 한명씩 죽거나 미쳐가게 되는데, 이는 이전 남성팀의 모습과는 비슷하면서 다르다. 생물학자인 레나는 실제로 자기 피를 뽑아 현미경으로 보면서 세포 분열시 세포가 비정상적인 것을 발견하게 되고, 팀의 한 멤버는 전파의 굴절 때문에 외부와 통신이 되지 않는 다는 점을 설명하게 되는데, 여성 팀은 남성 팀과 같이 이상한 일로 비극적인 경험을 하게 되지만, 그 일의 원인에 대해서는 보다 근접했다고 보여진다.
후반부 등대 주변과 등대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매우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등대 주변의 생명체나 모습들은 매우 기괴하지만 매우 신비롭고 아름다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하고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든다. 결국 영화의 끝까지 자기 복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어쩌면 진화론이나 우리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세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계속 세포 분열을 해가며 개개인의 정체성을 만든다. 각각의 생명체는 각자 자기가 가지고 있는 세포를 분열 시켜 성장하고 때론 늙고 병들어간다. 죽음 이후에 우리 세포들은 미생물이나 다른 생물에 의해 흡수되거나, 분해되어 사라진다. 결국 하나의 생명체는 다른 생명체에게 흡수되어 다시 전혀 다른 모습의 세포로 구성되게 되며 그 세포의 모습으로 분열을 다시 시작한다. 등대에서 벌어지는 결말부는 결국 생명체의 소멸과 재탄생의 이야기가 아닐까. 영화는 레나와 케인을 유일한 생존자로 남기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나탈리 포트만의 훌륭한 연기
레나를 연기한 나탈리 포트만의 연기는 정말 좋다. 남편을 잃고 방황하는 여인이 어떤 모험에 합류하여 기괴한 일을 경험하는 모습이 정말 생생하며, 캐릭터에 대한 신뢰감을 준다. 남편으로 등장하는 케인도 어떨 때는 인간같지 않은 텅빈 모습을 보여주는데, 영화 속의 기괴한 느낌을 주는데 기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기괴한 생명체 들이다. 그들은 때론 징그러운 느낌을, 때로는 공포감을, 때로는 황홀감을 주고, 결국에는 신비감까지 준다.
이 영화는 가능하면 좋은 환경에서 좋은 화질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풍경은 기괴하지만 굉장히 아름다운 장면들이 있다. 이 영화의 매력은 스토리 자체에 있는 것 보다는 그 지역의 분위기에 있다. 그 신비한 느낌이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든다. 그리고 분열과 죽음 대한 두려움이 이 영화를 끌고가는 힘인 것 같다. 향후에 계속될 시리즈가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더욱 다음 편이 기다려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