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픽 림:업라이징(2018)
델토로의 B급 감성이 충만했던 퍼시픽 림 1편
길레르모 델토로의 B급 감성이 충만했던 퍼시픽 림(2013)은 과거 일본에서 유행하던 슈퍼 전대물을 실사로 옮긴 영화다. 슈퍼 전대물은 과거 컴퓨터 그래픽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특수촬영 기법을 이용해 괴물과 로봇, 또는 슈퍼 파워를 가진 인간들의 대결을 그린 영화나 드라마를 의미한다. 과거 후레쉬맨이나, 파워레인저 같은 시리즈들이 80, 90 년대에 한참 유행하던 전대물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퍼시픽 림을 시작으로 2017년에는 파워레인저가 할리우드에서 실사화 되었다. 한참 영웅 영화에 빠져있는 할리우드에서 특촬물까지 관심 영역을 확대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엿보는 중이다. 실제로 퍼시픽 림은 들인 돈에 비해서 아주 큰 흥행을 하지는 못했으며, 파워레인저는 흥행에는 실패하였다. 실제로 특촬물이 앞으로 계속될지 여부는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의 실사 영화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델토로 버전의 퍼시픽 림은 커다란 괴수인 카이주가 등장하고, 거대한 로봇이 나와 서로 싸우는 것을 보여주는 게 목적인 영화다. 특촬물이라는 특수 장르는 실사화 하는 게 쉽지는 않다. 그만큼 내용 전달이 유치하게 받아들여져 무시당하기 쉬운 소재다. 하지만, 델토로는 특유의 감성에 꼼꼼한 디자인으로 로봇과 괴수를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거대한 로봇의 뛰어난 질감과 무게감은 로봇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보는 사람을 두근두근 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로봇이 카이주를 때릴 때, 괴수가 로봇을 때릴 때의 묵직함은 정말 거대한 것들이 싸우고 있다는 느낌을 확실히 준다. 그래서 과거 특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영화로 기억된다. 특히 OST를 담당했던 라민 자와디의 타이틀 곡인 ‘퍼시픽 림’은 마치 당당하게 걸어가는 로봇의 발걸음처럼 힘찬 느낌을 준다.
새로운 캐릭터와 돌아온 예거
퍼시픽 림은 1편이 크게 흥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2편이 나오지 않을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델토로가 다시 감독으로 만들려고 시도했으나 결국 하지 못하고, 스티븐 S.드나이트 라는 신인 감독이 맡아 진행하게 되었다. 드나이트는 미드 시리즈인 스파르타쿠스와 스몰빌 등의 각본과 감독을 했었는데, 그래픽 작업을 통한 액션과 속도감 있는 전개를 잘 보여줬었다. 하지만, 델토로의 전작을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실망감을 주며 기대를 다소 접은 상황에서 2편을 접하게 되었다.
실제로 관람한 퍼시픽 림:업라이징은 예상보다는 괜찮았다. 전작에 비해 속도감이 더 늘었기 때문에,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던 전작에 비해서 지루함은 많이 덜었다. 그리고 다양한 예거를 등장시켜 볼거리를 늘렸다. 늘어난 예거만큼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영화의 중심에 위치한 제이크(존 보예가), 네이트(스콧 이스트우드)를 비롯해 아마라(케일리 스패니), 샤오(경첨) 등이 추가로 등장하고 전작에서 등장했던 헤르만 박사(번 고먼), 뉴턴(찰리 데이), 마코(키쿠치 린코)가 다시 등장한다. 특히 새롭게 등장한 아마라 캐릭터는 다양한 인물들과 갈등을 유발하고 어울리는데 영화에 흥미를 더하는 새롭고 중요한 캐릭터다. 아마라는 예거를 만들 수도 있고, 수리도 가능하며, 조종 능력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 시리즈가 계속된다면, 메인 캐릭터 롤을 맡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낮아진 괴수의 비중, 높아진 다양한 예거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카이주의 비중은 그렇게 높지 않다. 전작과의 가장 큰 차이점인데, 카이주와 예거와의 싸움보다는 예거와 예거의 싸움에 좀 더 비중이 있는 편이다. 그리고 다른 예거들의 다양한 기술이나 설정들은 흥미롭게 볼 수 있는 포인트다. 카이주와 예거와의 싸움은 후반부 하이라이트에 몰려있는데, 3가지 종류의 카이주와의 싸움과 큰 카이주와의 싸움이 제법 긴장감 있게 그려진다.
영화의 내용 자체는 전작의 브리치가 닫힌 이후의 상황을 그리고 있고, 전작의 스탁커(이드리스 엘바)의 아들을 등장시켜 집시 데인저의 조종에 참여시킨다. 카이주가 옮겨왔던 브리치가 없기 때문에, 중반 이후까지 카이주가 등장하지 않고, 예거의 이동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참여한 중국 기업 샤오와 그 로봇들이 등장한다. 샤오는 일종의 맥거핀으로 영화의 반전을 주는 요소로 활용되고 있으나, 기능적인 활용이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
중국 자본이 투입되었지만,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설정
퍼시픽 림:업라이징은 중국 자본이 많이 투자된 영화다. 그래서 중국 배우가 많이 등장하고 중국어도 많이 들린다. 과거에 비해 중국 영화 산업의 비중이 커졌고, 특히 전작이 어느 정도 흥행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중국의 흥행이 많은 도움을 줬다. 특히 중국인들은 스케일이 큰 트랜스 포머 시리즈가 모두 흥행을 했고, 퍼시픽 림 1편의 흥행 성적도 좋아서, 로봇 영화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은 시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 중국 기업이나, 캐릭터 등이 등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만큼 중국의 국가 파워가 많이 상승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너무 영화가 중국화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중국 자본 영화와는 다르게 중국인이 단순히 소비되지는 않고 있으며, 영화 속에 필요한 주요 기능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꽤나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 스며들고 있다.
영화 속의 캐릭터 중에서 인상 깊은 캐릭터는 아마라 캐릭터이며, 스탁 커의 아들로 등장하는 제이크는 그렇게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닌 것 같다. 후반부에 다른 예거 파일럿들에게 하는 연설도 전작의 연설을 따라 하는 것 같다 자연스럽지 못한 느낌을 준다. 아마라를 연기한 케일리 스패니의 연기가 굉장히 좋아 이 캐릭터가 등장하면 영화가 좀 더 밝아지는 느낌이 든다.
묵직함이 사라진 예거의 액션
영화는 전반적으로 전작보다는 속도감 있게 전개되며 특유의 로봇 액션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다. 그리고 다양한 예거를 등장시켜 좀 더 신선한 느낌을 준다. 카이주와의 전투에서도 단조로운 느낌보다는 흥미로운 느낌이 지속된다. 그리고 카이주와 주고받는 전투에서의 타격감도 실감 나게 그리고 있어서 전작을 재미있게 봤다면 만족스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전작에서 예거가 등장할 때 보이던 묵직한 질감이나, 무게감은 많이 희석되었다. 그래서 전작처럼 영화의 어두운 분위기와 맞는 묵직한 느낌은 많이 사라졌고, 그 자리를 속도감이 채우고 있다. 이번 퍼시픽 림에서는 밤에 벌어지는 액션이 없고, 대부분 밝은 대낮에 펼쳐지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액션 장면에서 '와~' 하는 탄성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은 많지 않다.
앞으로 시리즈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에서의 흥행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영화 마지막에도 향후 시리즈의 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니, 3편이 나온다면 좀 더 무게감이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만약 지금 있는 무게감 조차 사라진다면 영화는 더욱더 트랜스포머에 가까워지고 망작에 가까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퍼시픽 림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올 시리즈도 기대된다. 아직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