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밤 8시 30분, 아이를 재우려고 침대로 올라가는 시간이다. 아이가 크면서 계속 똑같은 시간에 잠을 재운다. 아내가 정신없이 바쁘니 아이를 재우는 건 내 몫이다. 아이를 씻기고 나와 아내가 자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지만, 아이는 그 시간이 본인이 자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도 주섬주섬 침대로 향하는 아이의 모습은 이미 일정 관념이 생긴 아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아이는 이제 어떤 때 무엇을 하는 시간인지 아이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
잠을 재울 때 여러 단계를 거친다. 씻고 이빨을 닦고 나면, 아이는 침대로 향하고 자동차 친구들을 모두 침대 위로 옮겨 놓는다. 꼬마버스들, 중장비들, 용감한 자동차들을 모두 옮겨 놓은 다음에 불을 끄고 나와 같이 침대에 오른다. 둘이 불 꺼진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아이는 같이 놀자고 말한다. 논다는 것은 바로 타요 애니메이션 장난감들을 이용한 역할 놀이다. 몇 개월 전까지는 그냥 바로 장난감을 가지고 역할 놀이를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자신이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친구 누가 누구를 때려서 울었고, 자신이 무언가를 먹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못 먹게 했다는 등의 아주 사소한 일들을 나에게 이야기해 준다. 아이의 말을 가만히 들으며 추임새를 넣어주고, 궁금한 점은 물어가면서 대화를 해 나간다.
아이가 신나서 이야기할 때, 아이의 표정은 시시각각 변한다. 눈을 크게 뜨고 하면 안 되는 것을 이야기하고, 인상을 찡그리며 누군가 다친 이야기를 한다. 다채로운 표정으로 여러 이야기를 전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아이의 이야기 속 그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아이가 느꼈을 감정이 같이 느껴진다. 그만큼 아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이 많아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신나게 떠드는 아이와 눈을 맞추면서 아이가 자신이 무슨 말을 해야 할 까 생각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아이는 이미 나와 아내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 그 즐거움이 나와 아내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어느 정도 대화가 마무리되면 아이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다시 놀자고 한다. 다시 자동차 친구들을 이용해 역할 놀이를 한다. 침대에서 아이와 하는 역할 놀이는 아주 단순하다. 장난꾸러기 버스를 하나 지정해 놓고, 그 버스는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고 경찰차가 그 버스를 데리고 경찰서로 데리고 가서 잘못을 꾸짖으면 평화를 찾는 놀이를 계속 반복한다. 아이는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상황을 계속해보라고 요구한다. 나는 나대로 아이 만의 성우가 되어 역할에 몰입한다. 아이는 나의 목소리 연기를 꽤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다. 경찰차 목소리, 버스 목소리, 레미콘 목소리를 얼추 비슷하게 흉내 내는 내 모습에 침대가 아닌 일상생활에서도 아이는 종종 목소리를 요구한다. 특히 자신이 무언가를 뽐내고 싶을 때, 그리고 즐거움을 나누고 싶을 때, 여러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시킨다.
하루 중 자신이 잘했던 일을 이야기하거나, 어린이 집에서 배운 노래를 하고 나서 나와 아내가 잘했다고 칭찬해 주면, 바로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아빠 페트가 얘기해봐요" , " 아빠 크리스가 얘기해봐요"
그 요구에 맞춰 각각의 자동차 목소리로 아이에게 몇 번이고 칭찬해준다.
"와 대단하네, 당근이 노래 잘하네, 정말 멋져!"
이 역할 놀이를 통해 아이는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은 욕구를 더 채워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빠와 엄마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도 인정받고 싶은 아이의 생각이 느껴진다. 그리고 최대한 아이의 생각대로 아이가 원하는 말을 들려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나에게 목소리 연기를 시킨다. 집에서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키즈카페에서도, 어느 장소에서도 아이는 다양한 상황에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특히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경찰차 페트는 자주 나에게 소환된다. 늘 아이 편이 되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친구다. 그래서인지 외출할 때면 늘 페트를 가방에 챙겨서 나간다.
이렇게 자기 전 역할 놀이를 어느 정도 하고 나면, 이제 아이와 나란히 자리에 눕는다. 그리고는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는 무조건 4개를 해달라고 했다가 시간이 늦었다는 나의 말에 그럼 3개만 해달라며 협상을 시작한다. 아이와 나의 작은 협상이 타결되면 이야기를 해 나간다. 이 이야기에도 페트와 꼬마버스 로기가 꼭 등장한다. 그리고 어린이집 친구들의 등장은 덤이다. 장난꾸러기 로기가 새나를 괴롭히고 도망가면 페트가 와서 로기를 혼내주러 가고, 다친 새나는 구급차 앨리스가 와서 치료해준다. 이런 식의 이야기를 조금씩 상황과 장소를 바꾸어 가며 들려주면 아이는 완전히 그 이야기에 빠져든다.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아이의 눈은 조금씩 졸리운 기운을 띄기 시작한다.
이야기 3개가 끝나면 마지막으로 자면서 들을 노래 하나를 고른다. 물론 음악은 꼬마버스 타요의 노래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 이제는 플레이 리스트를 하나하나 기억해 내면서 자신이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가리키며 읽는다. 물론 다 외우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알려주려 하는 아이가 놀랍다. 20여 개의 노래 중에서 늘 고르는 건, 용감한 자동차들의 노래나 중장비 노래다. 둘 다 아이가 좋아하는 자동차들이다. 하나의 노래를 반복해서 나오게 설정해 놓고는 아이와 드디어 잠을 청한다.
"아빠 이렇게 자요!!!!"
"아 이렇게 안고 자라고?"
"네!!! 빨리요!!"
맨 마지막으로 아이는 누운 채로 한 손으로 꼭 안아주길 원한다. 힘껏 안아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 빠져든다. 아이가 잠드는 과정을 실눈을 뜨고 가만히 보면, 아이는 눈을 뜨고 잠에 저항하지만 눈이 저절로 천천히 감긴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렇게 조금 시간이 지나고 아이가 완전히 잠들면, 담요를 덮어주고 방을 나온다.
어찌 보면 길고 긴 이 과정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이 과정이 힘들게 느껴질 때도 있다. 아내는 늘 바쁘기 때문에 그나마 조금 여유가 있는 내가 매일 아이를 재우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저녁에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은 밤 10시 이후뿐이다. 그래서 주말에 개봉 영화를 한 편 보려고 치면, 10시 30분 이후 것을 보고 새벽 1시 가까이에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또한 다른 사람과의 저녁 약속도 최대한 하지 않게 되고 하더라도 아내와 미리 상의 한 이후에 아내의 일정에 맞추어 최종 결정한다. 그래서인지 육체나 정신적인 피로도가 심해질 때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아이를 재우고 거실로 나오면 멍하니 앉아있다가 바로 침대로 가게 된다.
영화 <보이후드>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일과 삶의 우여곡절을 겪은 엄마(패트리샤 아퀘트)는 아이가 성인이 다 되었을 무렵 혼자 거실에 앉아 무언가를 정리하면서 이야기한다. 삶에, 그리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무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라며 한탄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다사다난한 삶 속에서 나중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할지 모른다. 특히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게 되면서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무언가에 대한 기대를 할 수도 있다. 그건 막연한 기대일 수도 있고 구체적인 소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의 '무언가'가 되지는 않는다.
아이가 태어나고 꽤 지치는 순간이 많다. 그럴 때는 글도 쓰기 싫고, 그저 잠을 자고 싶어 진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는 것에도 흥미를 잃는다. 그건 몸이 좀 쉬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질문이 떠오른다. '결국 아무것도 없을 텐데'라거나 '나도 나이가 들면 아이는 자신만의 삶을 살 텐데'라는 식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워 나간다. 그래서 그런 때에는 그저 잠을 자며 쉰다. 고이 잠든 아이 옆에 조용히 같이 누워 꿈속 어딘가에서 아이와 만난다. 그리고 그 잠에서 깨고 나면 그 피로가 조금이나마 사라지고 그런 부정적인 생각들은 다시 마음 깊숙이 들어가 버린다.
아이를 키워 나가는 그 시간이 지나간 후, 결국에는 아무것도 무언가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시간이 흐르고 그것을 찾으려면 그건 없을 것이다. 그 무언가는 아마도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내가 아이와 함께 하면서 보는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 짜증스러운 모습, 뛰어노는 모습 등이 내가 얻을 수 있는 그 무언가 인 것 같다. 아이와 잠자기 전 거치는 그 많은 단계들을 매일매일 해나간다는 것이 힘에 붙이고 어렵지만 지금이 아니면 그런 아이의 구체적인 반응을 볼 수 없고, 아이와 대화를 할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나와 아내가 찾는 그 무언가가 바로 지금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조금은 피곤하지만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반복해서 칭찬해준다. 그리고 여러 가지 역할극을 하면서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낸다. 무엇보다 자기 전에 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은 나에게는 꽤나 소중한 시간이다. 아이와 둘이 마주 앉아 거의 한 시간 정도를 온전히 그 작은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아이와 더욱 가까워진다.
아이가 잠든 후 방을 나오면서 아이의 볼에 입맞춤을 하고, '잘 자'라고 말한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일련의 과정이 끝나고 침대에 같이 눕기 전, 아이는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볼에 입맞춤을 하고 말한다.
"아빠 잘 자요"
그리고는 다시 아이를 꼭 끌어안고 아이를 꿈나라로 이끈다. 그 사랑스러운 순간이 아마도 '그 무언가' 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재우기 전 나와 아이가 노는 소리를 아내가 담았다
^^
<아이를 재우는 순간에 아이의 웃음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