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의 나에게 상대방과 눈을 맞추면서 대화를 하는 것은 꽤나 불편한 일이었다. 수줍음으로 가득했던 청소년기부터 청년기까지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면 그 사람의 눈을 보는 것보다는 살짝 옆을 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간간히 대화를 이어나가는 동안 상대방의 눈을 볼 때면, 얼굴이 붉어지고 숨이 막혔다. 순간 말을 이어갈 수 없고, 상대방의 말도 들리지 않았다. 눈을 보면 내 마음속을 들킨 듯 어색해졌고 그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점점 더 소극적이고 혼자의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늘었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게 되어도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얼굴을 보지 않고 이야기하게 되었다.
왜 그렇게 부끄러웠는지 모르겠다. 사실 대화하면서 눈을 맞추어 가며 이야기한다는 것은 꽤 중요한 일이다. 눈을 맞춘다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고, 귀 기울인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이 꼭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일상생활과 직장 생활에서 눈을 본다는 것은 꽤 중요하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것을 꽤 오랜 시간 동안 하지 못하고 지냈다. 성인이 되고 어떤 날, 같이 속초에 놀러 갔던 친척형과 대화하다가 나에게 한 이야기가 내 머릿속에 고민을 안겼다.
"넌 왜 눈을 안 보면서 이야기하니? 대화할 때는 상대방 눈을 봐야 귀 기울여 듣고 있는지, 어떤지를 알 수 있는데. 계속 땅만 보고 있으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
그 이전까지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아니 외면하고 있었던 문제에 직면했다. 한동안 왜 눈을 보며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를 한참 고민했다. 마음이 편해야 내 이야길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상대방을 꼭 보지 않아도 대화를 이어나가기엔 더 수월할 것 같았다. 평소처럼 상대방과 이야기하다가는 다시 돌아와 똑같은 고민을 했다. 그래서 조금씩은 가능하면 상대방을 보면서 이야기하려 애썼다. 대화 중 한 번이라도 상대의 얼굴을 보려고 했고 한 번 두 번, 세 번 그 횟수를 늘려갔다.
늘 그렇지만 하지 않았던 행동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20대 초였던 친척 형의 말 이후 몇 년을 걸쳐 상대방의 눈이나 얼굴을 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여전히 왜 눈을 보고 이야기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20대 중반이 지나고서야 조금씩 눈을 보는데 익숙해졌다. 상대방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게 아니라, 대화하면서 한 두 번씩 자연스럽게 쳐다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이 나에게는 꽤 어려운 과제였다.
어쩌면 자신감의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늘 대부분의 일에 대해서 잘해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누군가와의 연애에서도, 직장 면접에서도 나 자신을 어필하는 일을 잘하지 못했다. 아마도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깨닫는 것이 많이 늦었던 것 같다. 잘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씩 늘려가며 내 삶에서 제외했지만 잘하는 것은 늘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연애를 해도 늘 나에 대한 자신감보다는 우울한 감정이 앞섰다.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어지면서 더욱 상대방의 눈을 보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몇 번의 연애 실패 끝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수줍음을 꽤 많이 타는 듯했지만, 늘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도 늘, 아내는 내 눈을 똑바로 보고 이야기했다. 그런 아내의 시선에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한 편으로는 좋은 감정이 들었다. 그제야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 당시는 마침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던 시기였고, 특히나 아내를 만나면서 더욱 자신감이 높아졌다. 연애시절 아내는 늘 내 눈을 보며 이야기했다.
"자기가 너무 대단해요. 멋져요!"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만난 어떤 여자에게서 멋지다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그전까지 나에게 그런 말을 직접적으로 해주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일까. 내가 멋진 외모를 가졌을까. 이전까지 만났던 여자 친구에게서도 듣지 못한 말이었다. 그동안 자주 들었단 말은 그저 '좋은 사람'이라는 말 뿐이었다. 그래서 더 아내의 그 말을 믿지 못했고 그저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사람이란 들리는 말대로 바뀌어 가는 것 같다. 나는 아내와 만나고 대화하던 어느 순간부터 아내의 눈을 똑바로 보고 대화하기 시작했다. 동그랗고 진한 갈색의 눈동자가 내 눈을 보는 느낌이란,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좋은 감정을 나에게 선사했다. 그 눈동자 안에는 그것을 보고 있는 내가 보인다. 그렇게 눈을 보며 자신 있게 나의 이야기를 하고, 나의 느낌을 이야기하고, 나의 감정을 전달했다. 결국 나도 아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자기도 너무 이뻐요. 정말 능력자네요!"
상대방의 눈에서 나 자신을 보는 순간, 나는 진정한 나 자신이 된다. 그동안 내가 꺼내 보지 못하고 그저 감춰만 두었던 나 자신을 아내의 눈을 보며 드디어 꺼낼 수 있었다. 1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하게 되면서 결혼식장 안에서도 아내의 눈을 자꾸만 보았고, 아주 밝고 자신감 있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아내를 만나기 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나 자신을 나를 알던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었다.
업무에서도 나 자신의 의견을 더욱 드러내고, 나만의 일하는 스타일을 꺼내어 돋보이려 애썼다. 미팅에서는 상대방의 눈을 종종 맞추며 자신감 있는 태도로 대화해 나갔다. 그렇게 나 자신을 꺼내어 상대방을 바라보고, 상대방의 좋은 점을 보고 나의 좋은 점도 보여줬다. 그렇게 꺼낸 나의 자신감은 내 삶에 긍정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물론 내가 하는 일에 좌절하거나 실패할 때도 있다. 그리고 종종 우울한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원래 가진 나의 성향 자체가 늘 밝지 않고 어느 정도는 우울함을 느낄 때가 있다. 누구에게도 나의 감정을 이야기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그런 우울함이 꽤 오랜 시간 이어졌지만, 지금은 이야기할 사람이 있다. 우울한 어떤 순간, 아내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한다. 아내의 눈을 가만히 보고 내 감정을 차근차근 이야기한다. 아내가 나의 우울한 감정을 이해 못할 경우도 물론 있다. 하지만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아내는 늘 마지막에 내 눈을 보며 말한다.
"자기가 잘 될 거예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렇게 아내의 눈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나를 나 답게 만들어준다. 우울한 감정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아내와 마주 앉아 아내의 동그란 눈동자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은 내 안에 숨어있던 진정한 나 자신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 같기도 하다. 내 마음 속 지하실에 문을 닫고 들어간 나를 상대방의 눈을 보며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밖으로 나오게 만든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온 나 자신을 되찾은 나는 언젠가 아내가 힘들거나 우울할 때, 아내의 눈을 보며 똑같은 긍정을 전달한다. 그리고 그건 아내에게도 그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만든다.
이제는 나와 아내를 닮은 아이의 눈을 보며 이야기한다. 아이의 눈을 가만히 보며 무언가를 묻고 아이의 질문에 답한다. 한참 말문이 트인 아이 역시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우울할 때, 신날 때, 화날 때 모두 왜 그렇게 신나는지, 자신이 왜 그렇게 우울한지, 왜 화가 나는지를 나의 눈을 보며 하나하나 설명한다. 그 아이의 동그란 눈동자 속에도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내 가족의 눈 속에서 나 자신을 본다. 상대방의 눈을 보고 대화한다는 것은 그 행위 자체로 나를 나답게 만든다. 아주 긴 시간 동안 피하고 싶고, 하고 싶지 않았던 눈 맞춤은 이제는 큰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해 갈 수 있는 행위가 되었다. 아내와 아이의 눈을 보고, 또 친구나 직장 동료들과 눈을 보며 대화한다. 그렇게 많은 일상 속에서 상대방의 눈을 보면서 그 속에서 나 자신을 본다. 앞으로 남은 나의 인생도 그들의 눈 속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한 줌의 흙이 되는 그날까지 나는 상대방의 눈 속에 늘 자리하며 나다운 나 자신을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