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더께가 쌓여가는 7번째 결혼기념일

by 레빗구미


다시 결혼기념일이 되었다. 무언가 대단한 걸 해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 대단한 무언가를 하지는 않는다. 기념일 전날 밤, 아내가 침대에 자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보다 축하하고 고맙다는 말을 속삭이고 침대로 몸을 누인다. 가만히 천장을 보고 있으면 왼쪽과 오른쪽에서 자고 있던 아내와 딸이 내 몸에 다리를 걸친다.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고 허공을 보다가 헛웃음을 짓고 잠을 청한다. 이제는 익숙해진 침대의 풍경, 아내와 딸이 편하게 푹 잘 수 있다면 그 정도의 불편은 감수할 수 있다. 어쩌면 결혼이라는 것이 그런 것일지 모른다.


벌써 8년 차를 맞는 결혼기념일은 아이가 있어 특별하게 보내기에는 제약이 많다. 나와 아내는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외출을 하지 않는다. 아주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아이와 같이 외식을 하고, 같이 외출을 한다. 그리고 둘만의 시간은 아이가 잠든 이후 보내며, 대부분의 대화도 이때 이루어진다. 이번 결혼기념일에는 외식이나 외출을 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꽃다발을 집으로 배달시켰다. 아내가 좋아하는 색깔의 꽃을 집으로 배달시켰는데 마침 아내가 볼일이 있어 나갔을 때 도착했다. 내가 주문한 꽃다발을 재택근무 중이었던 내가 받는 상황에 다시 헛웃음을 짓는다.


그래도 집에 돌아온 꽃다발을 보고 미소 짓는 아내를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는 금방 다시 일상에 집중한다. 나와 아내 모두 일이 바쁜 상황이어서 거의 각자의 일에 집중을 하며 보낸 하루다. 오후 늦게 아이가 집에 돌아오고 나서 저녁을 먹고 아이를 씻기고 재우면 10시즘이 된다. 남은 두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에도 특별한 것을 하지 않고 보냈다.


12시가 되기 직전에 잠시 잊었던 것을 떠올렸다. 나와 아내는 결혼기념일에 매번 서로에게 편지를 쓴다. 작년에 썼던 편지를 꺼내어 읽고, 미래의 상대방에게 다시 손편지를 쓴다. 그리고 그 편지는 잘 보관해두었다가 내년 결혼기념일에 읽는다. 올해는 깜빡하면 이 특별한 일을 잊을 뻔했다. 뒤늦게 편지지를 구해와 준비해두고 작년의 편지를 읽는다. 작년에 했던 일들과 아내 그리고 아이와 보냈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일 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구나. 일 년 동안 아이는 이렇게 성장했구나. 일 년 동안 아내는 많이 바빴었구나. 그리고 일 년 동안 우리의 사랑도 변하지 않았구나.


아내는 영어로, 나는 한글로 편지를 쓴다. 맨 처음 결혼기념일에 편지를 쓸 때, 가장 마음을 잘 담을 수 있는 언어를 택해 쓰자고 하며 골랐던 언어다. 사실 어떤 언어든 정성껏 펜으로 눌러써나가는 글씨에는 마음이 가득 담기기 마련이다. 그 편지의 내용을 보며 상대방이 느낄 감정들을 생각할 때 흐뭇해지고, 내 감정을 오롯이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아내와 나의 성향은 다르다. 국가관도 다르지만, 성격 또한 다르다. 결혼기념일을 한 해, 한 해 지날 때마다 그런 생각은 더욱 뚜렷해진다. 우리는 다르다. 그건 이제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문제는 상대방을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는지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과 성향이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편지를 읽으며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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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내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자기야 우리는 왜 크게 싸우지 않을까요?"

"음.. 우리는 작은 말다툼 정도는 하는데 크게 싸운 적은 없죠?"

"자기랑 나는 성격도 완전 다르고, 많이 다른 거 같은데 신기하네요"

"다르지만 서로 이해하는 범위가 넓어서 그렇지 않을까요? 자기는 완벽주의자이지만 내가 완벽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포기하고 지나가잖아요"

"맞아요. 사람은 안 바뀌니까요."

"그 생각이 바로 우리가 아직 살고 있는 이유인 거 같아요"



결혼기념일 당일 밤, 침대 올라가 잠을 자려고 누웠을 때 아내가 자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본다. 아내가 곤히 자는 모습을 보고, 얼굴에 붙인 수면 마스크 팩을 살펴보고는 살짝 미소를 짓고 다시 눕는다. 다시 오른쪽과 왼쪽에서 다리가 내 몸에 올라온다. 꽤 무거운 그 다리들을 충분히 감당하고 참을 수 있다. 그 상대방의 습관과 행동들은 힘을 준다고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냥 일상의 행동처럼 느끼고 넘어가면 특별히 기분 나쁠 것이 없다. 아내는 내 코 고는 소리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코골이에 좋은 이런저런 식품을 챙겨줄 때도 있지만 가장 간편하게 자신이 잘 때 귀마개를 하고 잠이 든다. 소리에 예민한 아내도 그 방법을 쓰고서 라도 침대의 내 옆을 지킨다.


그렇다. 그게 우리가 아직 함께 하고 있는 이유다. 이렇게나 성향이 다른 우리는 아직까지 함께하고 있다. 아내의 말을 빌려, 우리는 앞으로도 모두 잘 될 거다. 매사에 부정적인 판단과 걱정을 먼저 하는 나에게 아내는 늘 이야기한다.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인 말을 먼저 하라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일곱번째 결혼기념일을 보낸다. 여전히 잘 되지 않지만, 그래도 노력이라도 해본다. 아내의 말을 듣고. 이렇게 우리의 삶의 더께는 점점 더 두꺼워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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