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걱정이 많은 편이다. 어찌 보면 겁이 많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처음 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 비해 좀 더 두려워하고, 내 의견을 말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런 걱정 많은 성향은 나를 소극적으로 만들고, 더욱 나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엄한 편이었던 부모님의 잔소리를 들으며 내가 하는 모든 것을 나 자신 스스로 검열하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실수 한 번이면 모든 것이 망쳐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대 중반까지 조용하고 어수룩한 모습으로 지냈다. 그런 걱정의 마음이 40대가 된 지금은 조금 나아졌다. 지금은 좀 더 과감히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시도해 보고 그것이 실패한 시도라고 해도 크게 마음의 동요를 겪지 않는다. 지금은 내 옆에 내내 붙어서 잔소리할 사람은 없다. 옆에 아내가 있지만 아내는 잔소리를 시시콜콜하는 성향은 아니다. 결국 내가 행동을 결정하고 나 자신이 그 결과에 책임진다.
아이가 말을 하기 시작하고 자기 생각대로 하길 원하는 시기가 온 이후에 아이에게 이런저런 잔소리를 할 때가 있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그런 잔소리 꾼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무언가를 자유롭게 하도록 놔두는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부모님과 같이 잔소리를 하지 않는 부모가 되고야 말겠다는, 그렇게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아이가 조금씩 성장해 나가면서 깨져 가는 것 같다. 어느 순간 아이에게 매번 잔소리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조금 놀라게 된다. 나뿐 아니라 아내도 나의 이런 태도에 놀란다. 잔소리를 할 것 같지 않았던 나의 모습에 아내는 잔소리 좀 그만하라는 말을 수시로 던진다. 나는 잔소리가 많았던 부모님처럼 되어가고 있는 걸까?
내가 아이였을 때도 꽤 많은 잔소리를 들었다. 이건 하면 안 되는 거고, 나쁜 사람을 조심해야 하고, 예의도 지켜야 한다는 부모님의 잔소리는 10대 내내 이어졌다. 그래서 그런 잔소리 듣는 시간을 줄이려고 대화를 줄여갔다. 부모님과 같이 있는 시간을 줄이고, 방안에 있는 시간을 늘렸다. 부모님의 의도는 아들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것이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정말 의도에 맞는 모습으로 완성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많은 부분이 잔소리의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최선을 다하셨지만 그 선한 의도와는 다르게 내가 느꼈던 건 무서움과 그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내의 어린 시절도 비슷했던 것 같다. 특히 잔소리가 많았다고 하는 장모님 덕분에 아내와 처남이 잘 자랄 수 있었지만 아내는 장모님과 많은 대화를 하기보다는 적정한 거리를 두기를 원한다. 오히려 처남과 많은 대화를 하는 아내는 그래도 아예 대화를 닫고 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아내는 여전히 애정 어린 잔소리를 던지는 장모님의 말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좀 더 이해하려고 하는 부분도 있다. 그런 장모님과의 관계 때문인지 아내는 아이에게 잔소리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건 아내의 긍정적인 천성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잔소리에 대한 느낌이 좋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긴 잔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침에 일어나 아이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에게 먹일 때부터 내 잔소리가 시작된다.
“당근아 한 입 먹어”
“당근아 씹으면서 있어야지!”
“빨리 먹어 늦겠다!”
그렇게 조용하고 말이 없던 나는 요즘 이런 잔소리들을 계속 쏟아내기 시작했다. 주차장에서 아이에게 조심하라고 소리치고, 키즈카페에서 뛸 때 먹을 것을 먹으며 뛰지 말라고 소리친다. 그렇게 쌓이면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된다는 말들이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런 말들을 듣는 아이는 조금씩 불만의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아빠는 맨날 다 안된다고 해!!”
“아빠 혼내면 싫어요”
아내도 나의 이런 태도에 불만이다. 굳이 그렇게 많은 잔소리를 쏟아낼 필요가 있냐는 이야기를 늘 한다.
“당근아 아빠는 완전 잔소리쟁이야~! 그치?”
왜 이렇게 잔소리가 많아진 걸까. 아마도 가장 크게 작용한 건, ‘걱정’ 일 것이다. 아이가 밥을 먹지 않을까 봐, 아이가 넘어질까 봐, 아이가 사고 날까 봐 하는 걱정. 그 걱정을 야기하는 이미지들은 아이가 움직일 때 순간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면서 그런 잔소리들을 쏟아낸다. 잔소리 이전에 아이가 다치거나 아픈 모습이 먼저 떠오르고, 아이가 조심하지 않거나 밥을 먹지 않을 때 예상되는 좋지 않은 결말을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사전에 먼저 막고 주의시킨다. 이것이 적당히 조절이 되면 좋겠지만 늘 마음보다 행동이 앞선다. 입이 먼저 열리고 그다음에 생각이 따라온다.
이제 잔소리를 좀 줄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아직까지 아이는 여러 걱정 어린 나의 잔소리들을 잘 받아주는 편이다. 이것도 조심하고 저것도 조심하라는 나의 말을 듣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아빠가 밉다는 말도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좋아한다는 말을 꺼낸다.
부모님이 거주하시는 아파트를 걸어가다 단지 안에 있는 작은 야산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그쪽을 한동안 관찰했다. 무슨 동물인지 계속 부스럭대며 이동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아기 고양이 네 마리가 서로 장난을 치며 이동 중이었다. 주변에 어미가 있는지 찾아봤는데 어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 작은 야산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탐험 중이었다. 그 작은 아기 고양이들에게 좀 위험해 보였지만 그 주변에는 잔소리하는 부모는 없었다. 고양이들은 한 동안 그 주변에서 장난치며 이리저리 땅을 파헤치다가 어디론가 가버렸다. 다시 부모님 댁으로 가다 어미 고양이로 보이는 큰 고양이가 풀밭에서 잠을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아이들을 그렇게 위험한 곳에 내보내고 잠을 잘 수 있다니.
어쩌면 아이를 키워 나간다는 것은 위험한 세상으로 모험하기 위해 아이를 계속 그 속으로 보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걱정되지만 정말 필요한 잔소리만을 하면서 아이가 직접 경험하고 그 위험을 체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좀 더 아이를 위한 것인지 모른다. 잔소리를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 중이다. 그래도 아이가 위험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겠지만 쓸데없이 잔소리했던 상황들은 줄이려고 한다. 아이가 스스로 판단하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심적으로 어려움이 느껴지겠지만 그래도 좀 더 아이를 놔두어야겠다.
아이가 더 멀어지기 전에, 아니 아이를 위해서 이제부터 잔소리를 조금 참기로 했다. 그런 다짐을 하면서도 아이에게 말했다.
"당근아 이제 사탕 그만 먹어. 오늘 벌써 2개나 먹었잖아."
아.. 잔소리 없는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아내는 옆에서 그저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