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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Mar 21. 2018

#7. 가깝지만 어려운 가족과의 관계



 내 가족과는 제일 가까운 관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가족들이 서로 관계가 소원하거나 대화를 잘 하지 않는다. 우리 집도 대화를 잘 하지 않는 집이었다. 아들만 둘이었던 우리 집은 늘 침묵이 흘러, 어머니는 늘 침묵의 집이라고 불렀다. 아들들의 특성인지, 원래 그런 성격이어서인지, 각자 본인 할 것을 하다가 모여서 밥먹고 다시 각자 하던 일로 돌아가는 패턴이 10대부터 30대까지 계속 이어졌다. 어쩌면 집에 무뚝뚝한 남자 셋이 있고, 어머니 혼자 여자였기 때문에 엄청 답답하셨을 것이다. 특히 우리 뒷바라지 하랴, 아버지도 챙기랴 힘드셨던지, 내가 20대 초에 어머니는 유방암 선고를 받으셨고, 투병 생활을 하셨다. 다행히 긴 항암 치료끝에 일상생활이 가능하게 되셨지만, 그 이후로도 여러 부분이 아파서 계속적으로 운동을 하며 관리를 하셔야했다. 그 때 내 동생은 군대에 들어갔고, 내가 어머니 병수발을 하고 집안 일을 하며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이후 부터 나는 늘 나와 가까운 사람이 언젠가는 한 순간에 없어져 버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잘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그게 내 가족에게는 잘 되지 않았다. 너무 어색하기만 했다.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편하지만 대화가 잘 되지 않는 어색한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의 아내와 만나고 나서는 결혼 전 부터 달라지는 점이 있었다. 우리 가족들과 아내가 같이 만나는 날에는 늘 집에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우리가 그동안 서로 대화하는 방법을 몰랐던 걸까? 아니면 아내가 그만큼 대화를 하려고 유도하는 걸까? 어느 순간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어머니: 우리 집은 침묵의 집이야. 남자 셋이 정말 말이 없어서, 대화는 커녕 말소리 듣기도 힘들었어.
아내: 정말요? 말도 안되는데요? 말을 안하고 어찌 생활할 수가 있어요? 우리 가족은 다 수다 떠는 거 좋아합니다.
나: 그래도 우리가 말할 때는 많이 하지 않았어요? 많지는 않았지만...
어머니: 아이고. 많이 하기는? 집에 식구들만 있으면 우주 진공상태에 있는 것 같았다니까!
아내: 어머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제가 오니까 다들 말씀을 많이 하시네요. 아버님만 빼고요!
어머니: oo아빠는 말도 마라. 평생 수다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니까.  
아내: 앞으로 우리 작은 일도 같이 이야기 나누시죠!


 아마도 우리 가족은 서로 ‘대화’ 라는 것을 많이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아주 사소한 이야기도 서로 같이 나누면 더 재미있어진다는 걸 우리 가족은 그 동안 몰랐던 걸까? 대화가 없다는 건 서로의 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각자 무슨 고민이 있는지, 무슨 좋은 일이 있는지, 하루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족끼리도 공유를 하지 않으니, 서로가 점점 대하기 어려워지고 불편한 관계가 되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30년이 넘게 살았으니 그 자체가 그냥 가족 관계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관계 속에 아내가 불쑥 끼어들면서 우리는 사소한 이야기를 차 한 잔과 함께 나누며 즐거운 일상을 만들 수 있었다.


 문제는 우리 가족에게만 있지는 않았다. 아내는 장모님과 대화하거나 통화하는 걸 어려워했다. 막상 심천에 가서 부모님을 만나거나 남동생을 만날 때는 굉장한 수다를 떨었던 아내였는데, 한국에서 장모님과 통화를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날을 울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왜 그렇게 장모님을 어려워 했는지 몰랐다. 막연히 ‘엄마가 그렇게 무서운가?’ 라는 추측만 할 뿐이었다. 어느 날은 너무 궁금해서 물어봤다.


나: 아니 왜 엄마하고 통화하면 표정이 우울해요?
아내: 엄마가 늘 딱딱하고 무서워요. 통화하면 화나면 막 전화 끊어버리고 그래요.
나: 응? 근데 그때 만날 때는 별로 안그렇던데...
아내: 그래도 만나도 잔소리 심하니까 무섭습니다. 그리고 우리 결혼하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하십니다.
나: 결혼도 반대하시나? 왜 그러시지? 아직 나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아내: 엄마가 원래 그래요. 그래서 엄마 화나면 동생하고 내가 그냥 가만히 있어요.


 아내의 가족은 장모님, 장인어른, 처남, 아내가 다 모이면 수다도 재미있게 떨고 시끄러운 가족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엄한 장모님을 처남과 아내 모두 무섭고 어려워 했다. 보통 딸이 있는 집안은 엄마를 무서워하지 않는 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왜 장모님이 그렇게 행동하셨는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아내와 내가 중국에 두 번째로 방문하여 처가댁에 머무를 때였다.


나: 이번에 장모님 휴대폰을 바꿔드리면 어때요? 아직도 2G폰 그 낡은 걸 쓰시던데, 배터리 접촉도 불량이어서 매번 뺐다 꼈다 하셔야 되잖아요?
아내: 아니에요. 우리 엄마 그런거 바꿔도 쓰지도 못해요. 안바꾼다고 할 걸요?
나: 그래도 우리가 매장가서 사서 직접 설정 해드리면 되죠. 보니까 한자모양 쓰면 글자로 인식이 자동으로 되서 문자 보내기도 쉽던데요.
아내: 에이 그래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요. 내가 우리 엄마 잘 알아요~
나: 아니야. 저기 매장 가서 한 번 보자. 처남도 같이 가자고 해봐요.


  그 당시만 해도 중국의 중년 층들이 아직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가 아니었다. 젊은 사람은 많이 썼지만, 중년/노년층은 쓰지 않았었다. 장모님도 마찬가지로 옛날 폴더폰을 쓰셨는데, 얼마나 오래 쓰셨는지 낡아서 전원이 안들어오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나와 처남, 아내는 핸드폰 가게에 들러 가격이 적당한 삼성 스마트폰을 하나 구입하여 장모님께 드리고 설정도 다 해드렸다. 처음엔 ‘왜 사왔냐’ ‘안쓴다’ 고 하시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하나 배우시고는 너무 잘 쓰신다. 다른 친척들 앞에서는 자랑도 하신다. 친척 집 방문했을 때, 스마트 폰을 식탁 앞에 툭 던지시더니 ‘이거 좀봐 동진(중국이름) 이가 사줬어’ 라고 자랑도 하신다. 아내도 그렇게 장모님이 좋아하고 자랑까지 하실 줄은 몰랐다고 한다.  그 시점 이후 아내와 장모님은 해가 갈수록 점점 친구같이 친해졌다. 장모님도 딸과 함께 쇼핑도 하고 밥도 먹고 살갑게 장난치는 것이 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참 장모님과 이야기하던 아내는 결혼 전에 이렇게 이야기 했다.


아내: 엄마가 자기랑 결혼하는 거 반대를 엄청 했어요.
나: 그래요? 왜 그랬지? 별로 나한테는 티를 안내셨는데.
아내: 나도 그 때 왜 그런지 몰랐어요. 그냥 자기가 마음에 안들어서 그런줄 알았어요. 그래서 점도 세번이나 보고.. 사주/궁합이 세 번다 잘나와서 다행이죠.
나: 사주 때문에 허락하신건가???
아내: 아니, 그것도 있는데요. 엄마 친구가 이야기하는 걸 들었는데, 내가 엄마한테 유일한 딸이잖아요. 그런데 외국 사람이랑 결혼하면 멀리 떨어져서 살아야 되니 잘 못보잖아요. 그래서 더 반대하셨다고 합니다.
나: 아! 그렇구나. 당연히 그런 건 섭섭하시겠죠.


  자기 딸을 멀리 보내는것이 너무 서운해서 결혼을 강력히 반대하셨던 장모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 어느 누구 보다 사위를 잘 챙겨주신다. 물론 조금 엄하셔서 짜증도 잘 내시긴 하지만.^^ 명절 때 한 번씩 다녀오면 우리가 가져간 트렁크는 온갖 먹을 거리와 곡식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꼭 직접 만든 중국 떡도 챙겨넣어 주신다. 부모님 선물과 친척 줄 간식도 잊지 않으신다. 무엇보다 지금 아내와 장모님이 영상통화 할 때나, 중국에 갔을 때 같이 산책하며 대화 나누는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둘이 너무나 친구같이 이야기 하고, 사소한 고민도 같이 나누는 모습이 좋다. 이제 아내는 장모님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아내가 진정한 딸이 된 것 같아 내가 기쁘다.


 나와 아내의 국적은 비록 다르지만, 서로의 가족에게 준 영향은 참 많다. 각자 자신의 가족들을 어려워하고 무서워하고, 멀게 느꼈는데, 각자가 바라보는 삶의 방식과 대화 방식으로 상대방의 가족과 만나게 되니, 긍정적인 에너지로 돌아온 것 같다. 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혼자 장모님 댁에 갈 수 있고, 아내도 혼자 우리 부모님 집에 올 수가 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가족에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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