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있어 큰 이벤트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기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직업을 이벤트 진행하는 일을 택하지 않는다면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내 인생에서도 큰 이벤트는 많지 않았다. 내가 준비한 이벤트도 많이 없었을 뿐더러 연애하면서 진행했던 이벤트들은 모두 소소한 것들 뿐이었다. 원래 조용한 걸 좋아하고, 소심한 마음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직접 뭔가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진행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누가 진행해준 이벤트라고 해도, 어렸을 적의 돌잔치나 생일잔치가 다였던 것 같다.
아내와 연애를 시작하고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고, 몰래 회사에서 데이트도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가버렸다. 그러던 와중에 아내와 여기저기 데이트를 다니며 즐겁게 보내던 어느 순간, 아내가 물었다.
아내: 오빠 우리 언제 결혼 하면 좋을까요?
나: 음... 빨리 하면 좋죠. 자기가 지금 혼자 살고 있으니까. 가능하면 빨리 정해서 하면 좋지 않을까요?
아내: 내가 혼자 있는게 싫으니까, 빨리 하면 좋겠어요. 우리가 빨리 준비하자.
나: 그래요. 그럼 언제가 좋을까요?
아내: 근데 오빠 프로포즈는 할거죠? 꼭 해야되요!
이때부터 좀 더 구체적으로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먼저 걱정이 앞섰다. 여러 대중매체나 주변 사람에게서 결혼 준비를 하면서 싸우거나 다툰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하는데, 서로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여러가지를 한꺼번에 급하게 준비하다 보면 결국 서로의 목소리를 관철 시키려고 싸우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도 한국에서 외로운 아내와 최대한 빨리 같이 하고 싶은 마음에 일단 D-day 잡는 것을 먼저 하기로 했다. 그 당시가 1월 즘 이었을 텐데, 우리는 그해 5월 어느 시점을 목표로 잡았다. 일단 서로의 어머니들과 이야기를 먼저 시도했다.
나: 엄마 저희 이제 결혼을 해볼까해요.
어머니: 그래 너희가 좋으면 한 번 준비해봐라. 언제즘 하려고 하니?
나: 저희 생각에는 올해 5월 즘이 어떨까 해요.
어머니: 5월?? 올해 5월? 아이구. 너무 빠른 거 아니니?
나: 그런가요? 그래도 이왕 하는 거 빨리 하면 좋을 거 같아요.
어머니: 어휴. 예식장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한 번 알아봐.
아내: 엄마 나 결혼하고 싶어요.
장모님: 안되! 뭘 그렇게 빨리해?
아내: 그래도 정말 좋은 사람 만났으니까 얼른 해야죠. 엄마가 날짜 좋은지 좀 봐주세요.
장모님: 00어머니도 아셔? 날짜는 언제하려고? 뭘 그렇게 빨리?
아내: 저희 5월 초즘 생각하고 있어요.
장모님: 내가 날이 좋은지 한 번 볼게.
결국 5월 초의 어느 주말로 나와 아내가 정하고 있었던 어느 날, 장모님이 전화하셔셔 5월은 무조건 안된다고 하셨다. 날이 좋지 않으니 좀 더 연기하라는 말씀이어서 그 말을 안들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까지 장모님은 멀리서 결혼한다는 것을 탐탁치 않아하셨는데, 그래도 완강한 반대에서, 그나마 온순한 반대로 조금은 마을을 돌리고 있던 시기였다. 그 당시 나는 그 반응 자체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자기가 미안하다며 나를 최대한 보듬어 줬다. 그러고는 뒤에서 본인은 훌쩍거리는 모습을 종종 봤다.
한 달 정도 지나고 나서 최종 날짜는 9월 초로 결정되었다. 장모님은 그 한 달동안 여러 점집을 돌아다니시면서 본인이 원하는 답변을 들으시려고 했다. 그 답변은 아마 ‘ 이 결혼은 하면 안되, 그 남자는 별로야’ 였을 것이다. 나와 아내가 결혼하는데 대해 아직은 찬성이 아니셨으니까. 아내는 이런 장모님 반응에도 걱정하지 말라고 우리가 꼭 결혼할 거라고 늘 이야기 했었다.
장모님: 여기 두 사람 궁합 좀 봐주세요.
점집1: (살펴본다) 오. 두 사람 너무 좋은데, 둘이 잘 맞아 꼭 결혼시켜요?
장모님: #$% 그래요??
(다른 점집에서...)
장모님: 이 두 사람 궁합 좀 봐주세요.
점집2: 천생연분이야. 왜 반대해? 얼른 결혼시켜!
장모님: 진짜 좋은가.....?
장모님친구: 세 군데 갔는데 다 좋다는데 반대 그만하고 결혼시켜. 날짜도 9월이 좋다잖아!
그 점집 세 군데의 결과 덕분에 장모님은 마지못해 승낙을 하셨다. 그런데 승낙하고 나서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우리 둘을 챙겨주시고, 우리 부모님까지 챙겨주셔서 많이 놀랐던 기억이 있다. 9월 이라는 날짜는 우리에게 너무 늦은 듯 보였지만 막상 준비를 시작하니 뭘 어찌해야할지 몰라 우리 둘은 조금 헤메었다. 일단 인터넷을 찾아보고, 뭘 준비해야하는지 리스트를 만들었고, 우리가 그동안 모았던 자금을 다 정리해 놓기 시작했다. 모아둔 돈이 많이 않았지만, 아내는 우리가 할 수 있다며 오히려 나를 격려하기 시작했다.
아내: 우리 모은 돈을 다 합쳐 보시겠어요?
나: 다 합치니까 000가 나오네요. 너무 적게 보이네... 에구..
아내: 괜찮아요. 우리가 이 돈 잘 활용해서 준비하면 됩니다. 오빠가 여러가지 중에서 뭐에 제일 돈을 투자하고 싶으세요?
나: 음.... 나는 신혼여행은 좀 멀리 가고 싶어요. 좀 이쁜데로..
아내: 나도나도! 그렇게 할까요? 우리 신혼여행엔 좀 많이 투자하고, 나머지는 맞춰서 하죠.
나: 그래요. 그렇게 하자! 그래도 우리 신혼집 전세금은 대출 좀 받고 가까운 곳으로 가요~
아내: 좋아요. 그건 오빠가 알아서 해주시고, 집은 같이 보러가요. 우리가 할 수 있어요!
나: 일단 나머지 부터 준비하자!!
일단 준비를 하기로 결정하고 보니, 결혼식장 예약,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 예약, 한복 맞추기, 청첩장 만들기, 돌리기 등등 해야할 것들이 많았다. 우리는 양쪽 집에 도움을 최대한 받지 않기로 했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야할 것들을 준비해나갔다. 그런데 여기가 한국이다 보니, 아내가 준비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아무래도 대부분의 업체 사이트들은 한글로 설명이 되어 있고, 여러가지 정보를 얻는 과정에서도 대부분 한글을 통해 알아봐야 하기 때문에 아내가 찾아보고 할 수 있는 영역이 많지 않았다.
아내: 아.... 저는 잘 모르겠어요. 한국말로 봐도 정확하게 잘 모르겠어서 제가 알아보는게 어려워요. 오빠가 좀 알아봐 주시겠어요?
나: 앗. 그쵸? 한국어로 되어 있어서 검색해도 잘 모르겠죠?
아내: 네 그냥 오빠가 알아보고 설명을 해주시겠어요?
나: 그런데 결혼 준비하는데 대부분 여자가 많이 보고 결정해야되는데요.. 나는 이런 거에 대해 감이 없잖아요.
아내: 일단 알아보시고 설명을 하나하나 해주시겠어요?
그 날 부터 나는 열심히 검색을 시작했다. 일단 결혼식장은 몇 군데를 추려서 아내에게 설명해주고, 어머니에게도 한 군데를 추천받아서, 아내와 한 번씩 방문해서 시설을 돌아보고 가격도 알아봤다. 내가 스드메도 여기 저기 알아봤는데, 아내는 복잡한 것 보다는 최대한 간단하면서 어느 정도 실력도 있는 곳을 찾길 바랬는데, 생각보다 찾기가 어려웠다. 몇 군데를 돌아다니고 알아보다가 결혼식장은 어머니에게 추천받은 작은 결혼식장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가격할인도 괜찮고, 깨끗한 시설이 마음에 들었다. 아내도 그곳의 인테리어를 마음에 들어했다. 그곳에 다시 방문해서 예약을 하고 시식 날짜도 정했다. 시간은 11시에 시작하는 식으로 했다. 보통 결혼식장 시식은 2명에게 무료 시식권을 주게된다.
아내: 저기 죄송한데 시식권을 두 장 더 주시겠어요?
직원: 엇, 죄송하지만 저희가 시식권은 두 장만 드려요.
아내: 두 장만 더 주세요. 저희가 어머님, 아버님과 같이 와서 먹으려고 합니다. 가족도 같이 먹어보는게 좋습니다.
나: 그래요. 두 장 더 주세요. 저희가 같이 와서 먹어볼게요.
직원: 안되지만... 두 장 더 드릴게요.
우리는 시식권 네 장을 받아서 어머니, 아버지와 같이 와서 먹었다. 음식은 깔끔하고 맛있었다. 나는 꽤 감동 받았다. 난 그저 둘이 와서 시식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아내는 가족들이 다 같이 먹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내근 불편할 법 한데도, 부모님을 먼저 챙겨주어서 고마웠다. 그래서 늘 나도 장모님에게 뭘 해드릴 수 있을지 생각하고 아내에게 물어보는 편이다. 멀리 계시니 같이 뭘 할 시간이 많이 없다는 것이 늘 아쉽게 느껴진다. 한국에서 결혼 준비할 때는 장모님이 전혀 같이 할 수 없으니 그것 또한 그 당시에는 너무나 아쉬웠다.
스드메는 결혼식장에서 제공하는 패키지 중 하나를 했다. 내가 다른 일반 스튜디오도 가보자고 했지만 아내는 거기 소개 되어 있는 패키지 상품을 마음에 들어했다. 스튜디오 촬영을 하는 날에 우리는 새벽 일찍 나갔다. 주변에서 하루종일 찍는다는 말을 들었던 우리는 잔뜩 긴장하고 스튜디오로 갔는데, 생각보다 촬영이 빨리 끝나 점심 먹을 즘에는 모든 촬영이 끝나있었다. 아내가 이런 사진 촬영하는데 표정을 자연스럽게 하고, 포즈도 자연스러워서 수월하게 촬영했다고 한다. 드레스 고를 때는 아내와 같이 가서 아내가 옷을 갈아 입을 때 마다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모든 드레스가 잘 어울려서 둘 다 기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한복을 구입하고, 청첩장을 직접 디자인하는 사이트에서 만들어 주문하고, 여러 가지 일들을 주로 내가 많은 부분 찾아서 아내에게 설명하고 그대로 내가 결정했다. 대부분의 예약과 검색, 준비 등을 내가 주도적으로 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지만, 내가 열심히 뛰어서 뭔가 준비한다는 것이 기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나와 아내가 주인공이 되는 행사를 직접 준비하는 것이니까! 아마 내가 평생 이런 큰 행사를 준비해볼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다.
회사에 결혼 날짜를 알리고 청첩장을 돌리는 날에 우리는 누구에게 주고, 누구에게 주지 말아야할지 애매했다. 아내는 나보다는 소심하지 않고 무심한 성격이어서 다 돌리기로 하고 인사를 한 바퀴 돌았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우리 사이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놀라면서 축하를 해줬다.
나: 누구에게 주죠? 애매하네...
아내: 그냥 다 주자.
나: 다 줘요? 전 직원 다?
아내: 그냥 다 주고 안오면 안오는 거죠. 인사하고 그냥 한 번 돌려요.
장모님, 장인어른, 처남의 비행기 표를 끊는 것을 마지막으로 결혼식의 준비를 모두 마쳤다. 아니 아직 한 가지를 못했다. 아내가 원하는 프로포즈를 하지 않았었는데, 나는 친한 친구와 계획을 세워서 다 같이 모이는 모임에서 화면을 띄우고 프로포즈를 계획했었다. 아내는 언젠가는 프로포즈를 할 것이라 생각은 했겠지만, 그 날 할 거라는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아내에게 반지와 꽃으로 서프라이즈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쳤다.
결혼을 준비한다는 것은 어쩌면 매우 번거로운 작업일 것이다. 우리는 한 명이 외국이 이어서 한 쪽이 없는 결혼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외국인인 아내가 한국에서 하는 결혼 준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싸우지 않았던 것인지 모른다. 또 결혼 준비 중 많은 부분을 생략하고 건너 뛰었다. 예단이나, 혼수 등은 최소화하고, 각자의 부모님을 설득하는 작업도 같이 진행했다. 서로 외국인 사위와, 며느리를 본다는 생각 때문인지 부모님들이 많은 부분을 양보해주시고 알아서 하라고 해주셔서 그것 또한 우리가 싸울 일을 많은 부분 줄여줬던 것 같다. 우리가 싸우지 않았더라도, 큰 행사를 준비하면서 서로의 성격이나 특성을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다. 나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부분이 있어도, 아내가 양보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대부분은 내가 결정하지만, 어떤 부분은 아내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그렇게 서로 대화를 많이 하면서 서로의 취향과 하고자 하는 방향을 알게 되었고, 서로의 성격을 더 잘 알게 되었던 것 같다. 우리의 결혼 준비가 쉬웠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매우 즐거웠다고는 이야기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가지 외부 요인들이 영향을 줬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는 같이 할 마음의 준비가 끝났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