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후반까지 나는 여행을 많이 다니지 않았다. 특히나 해외여행도 전혀 가본 적이 없어서 늘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가족들은 모두 짧거나 길게 해외 여행을 갈 기회가 있었고, 각자의 노력으로 다녀왔었다. 내 소극적인 성격도 한 몫 했겠지만, 해외에 나갈 기회가 선뜻 내게는 찾아오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도 해외로 여행을 가자는 친구들이 많이 없었다. 물론 그 시절은 여행을 갈만한 자금이 넉넉한 시절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연구소 알바를 하고, 조금씩 모은 돈으로 국내 여행은 종종 다니긴 했었다.
친구: 우리 여행가자~!
나: 어디로 가려구? 우리 이번엔 해외 여행 어때?
친구: 해외? 좋지. 가능할까? 그럼 가까운 곳으로 가자. 돈 부담도 없고 하니까.
나: 음.. 그럼 중국 어때? 그나마 상해가 가까운 것 같은데...
친구: 오 좋지 샹하이~ 거기 한 번 가볼까? 내가 패키지 상품 한 번 알아볼게.
나: 그래그래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처음 비행기를 타고 상해를 다녀왔다. 마치 세상에 처음 나가는 어린 아이 처럼 비행기를 탔을 때 가슴이 콩닥콩닥 떨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가 26살 때였다. 그 흔한 어학연수도 가지 않고, 비행기 조차 20대 중반을 넘어 처음 탔으니, 그렇게 떨릴 수가 없었다. 처음 겪어보는 공항의 북적임과, 출입국 심사, 그리고 비행기의 이착륙, 모든 것이 새로웠지만, 무엇보다도 상해 공항에서 처음 나갔을 때 그 느낌은 아직도 잊지 못하겠다. 더운 날씨와 빨간 색 택시, 여기 저기서 들리는 중국어 때문에 ‘내가 정말 해외에 왔구나’ 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주 짧은 2박3일간의 여행이었는데, 그 하루하루가 전부 다 아직 생생하다. 그때 친구와 호텔에서 중국 라면을 먹었었는데, 향신료 때문에 전부 토했던 기억도 있다. 이 여행 덕분에 그 친구와는 더욱 더 친해질 수 있었다. 둘 다 해외 여행이 처음 이었기 때문에, 상해라는 가까운 여행지는 최적의 선택이었다.
그 여행 이후, 정말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 돈도 모으고 여행사 사이트를 이리저리 기웃 거리긴 했지만 막상 갈 기회가 잘 생기지 않았다. 대학원 진학에서 부터 취업을 하고, 그 이후에도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경력을 쌓고 돈도 어느 정도 모였을 때 가는 것을 생각하고 포기 하고 있었다. 그럴 때 아내를 만났다.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 중국 심천이라는 지역이 어디 있는지 처음 알았고, 중국의 땅이 엄청나게 큰 땅이라는 것을 깨닳았다. 아내도 심천/홍콩 쪽은 잘 알지만, 상해나 북경은 잘 몰랐다. 오히려 나보다 정보가 없는 듯 했다.
나: 오 00씨가 중국 여행도 많이 가봤겠네요? 상해 가봤죠?
아내: 한 번 가봤습니다. 상해 별로에요.
나: 왜요? 야경도 이쁘고, 깨끗한 도시 던데요?
아내: 거기 지리도 잘 몰라서 별로 기억이 안좋아요.
나: 잉? 지하철도 잘 되어있어서 찾아다니기 좋던데. 예전에 패키지 여행갔을 때 자유시간에 막 돌아다니고 그랬어요. ^^
아내: 전 길치라서 그렇게 못해요. 상해에서 많이 고생했어요. ㅠ
아내와의 첫 여행은 가까운 곳이었다. 안면도로 대하를 먹으러 다녀왔는데 첫 여행이라 그런지 조금 어색했지만 둘 다 대하를 많이 먹고 왔다. 그 이후에는 국내 여행은 잘 가지 않았다. 차로 이동해야되는 것도 있고, 아내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 많이 없어서 이기도 했다. 회 종류나 매운 음식을 못먹었기 때문에, 갈 곳이 마땅히 찾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좀 편하게 입에 맞는 음식이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한참 고민하다가 해외로 눈을 돌렸다. 그때는 자금도 어느 정도 있었기 때문에 해외여행도 고민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내: 오빠는 어디로 여행가고 싶어요? 우리 안간지 한참 되었습니다.
나: 한국 안에서는 마땅히 떠오르는 곳이 없네요. 음식도 문제고.. 혹시 해외는 어때요?
아내: 해외도 좋죠. 어디 가고 싶으세요?
나: 난 어디든 좋아요. 자기랑 가면 장소가 문제겠어요?
아내: 그럼 한국에서 같이 있자~
나: 아... 아니.... 여행가자! 호.. 홍콩 어때요? 나 한 번도 안가봤는데.
아내: 오, 홍콩 좋아요! 쇼핑쇼핑! ^^ 그런데 가고 싶은데 있으면 이야기 해야죠. 말해야 알 수 있잖아요!
홍콩. 아내의 고향인 심천 바로 옆의 도시. 홍콩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예전 홍콩 영화에서 보던 도심지의 모습이었다. 왠지 홍콩에 가면 다들 주윤발 처럼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다닐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아내와 홍콩에 도착해서 자유여행을 하면서 그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다. 밤에 이쁜 야경도 있고, 쇼핑을 할 수 있는 많은 쇼핑몰들이 있었다. 도로는 좁았고 날씨는 더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잘못 예약한 호텔이었다. 가격이 싸서 인터넷으로 예약하고 찾아갔는데, 사진에서 보였던 넓은 모습이 아니었다. 딱 사진에 있는 그대로 여서 아주 작은 방이었다. 침대에서 내 다리는 다 펼수도 없는 길이. 그때만 생각하면 아내와 나는 깔깔대며 웃는다. 또 기억에 남는 건 음식이다. 홍콩 요리는 다 느끼하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내 입에도 잘 맞았다. 그래서 돌아다니며 엄청나게 많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그때부터 나도 아내의 입맛과 점점 비슷하게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시작된 아내와의 해외 여행은 1년에 1-2번씩은 계속 계획을 세워 나가게 되었다. 여행 계획을 세우다 보니 전혀 생각지 못했던 문제가 튀어나왔다. 우리가 여러 여행지를 고려하고 있을 때, 일본, 태국, 싱가폴 등 여러 나라 들이 나왔다. 그런데 검색을 하다보니, 비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 국적인 여권이면 무비자로 갈 수 있는 국가가 많지 않았다. 일본은 복잡한 비자 신청이 필요했고, 대만도 대사관에서 비자 신청을 미리 해야 했다. 싱가폴도 복잡해서 갈 생각도 못했고, 그나마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태국 이었다. 중국 여권으로 도착비자를 받아 들어갈 수 있었다.
나: 중국 여권으로 갈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네요?
아내: 그래요? 싱가폴은 어때요?
나: 거기도 중국 여권은 비자 신청해야되는데, 여긴 좀 까다로운 모양이에요.
아내: 아.. 정말 왜그러지? 그럼 일본은요? 일본 정말 가고 싶은데...
나: 일본도 비자 신청이 복잡하네요. ㅠ
아내: 앙 ㅠㅠㅠ 그럼 태국은 어떨까요? 친구들도 많이 가던데...
나: 오 태국은 도착비자로 가능하네요!!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통해 태국을 갔다. 태국에는 두 번 방문했는데, 둘 다 태국의 지하철과, 보트, 음식을 좋아했다. 무엇보다 4계절 모두 더운 날씨여서 한국이 추운 겨울에 가기에는 딱 좋았다. 아내가 추운 것을 정말 싫어하고 견디기 힘들어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주로 따뜻한 곳으로 많이 여행을 갔었다. 아내와 나는 여행지에 가면 주로 도심지를 구경하고, 미리 일정을 짜서 조금 힘들게 돌아다니는 편이다. 아침에는 무조건 일찍 일어나서 호텔 조식을 먹거나 밖에서 일반 음식을 사먹고, 쉴틈없이 다음 장소로 이동하여 구경을 했다. 그래서 휴양지 보다는 도심지가 있는 곳을 여행지로 더 선호했다.
대만, 태국, 홍콩 등을 여행하기 위해 미리 계획하고 이야기 하다보니 상대방의 여행 취향을 잘 알게되었다. 아주 사소한 것인데, 선호하는 여행지의 날씨, 음식, 호텔의 위치, 선호하는 일정, 좋아하는 쇼핑장소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하나 하게 되니까 좋았다. 내가 원하는 일정이나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상대방에게 이야기 한 후 포함시켰다. 물론 아내가 원하는 것도 포함했다.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 덧 일정표가 꽉 찬다. 그래서 바쁘게 돌아다녀야 했다. 그리고 서로 힘들게 다녀도 서로 싸운 일이 없다. 다니다가 너무 힘들거나 불만이 생기면 쌓아두지 않고 이야기 했다. 그래서 일정을 바꿔 쉬는 시간을 늘리거나 일찍 호텔로 귀가한 경우도 있다. 한 번은 아내가 음식을 잘 못 먹어 배탈이 난 적이 있다.
나: 우리 여기 갈 차례에요. 지하철 타고 가면 가깝네요.
아내: (새파란 얼굴로..) 그래요. 지하철로 가시죠.
나: 자기 얼굴이 안좋네요?
아내: 괜찮아요. 속이 좀 안좋아서 그래요. 얼른 갈까요?
나: 많이 불편해 보여요. 나도 좀 힘드니까 오늘은 바로 호텔로 가자.
아내: 그래도 오빠가 보고 싶어 하는곳인데 보고 가요.
나: 아니에요. 나중에 다른 일정 쪼개서 보고 오늘은 가자.
한 번은 태국에서 길을 잃은 적도 있다. 수상보트 시장을 가려고 했는데, 처음에 기차를 타고 다시 다른 기차를 갈아타야 했다. 그런데 그 기차가 고장나서 우리는 목적지로 갈 수가 없었다. 태국의 작은 마을이라서 말도 통하지 않고, 나와 아내 모두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그 날 우리의 일정을 모두 뒤엉켜 엉망이 되었다. 주변 마을 사람들에게 목적지를 이야기하며 다니다 보니 어떤 아주머니가 알아 들었는지, 내 손을 잡고 급하게 용달차 버스가 있는 쪽으로 갔다. 그렇게 얼결에 아주머니의 이끌림을 받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목적지로 갈 수 있었다. 둘 다 너무 당황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서 한참 웃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결국 저녁 일정은 모두 취소하기로 하고 그 시장에서 저녁까지 머물렀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 있는데, 잘못하면 서로 서운함을 느껴 싸우게 되는 경우도 많다. 여행이라는 건 처음 부터 끝까지 같이 가는 상대방의 취향이나 의견을 다 받아들이면서 진행해야하는 것 같다. 무엇보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여행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결혼 하기 전에 꼭 해외 여행이 아니더라도 같이 계획하고 가는 장거리 여행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상대방의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여행을 하다보면 상대방의 다른 모습도 만날 수가 있다.
나와 아내는 다른 여행은 모두 도심지로 갔지만, 신혼여행은 몰디브 라는 휴양지로 다녀왔다. 한 달 동안 치른 결혼식을 마치고 먼 휴양지로 가서 푹 쉬다 왔는데, 신혼여행지 결정하는데에도 아내의 무비자 입국이 중요한 이슈였다. 휴양지는 또다른 매력이 있어서 나중에 가족들과 다 함께 휴양지에서 편하게 쉬다 오는 것을 꿈꾸기도 한다. 요즘은 가족들과 해외여행도 많이 나가는 시대다. 그런 여행에 돈을 상대적으로 덜 아낀다. 예전보다는. 같은 가족이라해도 서로 모르는 모습이 많을 것이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여행을 계획하고 자유로운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내 옆의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이해하게 될 것 같다.
지금도 나와 아내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일본으로.. 중국의 다른 도시로.. 우리 뿐만 아니라 아이와 부모님과 함께 다 같이 떠나는 여행, 그런 설레임을 계속 가지고 계획 중이다. 이제 심천으로 가는 것은 더이상 여행이 아니고 또 다른 집에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중에 좀 더 여유가 생기면, 더 멀리 있는 유럽이나 미국으로 갈 꿈도 꾼다. 언젠가는 그 시간도 올 것이란 기대가 있다. 지금 바로 가고 싶은 곳을 검색해보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P.S.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과일이 있다. 아내가 정말 좋아하는 듀리안! 태국에서 아내가 시장에서 사서 먹었던 때가 있는데, X냄새가 나서 나는 도저히 못먹겠다고 했다.
나: 아이고 냄새... ㅜㅜ
아내: 하하하하 이거 진짜 맛있어요. 오빠도 좀 먹어보세요.
나: 아니요. ㅠㅠ 부탁인데 화장실가서 드시면 안될까요?
아내: ^-^ 하하하 그래요 이번엔 그렇게 할께요.
결국 아내는 화장실에서 혼자 맛있게 먹고 나에게 와서 입을 열고 “후~~ “ 하고 바람을 분다... 나는 듀리안이 싫다.. 정말... ㅠ.ㅠ 근데 언젠가 또 먹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