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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May 01. 2018

#13. 서로의 가족 초대하기



 초등학교 때 생일에는 늘 친구를 초대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상위학교로 올라가는 동안 그 횟수는 많이 줄었다.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해서 노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주로 밖에서 친구와 만났고, 집에 초대하여 노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학교 이후에는 그런 기회는 없었다. PC방이 유행하던 시절이어서 대부분 친구들과 그곳에서 만나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춘천에서 자취를 했었기 때문에 더욱 본가에 친구를 초대할 일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자취 집에서는 친구들과 술을 먹을 기회는 종종 있었다. 그래도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은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나 뿐만 아니라 아내에게도 집에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은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중국 심천 집에서 학교를 다닐 때도 크게 친구를 초대해서 노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아내는 집에서 주로 공부를 하는 스타일이어서 공부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엄했던 장모님이 반대했던 탔도 크다. 그래서 아내가 대학원을 한국으로 와서 자취할 때도 누군가를 초대해서 노는 경우는 없었다. 누군가가 집에 와서 노는게 불편하다고 한다. 이건 결혼 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나: 우리 신혼집도 잘 정리되었는데, 친구들 불러서 밥이라도 먹을까요?
아내: 자기 친구들이요? 음.. 저는 불편합니다. 안하면도 안될까요?
나: 그래도 좀 친한 친구들이랑 한 번 먹으면 어때요? 요리는 하지 말고요.
아내: 내가 누구 집에 불러서 노는게 익숙하지 않아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해요. 안하면 좋고요. 그냥 동네로 불러서 외식하시죠~
나: 아.. 그래요. 그럼 집에서는 안하고 근처에서 그냥 할게요. (최대한 공손한목소리로..)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결혼 직후 신혼집을 마련했을 때, 주변 친구들로 부터 집들이 명목의 초대 요청을 받았었다. 마지못해 아내와 상의를 했는데, 아내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 식당에서 그냥 진행했었다. 역시나 집에서 하는 것 보다는 밖에서 하는 것이 더 편하고 깔끔한 것 같다. 하지만, 결혼 하고 친구들을 초대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모임을 하던 멤버들을 초대했었는데, 그 때도 그냥 배달 음식으로 간단히 하고 보냈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나와 아내에게 누군가를 집에 초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최근의 사회 트렌드도 집에서 집들이를 하거나 초대해서 노는 분위기는 많이 없어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가족은 언젠가 새로운집에 초대할 일이 생긴다. 결혼하고 얼마 안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장모님과 처남 한국 초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 자기가 한국에 언제 처음 와봤어요?
아내: 대학원 오기 3년 전인가? 제주도에 한 번 가봤어요. 좋긴한데, 기대보다는 별로..
나: 그랬어요? 제주도 이쁜데, 요즘엔 복잡하고 비싸긴 했죠.
아내: 네, 어디 가도 많이 비쌌어요.
나: 참, 장모님은 해외에 어디 가보셨어요?
아내: 우리 엄마는 해외에 가보질 않았어요. 그냥 홍콩이 다리만 건너면 갈 수 있으니까. 거기만 많이 갔습니다.
나: 어, 그럼 결혼할 때 한국에 잠깐 한 번 와본게 다에요?
아내: 네 그때 결혼할 때 왔던게 처음 온 거에요.
나: 그렇구나! 우리 장모님이랑 처남 다시 한국에 초대해서 여기저기 구경다니면 어때요? 이번엔 좀 길게 한 달 정도 오셔서 여기 집에서 지내시라고요.
아내: Good idea! 한 번 물어볼게요~


 장모님과 처남은 나와 아내의 결혼식에 처음 한국에 오셨다. 그때는 일주일 정도만 짧게 오셨기 때문에 결혼 준비때문에 관광을 하지 못하셨다. 그래서 결혼 하고 자리도 좀 잡고 여유가 생긴 그때 초대해서 구경을 시켜 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중국에서 처음 한국에 올 때 한국 비자 발급을 위해서는 1,000만원 정도의 보증금이 필요하다. 중국에 있는 특별한 제도인데, 중국 본토 사람들이 해외에 가서 불법 체류를 하지 않도록 방지하는 제도였다. 물론 다시 입국하면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주 큰 부담은 안되었다. 이번에 장모님을 초대할 때도 보증금을 맡기도 비자를 발급 받으셨다. 처남은 홍콩 국적이었기 때문에 무비자로 한국에 60일 정도 체류할 수 있었다.


아내: 둘 다 온다고 하네요. 엄마가 엄청 좋아해요. 하하
나: 진짜요? 잘 되었다. 여름에 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심천은 온도가 높은 남쪽이니까 겨울 보단 여름이 낫겠네요.
아내: 네네 그렇게 이야기 할게요. 이번에도 엄마는 비자 보증금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나: 그래요? 우리가 좀 도와 드려야 하나?
아내: 엄마가 알아서 할거에요. 우리가 계획이나 잘 준비하면 되요.
나: 처남은요?
아내: 동생은 홍콩 국적이라 비자 걱정 없어요~
나: 처남은 왜 홍콩 국적이지?
아내: 동생이랑 아빠는 홍콩 국적이에요. 중국은 그때 1명만 낳을 수가 있어서 우리 엄마 아빠가 동생 낳을 때 홍콩에서 살면서 낳았어요.
나: 아하! 그렇구나! 동생은 한국오는데 문제 없겠네!


 계획을 알차게 세워서 장모님과 처남이 왔을 때 서울의 여러 관광지를 좀 돌아다녔다. 거의 초여름이었던 그때 남산, 케이블카, 경복궁, 남대문 시장 등 다양한 곳에 다니면서 맛있는 것도 먹고 재미있게 보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내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었던 것이다. 장모님은 한국에 와서도 맛있는 요리를 뚝딱 만들어내셨다. 더운 날씨에 퇴근해서 집에 오면 맛있는 요리가 한가득 이어서 매일 시원한 맥주 한 잔과 밥을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음식을 먹으면서 이 재료 들은 어떻게 사오셨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중국어로 더듬더듬 물었다.


나: 장모님, 이거 재료들은 어디서 구입하셨어요?
장모님: 이 옆에 시장있잖아. 거기 가서 산거야. 이 닭은 아침에 00(처남) 시켜서 사오라 그랬어.
나: 잉? 한국말도 못하시는데 가능해요?
장모님: 거기 가면 숫자로 얼만지 써있고, 달라고 하면 딱 그 돈만 내면 되는데 뭐. 다들 잘 알아들어. 그리고 시장에 재료가 많아서 좋아. 싸고.
처남: 제부(중국식 호칭), 내가 매일 닭 사러 가니까 이제 그 아저씨가 나 알아보고 말안해도 그냥 줘요. 하하하.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장모님과 처남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적극적으로 밖을 돌아다니며,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 한 달 동안 집에 머무르는 동안 불편하기 보다 너무 편했다. 부지런한 장모님이 요리와 청소를 도맡아 하셨고, 내가 와이셔츠 다림질 이라고 하려고 하면, 본인이 하신다고 다리미를 탁 빼가셨다. 아마도 가족이 되어 그런 것인지, 같은 공간에서 자고 먹고 생활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다. 장모님과 처남이 중국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아쉬움이 컸다. 장모님과 나, 우리 어머니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짧은 시간이 아쉬웠던 것도 있지만, 고마움의 눈물이기도 했다.

 그렇게 장모님과 처남을 보내고 나서 생각해보니 가족들을 집에 초대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불편함도 있다. 둘만 생활하다가 다른 가족들이 있으면 아무래도 좀 더 눈치를 보게 되고 마음대로 못하는 것들이 생긴다. 그래도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는 추억할 만한 사소한 농담 거리나, 일들이 생긴다. 아주 작은 일이지만 기억속에는 오래 남아있다. 장모님과 처남이 돌아가고 몇 달 지나서 아내가 새로운 제안을 하나 했다.


아내: 자기야 자기 부모님을 심천 집으로 초대하는 건 어때요? 내년 설 연휴 즘.
나: 설 연휴 때요? 흠.. 명절 때라... 부모님이 좋아할 지 모르겠네. 부모님은 중국이라고는 장가계 같은 시골 밖에 모르셔서...
아내: 한 번 초대 해 볼까요? 심천 한 번 가보시면 좋아하실 거에요. 옆에 홍콩도 가고요.
나: 홍콩도 안가보셨으니까... 한 번 이야기 해볼까요?
(그 주 주말 부모님댁..)
나: 엄마 혹시 다음 설 연휴 때 중국 심천 집에 한 번 가보는게 어때요? 장모님도 두 분 한 번 초대하고 싶다고 하시네요.
엄마: 그래? 심천 가면 오래 걸리지 않나? 비행기 값고 비쌀텐데..
나: 비행기 값은 걱정 마시구요. 비행기로 세 시간 반 정도 걸려요. 가서 홍콩도 가고요. 일반 사람들은 중국 가정집에는 못가잖아요.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가서 보시죠!
엄마: 그러자 그럼 우리 비행기 표도 사서 같이 가보자.
아빠: 가면 호텔에서 자면 되나?
나: 아니오 심천 집에 방이 많으니까 그냥 장모님 댁에서 자면 되요. 장모님이 괜찮다고 꼭 오시라고 하셔요.
아내: 꼭 가셔야되요. 가서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죠.
아빠: 집이 홍콩에 있나?
엄마: 아이고 귀가 먹었나. 왜 딴소리야~ 이 사람이 아직도 00(아내) 집이 어디 있는지 몰라? 그냥 따라오기나 하슈!  


 다음 해 설 연휴에 일찍 준비해서 공항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던 그 순간도 잊지 못할 순간 중 하나다. 부모님을 모시고 장모님 댁을 방문한다. 누군가 보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어색한 순간의 연속일 테니까. 그래도 아내의 친정을 간다는 것을 다들 즐겁게 받아들였다. 부모님은 마치 해외 여행을 가는 기분이 난다며 많이 좋아하셨다. 진작에 해외여행을 같이 가볼 걸 하는 후회도 들었다.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비행기를 타고 심천의 바오안 국제 공항에 도착하고 택시를 타고 장모님댁으로 가는 길에 부모님은 여기 저기 구경하느라 바쁘셨다.


엄마: 우와 길이 이렇게 넓나. 깨끗한거 보니 신도시인가 보네.
아빠: 이거 장가계랑 많이 다르네, 시골인줄 알았더만...
엄마: 차 종류도 엄청 많아. 그리고 여기 너무 덥다. 야자수도 많네~


 장모님 댁에 도착하고 그곳의 아파트 모양과 다른 건물들의 모양을 구경하면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중국 가정집의 바닥은 대부분 대리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문에서 신발을 벗고 꼭 실내화를 신고 들어가야 한다. 장모님 댁이 좀 넓은 편이라 부모님이 지낼 방을 알려주고, 집 구경도 한 번 했다. 부모님은 일반 가정집을 처음 보기 때문에 좀 놀라셨던 것 같다. 집이 깔끔하고 넓고해서 많이 좋아하셨다. 장모님이 요리도 많이 해 두셔서 그 날 저녁은 엄청나게 많이 먹었고, 부모님도 여러 가지 음식의 맛을 보시며 즐겁게 보내셨다.


 심천에서 일주일동안 머무르는 동안 우리는 심천의 관광지도 가보고, 홍콩에도 갔었다. 심천 집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홍콩으로 갈 수 있는데, 그 다리위에는 출입국 사무소 가 있다. 아직까지 중국 본토에서 홍콩을 가려면 꼭 출입국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날도 심사대를 지나는데, 본토에서 홍콩으로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때는 중국도 큰 연휴이기 때문에 놀러가는 사람이 많아서 한참을 기다렸다. 줄을 많이 선 엄청난 인파 때문에, 서서 1시간 넘게 있어야 심사대 통과가 가능했다. 그렇게 힘들게 간 홍콩에서도 관광지를 가는 건 꿈도 못꿨다. 사람이 정말 너무나 많아서 도로를 통제할 정도 였다. 하지만 우리는 맛집을 찾아가 많은 음식을 먹었고, 홍콩 2층 버스도 탔다. 부모님은 그것 마저도 너무 좋아하셨다. 많이 걸어 힘드셨을텐데 너무 좋으셨다고 한다.


 부모님은 사실 중국의 음식이 느끼하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미리 김치도 좀 준비하시고, 너무 느끼해 속이 불편하시면 밥만 드셨다. 그때 장모님은 그런 부모님을 위해 맛있는 죽도 끊여 주셨다. 장모님도 불편하셨을 텐데 우리 부모님을 많이 배려하고 계셨다. 그래서 인지 일주일을 지내는 동안 부모님은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으셨고, 속도 큰 불편함 없이 잘 지나갔다. 일정을 다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장모님과 엄마는 또 눈시울을 붉히셨다. 아내가 둘을 보고 왜 좋은날 우는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그 아쉬운 기분을 알 것 같다. 장모님은 마지막 입구에서 부모님에게 꼭 다시 오시라고 초대하시며 인사를 하셨다.


 한국에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내: 어머니 좀 편하게 지내셨어요? 많이 불편하셨죠?
엄마: 아니 너무 편했어. 사부인이 불편하셨을거야. 우리 때문에 잠도 편히 못 주무시고 요리하시느라...
아내: 아니에요. 우리 엄마가 오랜만에 집에 사람이 많으니까 너무 좋아하셨어요.
엄마: 나는 중국하면 다 시골인 줄 알았는데, 이번에 보니까 엄청 도시화가 잘 되어 있고 살기도 편하네. 먹을 것도 싸고 좋다야.
나: 그쵸? 엄마 다들 중국하면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중국 큰 도시 와보면 의외로 깨끗하고 살기 나쁘지 않다는 걸 알거에요. 다들 방송 같은데서 본 편견들이 많아요.
아빠: 지난 번에 어디야. 거기 장가계에는 집이 다 천편일률적으로 똑같더니, 여기는 깨끗하고 좋네. 아파트도 많고.
아내: 어머니 다음에 또 가요. 우리가 자주 가면 좋죠. 엄마도 좋아할 거에요.


 누군가를 집에 초대하기 불편해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나와 아내는 서로의 가족을 초대하고 그들의 반응을 보면서 엄청 만족감을 느꼈다. 우리가 준비할 때 걱정되었던 여러 부분들이 다 기우였다. 사실 어딘가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은 비슷한 것 같다.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생활하는 모습은 비슷하다. 그래서 어떤 곳을 가더라도 생활은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만약 그곳에 나의 다른 가족이 있다면 더욱 더 편하게 생활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도 안되는 장모님이 아무렇지 않게 시장에가서 물건을 사올 때, 중국어도 못하는 엄마가 근처 중국 편의점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올 때, 그 모습을 보는 나와 아내도 어떤 따뜻함을 느꼈다. 무엇보다 각가의 가족을 초대해서 그 가족들이 너무나 즐겁게 보내고, 상대방 가족들을 배려하고 챙기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 그렇게 기쁜 것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것 같다. 서로의 집에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자주 초대는 못할 것이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면 몇 번이고 다시 그런 초대장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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