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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May 08. 2018

#14. 처남과 일상 공유하기



 나와 내 남동생은 한 살 차이다. 그래서 어릴 때는 같이 어울려 잘 놀았다. 의외로 남자 형제였는데도 많이 싸우지 않고 잘 지낸 편이다. 같이 영화도 보고, 농구도 하고, 노래방도 가고, 많은 놀이를 함께 했던 동생인데, 성인이 되고 각자 직장 생활을 하고부터는 서로 멀어져 갔다. 노는 취향이 달라졌고, 관심 있는 주제들이 달라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데면데면해졌다. 예전에 서로 장난도 많이 치고 했지만, 둘 다 결혼까지 하게 된 지금은 서로 교류가 많이 없다. 서로의 일상을 모르고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마음 한편에 조금은 섭섭한 느낌도 들지만, 앞으로 내가 어찌해볼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는 느낌도 있다. 그저 이 관계는 이대로 유지될 것 같다.


 아내는 남동생이 있다. 아내보다 7살이 어리다. 내가 아내와 7살 차이가 나니, 나와 처남과의 나이차이는 14살 차이다. 처음 처남과 대화 아닌 대화를 한 것은 아내와 내가 연애를 하던 초기였다. 나는 중국사람들이 쓰는 카톡 같은 애플리케이션인 위챗을 설치했고, 장모님과 처남을 친구 추가했다. 그렇게 추가를 하고 난 어느 때 처남한테 음성 메시지가 왔다. 위챗은 음성 채팅 기능을 아주 간단하게 쓸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타이핑 대신 음성 녹음으로 짧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아내: 여기 이 위챗이라는 거를 설치하시고요. 여기 제가 동생이랑 엄마 ID를 보내드릴게요. 추가하시면 됩니다.
나: 어.... 이걸 설치했고, 이게 자기 ID네, 자기부터 추가하고...
아내: 여기 동생이랑 엄마도 추가하세요.
나: 추가... 해야 되나? 나 아직 중국어 몇 마디 못하는데요.
아내: 그래도 추가하시고 해보세요. 이렇게 해야 중국어도 늘죠. 그리고 이렇게 하면 우리 가족이랑 친해질 수 있잖아요.
나: 네 그럴게요. (잇차~ ) 다 추가를 했어요.
아내: 나도 동생하고, 엄마한테 자기라고 이야기할게요.
(며칠 후)
처남 : (띵동-음성 메시지 도착)
나: 응? 처남이 무슨 음성을 보냈는데?
아내: 그거 눌러서 한 번 들어보세요~
나: (음성을 누른다)
처남:  Dang shi jie zhi sheng xia zhe chuang tou deng ~~~~Ni na bian shi zao chen yi jing chu men ~
나: 응??????!!!!!!!! 자기야 이것 좀 들어봐요.
아내: (듣자마자) 하하하하하하하하


 처남은 나한테 첫 음성 메시지로 자기가 부른 노래를 보냈다. 그 당시 나와 아내가 노래방에 가면, 아내가 들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중국 가수 왕리홍(王力宏) 이 부른 니부자이(你不在) 라는 발라드 곡이었는데, 노래가 좋아서 나도 종종 듣던 노래였다. 처남은 그 노래를 처음부터 후렴구까지 본인이 부르는 음성을 나에게 보낸 것이다. 아마도 처남은 그 당시에 나와 언어가 안된다는 생각에 그렇게 노래를 먼저 보낸 것 같다. 그 당시 아내가 정말 빵터져셔 자지러지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나는 그 당시 특별한 말을 못 하고, 그냥 고맙다는 인사를 중국어로 했었다.


 이후에 처음 심천에 아내와 방문한 때에 처남과 처음 만나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 당시에 처남은 고3이었고, 한참 공부도 하고 입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때였다. 그래도 내가 방문하니 반갑게 맞아줬다. 다행히 둘 다 영어로 간단한 대화들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유쾌하게 대화를 했었다.


처남: (한국말로) 혀엉~ 안뇽...하..쎄..요.
나: 하하하. 안녕하세요. Hello~
처남: (영어로) 제부 반가워요. 제 이름은 00예요. 여기 Wifi 암호고요.
나: 오 고마워요. 직접 보니까 반갑네요. 공부하느라 힘들죠?
아내: 둘 다 영화 보는 거 좋아하니까 영화 얘기하시면 친해질 수 있어요.
처남: 무슨 영화 좋아하세요? 저는 Donni Yen(견자단) 좋아해요. 혹시 아세요?
나: 오 견자단 알죠.  견자단 나오는 000 영화 좋아해요!!


 그렇게 영화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친밀감이 좀 생겼다. 이런저런 농담도 하고 같이 컴퓨터로 다운 받은 영화를 보기도 했다. 첫 번째 방문에서 돌아오는 때에 처남이 나에게 책을 한 권 건네줬다. 견자단의 무술 사진집이었다. 나중에 아내에게 물어보니, 이 사진집은 동생이 정말 아끼던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나와 친해지려고 자기에게 소중한 물건을 내개 선물로 줬다고 생각하니 마음속에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처남은 부모님의 별거와 이혼으로 아버지의 존재가 희미한 상황이었다. 물론 왕래야 있지만, 처남의 삶에서 아버지의 존재가 옅은 것은 사실이었다. 중국에서는 한 번밖에 시도하지 못하는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한참 우울해져 있을 때, 처남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거나, 취업한 후 힘들 때, 위로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어쩌면 처남에게 남자 어른이라는 존재, 아빠라는 존재처럼, 그런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 처남, 많은 일로 힘들겠지만, 성격이 밝고 착하니까 다 잘 될 거야. 앞으로 처남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꼭 하길 바라. 힘내구.
처남: 고마워요 제부, 제가 그림도 계속 그리고 싶고 한데, 지금은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있으면 좋겠어요. 꼭 잘 찾아볼게요.


 여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처남은 엄청 예의 바르고 밝다. 특히나 아내와 있을 때는 정말 아내와 붙어서 쉴 새 없이 수다를 나눈다. 둘이 붙어서 이야기하며 깔깔 대며 웃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그 모습이 얼마나 이뻐 보이는지 모른다. 자매가 그렇게 친할 수 있을까? 그것도 7살 차이가 나는 자매인데. 아내는 자기 동생과 유머 코드가 너무 잘 맞아서 둘이 이야기하면 너무 웃기다고 한다. 그래서 심천에 가면 아내는 늘 처남 옆에서 엄청난 수다를 나눈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둘 다 그 시간에는 아이가 된 것만 같다. 천진난만하게 깔깔대며 웃는 모습을 보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심천에 가면 늘 처남과 하루 정도는 같이 외부에서 보낸다. 같이 산책을 하고, 중국 극장을 찾아 영화를 같이 보기도 한다. 물론 주로 미국 영화 위주로 선택을 한다. 그렇게 같이 산책하며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아직 20대 초반인 처남에겐 일하면서 만나는 이상한 사람, 앞으로의 걱정, 좋은 직업에 대한 이야기 등 고민하고 생각하는 일들이 많은 것 같았다. 어느 날은 이런 이야기도 나눴다.


처남: 제부, 저 일본이 너무 가고 싶어요.
나: 일본? 한국에는 한 번 와봤잖아. 한국의 다른 지역은 어때?
처남: 음... 한국은 좀 제 취향은 아닌 것 같아요. 저 만화도 그리고, 보는 것도 좋아하니까. 그런 캐릭터 많은 곳에 가보고 싶네요.
나: 음.. 그래.. 한 번 기회 되면 가봐. 지금 일하는 동안 돈도 좀 모으고.
처남: 네 그래야죠.
나: 참! 혹시 다음에 한국 올 때 그때 잠깐 일본에 다녀오면 어때? 처남 친구를 일본에서 만나도 되고. 그럼 돈이 좀 절약될 거야.
처남: 좋은 생각이에요! 제가 갈만한 친구에게 물어볼게요!


 처남과 장모님은 이후에 한 달 정도 한국에 온 적이 있다. 그때 일주일 정도를 빼서 처남은 일본에 가려고 계획을 세워왔다. 비행기 표를 친구가 끊고, 자기가 현지 가서 드는 비용을 부담하기로 했다고 한다. 나도 검색 등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도와준다고 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처남: 이상하네 친구가 전화를 안 받아요. 연락이 안돼요. (여행 일주일 전-수백 번 전화를 한다)
아내: 그래? 그럼 문자를 남겨놔. 계속 전화해도 안 받으면 소용없잖아.
나: 음. 문자를 보내 놓고 나면 전화 오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
(여행 2일 전)
처남: 에이.. 진짜 나쁜 놈이네, 전화를 왜 안 받아!!!
아내: 자기야. 어쩌죠? 동생이 너무 실망한 것 같아요...
나: 음.. 에고 큰일이네.....
     혹시 동생 혼자 가는 건 어때요? 일본이면 멀지도 않고, 동생 영어도 하니까 크게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내: 할 수 있을까요? 동생이 아직 혼자 여행 가본 적이 없어요.
나: 할 수 있을 거예요. 일단 내가 비행기 표랑 호텔을 예약을 해볼게요. 내가 예약은 할 건데, 예약 비용은 내가 부담하고요. 처남한테는 나중에 돈 벌어서 갚으면 된다고 해요. 근데, 우리는 그냥 보내주는 걸로 하자. 안 받아도 돼요.
아내: 자기야 그렇게 해자! 고마워요.

 

 그 당시 한참을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혼자 여행을 가본 적 없는 처남이 과연 잘 다녀올까 하는 걱정부터, 돈을 들여서 보내 줘도 괜찮을까?라는 작은 걱정. 하지만 처남은 아주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공항버스를 혼자 챙겨 타고 공항으로 가서 일본행 비행기를 잘 탔다. 일본 도쿄에 도착해서도 현지 지하철도 타고, 호텔도 찾아가고, 본인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박물관과 장난감 쇼핑몰도 열심히 돌아다녔다. 처남이 무사히 돌아온 날 나와 아내는 정말 뿌듯한 마음으로 반겨줬었다.


 그 이후 처남이 그 돈을 갚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중국에서 써야 할 돈이 있을 때나, 심천에 가 있을 때는 처남이 밥을 사거나, 비용을 낸다. 누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스스로 번 돈으로 그렇게 해 준다. 그리고 내가 볼 수 있는 영화를 찾아서 나에게 같이 극장 가서 보자고 하고, 집에 있을 때는 스마트 TV로 여러 영화를 골라 볼 수 있게 해준다. 각자의 나라에서 떨어져 있을 때, 견자단의 영화 소식이나, 재미있는 영화 소식이 있으면 위챗으로 서로 공유하고 이야기한다.


 어쩌면 관계를 만드는 데는 나이차이는 중요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14살이라는 큰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마음을 열려는 노력을 하고, 작은 취향도 같이 공유하려고 하니 어느덧 좀 더 친숙한 사이가 되어 있는 나와 처남. 어느 순간부턴가가 서로의 행동이나 생각에 어떤 믿음이 생겼다. 저 사람은 잘 할 거라는 믿음, 결국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겨 낼 거라는 믿음. 그래서 처남이 힘들 때면 작은 격려의 말 한마디라도 건네게 된다. 지금 현재 처남은 자신하고 있는 일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직접 가서 일하는 모습도 봤는데, 정말 그 일에 잘 맡고 행복해 보인다. 물론 성과도 좋다.


 나와 처남은 앞으로도 계속 가족일 것이다. 그런데 처남이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결국 취향이나, 생각이 변하지 않을까 라는 걱정도 된다. 나와 내 동생의 관계처럼 결혼 후에는 서로 멀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 처남은 아직은 나와 공유하는 것들이 많다. 누구나 사람은 변하고 있는 과정에 있고, 많은 부분이 변할 수도 있다. 처남도 언젠가는 변할 것이다. 굳이 지금 이런 생각으로 나 자신을 괴롭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니 이 걱정은 좀 더 나중에 해도 되지 않을까? 어쨌든 너무나 귀여운 처남이다. ^^

처남에게 받은 견자단 친필 사인 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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