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 나는 생물학자가 되고 싶었다. 현미경에 눈을 대고 식물이나 생물의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있으면 뭔가 경이로운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일본 출장을 다녀오면서 현미경을 하나 사다 주셨다. 너무 기쁜 나머지 밤늦게까지 양파 껍질을 잘라 속살을 보던 기억이 있다. 그것도 꿈이라면 꿈이었을까? 그때는 막연한 생각 이었다. ‘내가 뭘 좋아할까?’ 라는 생각을 하다. ‘아 나는 생물관찰하는 걸 좋아하지!’ 라는 결론에 닿아 생물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떨어지면서 그 꿈도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내가 뭘 되고 싶다 한들 그 성적으론 어떤 것도 될 수 없을 것 같은 상태였다. 그때 유일하게 흥미가 있었던 역사때문에 ‘역사학자가 되어 볼까?’ 정도의 생각만 했었다. 그 생각은 구체화 되지 못하고 내 성적에 다 묻혔다. 고등학교 3년을 지나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뭐고 뭘 하고 싶은 건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주위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적과 갈 수 있는 학교 이야기를 했다. 저 멀리 바다에서 뭘 하고 싶은지 이야기 할 수 있는데 다들 바로 앞의 시냇가의 내 모습이 어떤지 평가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성적에 맞춰서 대학교를 택했고 전공도 전혀 알지 못하는 ‘사회학’ 을 선택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입학해서 1학년을 보내는 동안 공부보다는 적응 하려고 무던 애를 썼다. 결국 적응이 될 때까지 여러 번의 학사 경고를 받았다. 친구들과의 관계, 공부, 부모님과 독립된 생활 등 그 당시 나에게 쉬운 것이 없었다.
대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학교 생활에 적응하고 내 전공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리서치 회사에 가고 싶어했는데, 그게 내 꿈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내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직업 내지는 갈 수 있는 길 이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도 내가 특별나게 잘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많은 것들을 접하고 실제로 하게 되면 배우는 속도도 빠르고 잘하지만 딱 평균적인 실력만을 보유하게 된다. 단지 관심 범위가 넓다는 장점이 있는데, 그렇다고 그 중에서 특출난 것은 없다. 여러 분야에 넓게 걸쳐 있어 어떤 이야기든 할 수 있는 사회학 이라는 학문 처럼 나 자신도 많은 것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있어 아는 척 할 수 있지만 깊이는 부족하다.
저런 나의 특성을 이해하는데 25년이 걸렸다. 이런 나의 특성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몰랐다. 무엇보다 리서치 회사에 취업을 하고 나서 이런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리서처는 매일 야근, 새벽근이 많고 항상 쫒기며 일해야한다. 클라이언트의 머리 속에 있는 결론에 맞게 데이터를 해석하여 쎃야한다. 마치 내 머리를 힘을 다해 쥐어짜는 느낌으로 달려야 했다. 몇 년을 하고 나자, 이건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직 내가 뭘 해야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
꿈이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지금 막연하게 원하는 것은 내 가족과 시간을 같이 보내며 행복한 것, 그게 어쩌면 꿈일 것이다. 나 자신은 직업적으로 꼭 성공해야 한다거나 성취하려는 목표가 없다. 단지 가족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해야되는 일이라면 한다. 그렇게 하다가 가족들과 같이 보내는 시간도 늘어나고 재정적으로도 넉넉해 진다면 그때가 내 꿈을 이루게 되는 시기가 아닐까?
결혼을 하고 아기가 있는 지금까지 나는 내 꿈을 알지 못한다. 아니 성공이나 직업적 꿈이 없다. 단지 생활적 측면에서 가족과 행복하게 살아야 겠다는 일상적 꿈은 있다. 그 일상적 꿈을 이루고 유지해나갈 때 그것에 나에게 더 만족을 주는 것 같다. 그럼 내가 꿈을 찾았다고 이야기 해도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