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군에서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다시 찾아온 봄을 맞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꽃놀이를 하던 때. 집에 있다가 외출한 어머니가 집으로 들어오는 소리에 방문 밖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울고 계셨다. “아이고 엄마 암이란다.” 그 이상 특별한 말씀이 없으셨다. 바로 방으로 들어간 어머니는 한 동안 나오지 않으셨다. 나도 방으로 들어가 온갖 생각을 했다. ‘이제 엄마 없이 20대를 보내게 되는 걸까? 얼마나 진행된 암일까? 결혼하는 것도 못 보고 가시는 건가? 치료가 되지 않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들. 그리고 나도 눈물을 흘렸다. 왠지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특별히 집이 가난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늘 돈이 없다는 압박에 늘 힘들어하셨다. 나와 동생이 대학교 다닐 때 까지는 부족함이 없이 해줄 거라는 어떤 신념을 바탕으로 우리에게는 아낌없이 지원을 해주셨다. 하지만 본인 옷이나 하고 싶은 것은 기필코 잘 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상인이 된 지금에서야 조금씩 하시려고 하신다.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신 분이다. 정말 말씀이 없으셔서 늘 어머니와 별 대화를 안 하셨다. 그런 부분들은 어쩌면 어머니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암을 만들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 당시 내가 받은 충격은 생각보다 컸다. 어머니가 입원 후 동생은 군대에 갔고 어머니의 항암치료와 수술 때문에 입원했을 때 나는 낮에는 병원에서 어머니 옆을 지켰다. 진행되는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당사자인 어머니가 제일 괴로웠겠지만 옆에서 보는 나도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온갖 걱정 투성이 생각들이 그 해 내내 지나갔던 것 같다.
어머니 투병 전에는 그런 생각을 못했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한순간에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 2002년 월드컵이 개최되었던 그해를 지나면서 나는 주변 사람에게 가능하면 밝은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늘 웃으며 눈을 맞춘다. 어쩌면 다음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내 마음속에 가득 찼다. 무엇보다 나와 가까운 상대라면 옆에 있을 때 잘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각종 사고 소식을 볼 때마다 그 생각을 한다. 누군가를 만나고 연애하고 결혼까지 하고 나서도 그런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다 주변 사람과 싸울 거나 다툴 때도 있다. 하지만 당일 또는 그 다음날 바로 사과한다. 물론 화가 날 때도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잘못한 일이 없는 건 아니다. 그래서 사과를 하고 좀 더 대화를 한다. 사과늠 빠를수록 좋다. 어쩌면 그 시간이 사과할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른다.
대구 지하철 참사나 가깝게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희생자들이 마지막으로 남긴 문자 메시지를 보면 바로 눈물이 맺힌다. 내가 나를 아끼는 그 사람들에게 다시 가지 못하는 순간이 언젠가는 올지 모른다. 그래서 바로 지금 내 가족 또는 친구에게 웃으며 인사한다. 그게 마지막 인사일지도 모르니까.
결혼을 하고 매일 출근하려 현관을 나서는 순간에도 늘 아내와 아이에게 인사를 한다. 웃으면서 “다녀올게요” 라며 빠이빠이를 한다. 아내는 웃으며 “잘 다녀오세요~”라고 하고 아이는 손을 흔든다. 그 모습을 내 눈에 담아 머릿속에 저장한다. 그리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선다. 무사히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그때 아이가 뛰어나온다. “아빠!” 아이가 내 다리를 안고 날 볼 때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는 안도감이 든다.
어머니는 그 힘든 항암 과정을 거치고 아직 건강히 지내고 계신다. 그 당시 “다음 월드컵을 볼 수 있을까?” 라던 어머니는 벌써 네 번째 월드컵을 보게 되셨다. 이별하는 줄 알았던 어머니는 아직도 내년 목표를 세우시고 또 꿈꾸신다. 나도 언젠가 이 세상과, 내 가족들과 이별하게 될지 모른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보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그런 긍정적임 속에서도 이별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그래서 늘 마지막처럼 인사한다. 상대방이 기억할 내 마지막 모습이 밝게 웃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
#이미지 출처: http://allthingsnext.com/2016/01/22/last-goodbye/goodbye-neon-s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