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끝난 시리즈 <악귀>의 마지막 대사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그래 한 번 살아보자"
아마 오래도록 떠오를 것 같다. 주인공 구산영의 삶은 우울함의 연속이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늘 돈에 쪼들려 여러 가지 알바를 해야 생활이 유지되었다. 계속 이어지는 피곤한 삶. 그런 와중에 눈마저 멀어간다. 그때 산영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원래 삶은 모두에게 상대적이다. 누구나 힘든 일이 있다. 아무리 좋아 보이는 사람도 힘든 일이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일단 내가 느끼는 어려움이 늘 먼저 떠오른다. 내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어야 어느 정도 상대방의 어려움이 보인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감정은 위아래를 오간다. 오늘은 긍정적이었다가 다음 날은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그래서 이런 감정의 등락 속에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꽤 많은 에너지를 쓴다. 마치 악귀에 사로잡힌 것처럼 감정이 부정의 끝까지 갈 때가 있다. 엄청난 에너지가 내 마음 끝을 찌른다.
특별한 능력이 없다는 생각을 시작으로 나의 글의 보잘것없음으로 연결되고, 결국 쓰는 일을 줄여볼까라는 생각으로 귀결된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이후 계속 반복되는 생각과 감정이다. 어떤 때는 대단해 보이다가도 어떤 때는 한심하게 느껴진다.
계속 나 자신을 위로한다. 차분히 써나가서 10년 후에는 좀 더 나은 위치가 되면 된다고. 하지만 그런 긍정적인 마음은 이내 부정적인 생각으로 덮어버린다. <악귀> 속 산영의 무의식에서 산영의 목을 조르던 사람이 다름 아닌 산영 자신이었던 것에 무척이나 공감이 갔다. 내가 나를 죽이고 미워하는 것. 나의 가치를 목 조르고 있었던 것. 나 자신을 비하하고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것.
그게 조금씩 나라는 존재를 죽이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 감정의 파고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중년의 나이 때문인지, 아니면 나 자신의 특성 때문인지 잘 모르겠다. 꽤나 안정적인 삶을 만들었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이 파고는 잦아들지 않는다.
목 조르던 무의식의 나를 발견하고, 그 손을 놓아본다. 목 졸림 당하던 나 자신은 어떤 표정일까. 삶의 의지가 없을까. 너 나아갈 용기가 있는 걸까. 가만히 들여다보다 그 모든 장면을 잠시 덮어놓는다.
어떤 식으로 써야 좀 더 매력적인 글을 쓸 수 있을까. 지금 나의 글이 보여주는 색깔을 계속 유지해야 할까. 어떤 식으로 써야 좀 더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이것저것 여러 가지 웹사이트에서 나의 글을 쓰고 공유한다. 그냥 무심하게 쓰고 공유해야 하는데 자꾸만 반응을 신경 쓰게 되니 더욱 나를 옥죄게 되는 것 같다.
아직은 누군가의 글이 소비로서의 가치가 되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발행하는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의 구독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한 달 2천 원의 금액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조차 비싸다고 생각할 수 있다. 몇 번이고 이걸 계속해야 할까 생각하고 고민하지만 어렵게 승인된 그것을 그냥 포기한다는 게 아깝게 느껴진다.
꽤 오랜 기간 동안 글을 썼고, 이제 나의 글이 그렇게 확 누군가를 끌어당기는 글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계속 쓰는 건, 그래도 하나의 글을 다 쓰고 나서 느껴지는 후련함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무언가 정리했다는 느낌. 내 생각을 뱉어냈다는 느낌이 잠시나마 해방감을 주니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되는 여름의 막바지.
곧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그래도 결국 영화를 보고 짧다면 짧은 리뷰를 쓰고 있겠지.
계속해야 한다는 걸 안다. 내 목을 조르고 있는 나 자신의 손을 풀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그 손을 슬며시 푼다.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면, 내 글을 공유하거나 내 글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블로그를 슬쩍 가보기도 한다. 내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본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그래 그냥 한 번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