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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Jul 23. 2024

일상을 만들었던 깊은 그늘


우리 모두는 평범하게 일상을 산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출근을 하거나 학교를 간다. 그 평범한 일상에는 특별히 나쁜 악마가 등장할 일은 없다. 그저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특별한 상황이 생길 수는 있겠지만, 그 일상을 살면서 나쁜 짓을 한다거나, 특정한 행위는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그 일상은 어떤 식으로 유지되는 걸까? 그런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 누군가가 직장에서 혹은 자영업으로 일을 해서 벌어온 돈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일상을 만든다. 그러니까 꾸준히 들어오는 소득이 그 일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된다. 그 돈을 받게 되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일상을 유지하는 힘이다. 그럼 무엇을 하는지가 꽤나 중요해진다. 그 일은 착한 일인가? 아니면 나쁜 일인가?


이런 생각은 평소에 잘 하지 않는 생각이다. 고민거리도 아니다. 대부분은 평범하게 직장 생활을 하거나 자영업을 하면서 착하게 일을 한다. 일부 나쁜 사람들은 부정적인 방식을 이용하거나 불법적인 방식으로 일을 한다. 그런 나쁜 방식의 소득이 발생하고 그것으로 일상을 살아간다면, 그 일상은 잘못된 것일까? 그 일상 속에 있는 다른 가족들도 그 연대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일까? 무척이나 복잡하고 심란한 문제다.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극장에서 보면서 특이한 경험을 했다. 보통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영화의 이야기에 몰입한다. 이야기에 집중하면서 주인공들이 가진 서사와 고민, 위기를 같이 경험한다. 하지만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보면서는 화면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의 서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독일 장교의 가족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바로 옆에 집을 짓고 살고 있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상들이 아주 평범해 보인다. 아우슈비츠 옆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 가족의 일상은 특별한 게 없다. 똑같이 잠자고, 먹고, 학교에 간다. 그들의 일상은 그저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평범함이 엄청난 무게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아우슈비츠는 폴란드 남부에 위치한 대규모 강제 수용소로,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운영되었다. 독일군 가족의 집이 바로 이 수용소 옆에 있었다. 그들은 벽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면서도, 그것을 외면하며 자신들의 일상을 이어갔다. 이들은 그저 일상적인 가정 생활을 하며, 그들이 수행하는 일이 끔찍한 현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의식적으로 회피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들의 일상에 관심을 가질 수는 없다. 왜냐하면 자꾸만 벽 너머의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독일 가족의 일상은 아우슈비츠에서 고통받고 죽어나가는 사람들의 목숨으로 유지되는 것이다. 수용소의 소장은 수용소를 관리하는 것에 대한 월급을 받는다. 그리고 다른 군인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일상이 얼마나 끔찍한가? 그들의 일상을 보면서 자꾸만 끔찍한 광경이 떠오른다.



점점 커지는 소리, 타오르는 연기와 불꽃은 왠지 살이 타는 냄새가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런 느낌은 더욱 더 강력해진다. 그들의 일상이 얼마나 왜곡되고 잔인한 기반 위에 있는지를 떠올리면, 그들의 평범한 일상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다.




이 영화를 보는 건 고통스럽다. 점점 이 독일 가족의 일상이 짜증나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평범한 장난도, 가족들의 식사시간도 다르게 보였다. 자꾸만 가족들의 집안에 수많은 시체들과 옷가지들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이들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아무리 깨끗하게 청소를 해도 이들의 일상에서 그 때묻은 악행을 지울 수는 없다.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고통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 그들의 비명, 그들의 고통, 그들의 절망은 이 영화의 배경에서 끊임없이 울려 퍼진다. 그들의 희생은 단지 숫자가 아니다. 각자의 삶이 있었고, 가족이 있었고, 꿈이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무참히 짓밟힌 장소가 바로 아우슈비츠다. 그곳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고통과 절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말미, 아우슈비츠 소장은 계단을 내려오다 헛구역질을 한다. 그건 본인의 악행에 대한 일종의 비유이면서, 관객들이 느낄 감정을 대신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이 희생당했던 장소와 그곳에 남은 수많은 신발들이 그 악행을 증명하고 있다. 그들이 얼마나 악했는지, 그들의 일상 아래 얼마나 깊은 악이 숨어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의 일상은 그들의 것이 아니다.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목숨이다. 이 영화는 구역질나는 영화다. 독일 가족들에겐 비명과 살 타는 냄새가 일상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역사의 비극을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영화다.



이 영화의 감독은 조나단 글레이저다. 그의 전작들에서 볼 수 있었던 강렬하고도 섬세한 연출 스타일은 이번 영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조나단 글레이저는 <세컨드 스킨>과 <언더 더 스킨>에서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문제를 깊이 파고드는 방식으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연출 스타일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 담긴 인간의 비극과 고통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 있다. 이번 영화에서도 글레이저는 이러한 특유의 연출을 통해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배우들의 연기도 이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주인공 역을 맡은 크리스티안 프리에델은 이전 작품들에서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내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독일 장교의 일상을 덤덤하게 표현해냈다. 그의 연기는 관객들로 하여금 장교의 내면 갈등을 느끼게한다. 그의 아내 역을 맡은 산드라 휠러 또한 그 가족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평범함 속에 숨겨진 잔인함을 더욱 부각시켰다. 산드라 휠러는 그동안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준 배우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녀는 감정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관객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이 영화를 보며 우리는 역사의 비극을 다시금 떠올리고, 그 비극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는 그저 과거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아니다.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일상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영화에서 벽은 단순한 물리적 경계를 넘어선다. 벽은 곧 무관심과 외면의 상징이다. 독일 가족과 수용소의 현실을 가르는 벽은 그들이 진실을 외면하게 만드는 장치다. 벽 너머의 소리를 무시하며 일상을 이어가는 그들은, 자신의 삶이 누군가의 고통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을 철저히 부정한다. 이 벽은 우리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불의를 얼마나 외면하고 있는가?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이런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해주는 영화다.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그 속에 숨겨진 깊은 그늘을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이 영화를 추천한다. 우리의 일상이 평범해 보이지만,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며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은 고통스럽지만, 그 감정들을 통해 우리는 더 깊이 있는 성찰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반드시 봐야 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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