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에 대한 기억 속 내 삶

by 레빗구미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월드컵의 기억은 1994년 미국 월드컵이다. 중학교 3학년 때였는데, 미국과의 시차로 인해 주로 학교에 있는 시간에 경기가 이뤄졌다. 월드컵이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주변에서부터 월드컵 이야기로 가득 찼었다. TV에서는 월드컵 소개를 하고, 여러 과자 안에는 월드컵에 출전하는 국가의 정보가 있는 딱지 같은 장난감이 들어있었다. 그때 내가 사 먹었던 치토스에 여러 가지 딱지가 들어있었는데, 그걸 보다 나도 '혹시 우리나라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설레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딱지 속 한국의 전력은 '?' 로 표기되어 있었다. 월드컵 예선이 시작되고 스페인전을 학교에서 친구들과 봤다. 죽을 듯이 뛰는 대표팀의 모습을 보는 모두가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쳤다. 그때 처음으로 단체 응원이란 걸 경험했다. 축구라는 스포츠를 그때 처음 제대로 관심을 가지고 본 것 같다.


하지만 그 후로 축구는 내 삶에서는 지워졌다. 고등학교 진학과 수능, 대입이라는 큰 산 앞에 축구는 멀리 있는 이야기였고, 오히려 체육시간에 농구를 직접 하면서 농구 경기에는 조금 관심을 가졌었다. 정말 지난히도 긴 시간인 대입과정을 마치고 났을 때, 다시 월드컵이 찾아왔다. 1998년에 프랑스에서 진행되었던 월드컵이었다.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1학기를 마쳤을 무렵이었다. 사실 나는 대학교를 지방으로 가게 되어 자취 생활을 하면서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원래 말이 없고 소극적인 성향이었던 나는 같은 과 동기들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내기 어려웠고, 그래서 많이 겉돌던 시기였다. 마음이 외로웠던 그 시절, 방학을 맞아 서울 집으로 돌아오면서 기차에 앉아 98년 월드컵에는 어떤 일이 생길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많이 설레었다. 연애도 못해본, 이제 갓 대학교에 들어간 남자아이가 혼자 청량리행 기차에 앉아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축구 경기를 상상하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좀 우습게 느껴지기도 한다. 프랑스에서 열리는 월드컵이었기 때문에 경기 열리는 시간이 아주 좋지 않았다. 주로 새벽에 많이 열렸는데, 나는 그걸 다 보려고 미리 어떤 식으로 준비한다는 계획을 세워놨었다. 두 번째 경기인 네덜란드 전을 볼 때는 공포 영화를 보면서 밤을 뜬 눈으로 보내고 경기를 보기도 했다. 그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세 경기를 다 봤다. 그때의 월드컵은 혼자 TV 앞에서 본 월드컵이다. 그 당시 외로웠던 마음을 월드컵을 보면서 달래었는데, 경기를 보는 동안에는 학기 동안 느끼던 외로움이 사라지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두근거림에 집중했었다. 그게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다시 그 후 4년 동안 축구는 내 관심사에서 멀어졌다. 2000년부터 군대에 입대해서 복무를 했던 나에게 축구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고, 군대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온갖 구타와 윽박이 난무하던 군대에서의 기억은 내 삶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것 중 하나다. 그곳에서 벌어진 모든 일들이 좋게 기억되는 것이 없다. 암흑 같은 그 기간을 지나 2002년 초에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2년 동안 가져보지 못한 그 자유로운 느낌을 누리며, 대학교에 복학하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던 그때. 어머니는 본인이 유방암이라고 하셨다. 월드컵 분위기로 많은 곳에서 준비가 한창이던 그때, 우리 가족은 병원으로 출퇴근을 했다. 어머니의 입원과 수술, 그리고 항암치료까지 긴 몇 달의 그 기간 동안 2002 한일 월드컵이 열렸다. 그때는 시청광장을 비롯한 다양한 도심지에서 거리 응원이 유행하던 때였다. 나는 병원에 갔을 때는 어머니 옆을 지켰고, 저녁에 아버지와 교대하고 집으로 와서 청소와 빨래를 하고 간단히 밥을 해서 먹었다. 그렇게 침울한 시기였음에도, 거리에 가득한 뜨거운 열기를 외면하기는 쉽지 않았다. TV를 켜면 온통 월드컵 이야기였고, 지하철에서도, 카페에서도, 극장에서도. 어느 장소에서든, 만나는 어떤 사람이든 화제는 월드컵이었다. 나도 그 월드컵에 대해 관심을 끊기는 어려웠다. 어머니가 병실에 있을 때도, 집에 있을 때도, 검색을 해서 월드컵 정보를 찾아보고 경기 정보를 찾아봤다. 첫 경기가 끝났을 무렵, 어머니는 병실에서 간호하던 내 모습이 안돼 보였 던 지 나에게 나가서 응원하고 오라고 하셨다. 몇 번 아니라고 거절했지만, 그래도 마음속에 나가고 싶던 생각이 있어서였던지, 결국 두 번째 한국 경기는 시청 앞에서 응원을 하고 돌아왔다. 생각보다 체력이 많이 소요되는 일이었지만, 매우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때만큼은 군대에서 억압되었던 감정, 어머니 건강으로 걱정하던 아픈 감정을 잊고 그 상황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다. 한일 월드컵은 예선전을 지나 4강까지 이어졌다. 예선 전 이후 거리응원을 다시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집에서 또는 병원에서 모든 경기를 봤다. 4강즘 갔을 때에 어머니가 1차 항암 치료를 마치고 잠시 집에 돌아오셨을 때였다. 어머니는 식사하면서 축구 경기를 보시면서"내가 다음 월드컵을 또 볼 수 있을까" 라며 비관적으로 말씀하셨는데 아직까지 건강하시고 이번 월드컵도 보시게 되었다. 그때의 월드컵은 내게 환희였지만, 온전한 환희는 아니었고, 그 기쁨 이면의 어두운 일 때문에 슬픔과 기쁨이 공존했던 월드컵이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다시 4년은 대학교 복학과 적응을 하며 보냈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취업에 대한 고민을 하던 때에 2006년 독일 월드컵이 찾아왔다.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던 때였기 때문에 첫 경기를 논문 쓰다가 보게 되었다. 그 당시엔 처음으로 연애도 하고 있던 시기였는데 온통 머리 속에는 어디에 어떻게 취업을 해야 하는지 그 고민뿐이었다. 내가 가진 능력은 별 볼 일 없어 보였고, 가고 싶었던 회사는 면접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런 때 찾아온 월드컵을 보며, 어떤 희망을 가졌다. 그들이 치열하게 공을 따내고,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내 16강을, 내 목표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봤다. 결국 대표팀은 탈락하고 말았지만, 그때의 월드컵을 생각하면 취업 생각만 하면 '쿵'하고 내려앉았던 공포심이 같이 자리하고 있다. 그 후 2010년, 2014년 월드컵이 4년마다 찾아왔지만, 취업을 하고 연애도 순조롭게 이뤄지던 시기여서 였는지, 아주 인상적으로 남아있지 않다. 월드컵의 한국 팀의 실력이 줄어서 인지 아니면 이제 나의 관심에서 월드컵이라는 게임이 제외되었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복합적인 요인 이리라. 월드컵 경기 말고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더 늘었다. 2002년, 2006년보다는 훨씬 더 많은 일들을 신경 써야 하는 것도 있는 반면, 충격적인 아픈 일이나, 나쁜 일은 없어서 특별히 위로를 받거나 몰입해야 할 필요가 없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2006년 이후의 월드컵은 내 기억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한다. 이제 다시 2018년 월드컵이 찾아왔다. 예전만큼 다른 사람의 관심도도 작아진 것이 느껴진다. 어쩌면 한국이 4년마다 매번 월드컵 경기를 하기 때문에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약간의 기대감은 있지만, 그런 기대가 실망감으로 돌아올까 두려운 마음도 있다. 이제 경기를 보면서 실망스러운 감정을 느끼기 싫은 것 같다. 지금 나는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다. 그래서 과거보다는 더 관심도가 멀어졌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월드컵 예선 3 경기가 벌어지는 시간과 날짜를 스케줄에 기록해 뒀다. 그 경기들을 아예 안보기도 힘들 것 같다. 이번 월드컵은 내 기억 속에 어떤 방식으로 기억될까? 부디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두근거림의 기억들을 주면 좋겠다. 월드컵이란 이벤트는 원래 설레는 이벤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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