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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Jun 27. 2018

#20. 걱정 속에 보낸 임신 후반기



 난 원래 걱정이 많다. 매사에 소심한 성향이어서 시험 볼 때나, 뭔가 새로운 것을 할 때 늘 긴장과 걱정이 많다. 막상 그 일을 지나고 나서나 반복해서 그 일을 하면 큰 문제 없이 지나가지만, 늘 걱정이 많다. 반면 아내는 걱정이 별로 없다. 일단 어떤 일을 할 때, 그냥 하고 본다. 대신 그것을 하기 전에 이런 저런 준비는 많이 하는 편이다. 아내는 걱정도 별로 없지만, 겁도 없고 조금 아픈 것은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상대적으로 나는 겁이 많고, 아픈 것을 잘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다. 조금 머리가 아프면 두통약을 먹고, 증상을 완화 시키는 걸 선호한다. 아내는 그냥 참는다.


나: 아 머리가 너무 아파요.
아내: 그럼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요. 몇 시간 만 있음 곧 잘 시간이잖아요.
나: 그냥 얼른 두통약 먹고 나을래요~
아내: 아플 때 마다 약 먹으면 안 좋을텐데... 좀 참아봐요!
나: (꿀꺽)
[다른 어느 날]
아내: 나 배가 너무 아파요. 속이 안좋아..
나: 그럼 근처 약국 가보자. 오늘 일요일이어도 검색하면 문 연 약국 찾을 수 있어요.
아내: 좀 지나면 낫겠죠.
나: 아니 내가 벌써 찾았어요. 1분만 가면 있어요. 약국가자.
아내: 에휴... 그래요 가보자.
나: 약 먹으면 금방 나을 거에요.
아내: 참.. 자기는 너무 과장해서 생각해요. 좀 지나면 나은데.
나: 그래도 아픈 거 참지 말고 바로 약먹는게 좋아요!


 사실 상황에 따라 다른게 맞는 것 같다. 그래도 아내는 대체적으로 아플 때 약을 잘 먹지 않는다. 병원도 잘 가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것들을 잘 참았다고 한다. 어느 날 속이 아팠던 아내는 내가 몇 번이나 반복해서 약을 사먹자고 해서 겨우겨우 약국에 가서 약을 먹고는 그날 밤에 푹 잤다. 일반 감기에 걸려도 절대 약을 먹지 않는다. 심각하게 열이 나는 경우만 약을 먹는다. 그렇게 아픈 것을 잘 참는다. 잘 참는 건 어떤 능력인 것 같다. 인내심이 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자기 자신을 잘 통제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르게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볼 수도 있다.  


 임신 기간에도 아내는 놀라울 정도로 강한 인내심을 보여줬다. 오히려 옆에서 보고 있는 내가 더 초조하고 불안하고 걱정이 많았다. 임신 초기 속쓰림 입덧이 왔을 때도 아내는 대체적으로 태연했다. 그래도 많이 아프다고 하는 아내를 조금이라도 위로하려고 약국에 가자고 하거나, 직접 임산부가 먹을 수 있는 약을 사오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아내는 한사코 그것을 마다 했다. 아내는 곧 나을 거라며, 아기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약물은 최대한 피하려고 했다. 임신 중반이 되면서 입덧 증상은 많이 완화가 되었고, 배가 조금씩 불러왔다.


 임신 중기 부터 나와 아내는 저녁에 산책도 많이 하고, 대부분 집 주변을 이리 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임신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갈 즈음, 아내가 시내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다고 해서, 영등포 타임스퀘어로 갔다. 쇼핑몰을 천천히 돌아다니며 이런 저런 구경도 하고, 아내가 좋아하는 여러 음식들도 먹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갈 때즘 이었다.


아내: 오늘 너무너무 잘놀았네요~!
나: 오랜만에 나오니까 좋네요. 자기 입덧도 많이 없고 하니까 좋아요. 임신 중반 이후에는 산책 많이 하면 좋다니까 우리 많이 걷자.
아내: 그쵸? 우리 좀 더 걸어도 될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도 많이 걸으라고 하셨는데요~
나: 그래도 너무 무리하면 안되는데...자기가 참 잘 걷는다.
아내: 나 원래 걷는 거 좋아하잖아요. 그럼 우리 여기서 집까지 걸어갈까요?
나: 헉... 여기서 광명까지 걸어가자고요? 너무 멀어서 안되요.
아내: 아니 큰 길 말고 안양천 따라 가면 좀 가깝지 않아요?
나: 아니 길치면서 그런 건 어디서 들었어요? 좀 가깝긴 해요. 걷기에 좋은 길이고.. 진짜 걸을 수 있어요?
아내: 그럼요! 나 할 수 있어요. 당근이도 좋아할 걸요? 당근이도 완전 활발할 거 같아요. 막 춤추고 ㅎㅎㅎ 그리고 안양천 길 지난 번에 아버님이 출퇴근 할 때 거기로 다녔다고 하셨는데요. 가깝다고.
나: 헐.. 그렇구나.. 그럼 한 번 가 볼까요? 우리 점심도 많이 먹었으니까.
아내: 고고고~~ chop chop!


 그렇게 영등포에서 광명까지 걷기 시작했다. 안양천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때가 봄 즈음이어서 걷기에 괜찮은 날씨였다. 아내는 평소에도 걷기를 굉장히 잘 했다. 나도 걷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어디 여행을 가면 힘들 정도로 많이 걸으면서 구경을 다녔다. 걷는 건 우리가 공통적으로 좋아하고 같이 활동할 수 있는 것이었다. 임신 후 당근이가 생겨서도 우리는 정말 많이 걸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날은 정말 많이 걸었다. 내가 쉬어가자고 해도 몇 번 쉬지 않고 괜찮다고 집까지 기어코 걸어갔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조금은 힘들었다. 아내도 조금은 힘든데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집에 가서 저녁은 대충 해먹고 푹 쉬었던 것 같다.

 그러고 2주 정도 지난 후 병원에 갔을 때, 다른 때와 다르지 않게 초음파로 당근이를 봤다. 근데 당근이 머리가 잘 보이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이 조금 당황하셨던 것 같다. 원래 그렇게 당황하는 분이 아닌데, 조금 다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선생님:  별일 없었죠? 특별히 힘든 건 없었고요?
아내: 네 없었어요. 산책도 많이 하고 당근이도 잘 놀았어요. 선생님~
선생님: 그럼 한 번 볼까요? (검진 하면서..) 응? 아기가 왜이렇게 내려갔지? (당황한 목소리) 잠깐만요.
아내: 네??
나: 헉.. 무슨 소리지?
선생님: 아기가 좀 아래로 빨리 내려왔네요. 지금 골반 근처에 머리가 내려와서 더 내려가면 위험하거든요. 벌써 나오면 안되요. 아직 두 달도 더 남았으니까. 조심해야 되요.
아내: 그럼 뭘 조심하면 될까요?
선생님: 일단 하는 일이 있죠? 사무실 나가는거 가능하면 중단하시고 누워있으세요. 아무래도 앉아있거나 서 있으면 위험할 수 있어요.
아내: 아.... 네.. 알겠습니다..
나: 다른 것은 괜찮죠?
선생님: 다른 건 크게 문제가 없어요. 일단 아기가 더 내려 오지 않게 조심 하시는게 좋아요.


 우리는 그날 병원에서 나와서 병원 건너편 맥도널드에 앉아 아침을 먹으면서 서로 눈물을 흘렸다. 둘 다 너무 당황했고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랐다.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아마도 영등포에서 집까지 걸었던 것이 적지 않게 영향을 준 것 같다. 병원에서 나와서 같이 걱정하며 울던 날, 우리는 각자의 집에 전화를 하면서 사정을 설명했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으면 각자의 집에 알리는 편이다. 특히 당근이와 관련해서는 더욱 그랬다. 둘 만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출산까지 부모님 댁에서 지내기로 했다. 내가 불편한지 여러 번 물었지만 아내는 괜찮다며 얼른 가자고 했다.


 그날로 아내는 회사에 이야기해 재택근무로 업무를 전환했다. 집에서 간단한 짐들을 챙겨서 부모님 댁으로 가서 아내는 거의 온 종일 누워 지냈다. 그렇게 두 달 동안 지냈는데, 아내가 많이 힘들어했다. 움직이고 싶고, 활동적인 사람인데, 그걸 못하니 많이 답답했을 거다. 그래도 괜찮다며 그 환경에 또 금방 적응을 했다. 누워서 작은 스마트 폰을 들고 업무를 하고 필요한 경우만 일어나서 외출을 했다. 그렇게 두 달을 보내는 동안 아내는 대부분을 누워서 잘 참고 보냈다. 그저 옆에서 바라보는 내 마음만 타들어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내가 해줄 것이 많이 없었다. 그저 필요한 물품을 가져다 주고, 다리나 어깨 안마를 해주는 것, 그리고 뱃속에 있는 당근이에게 건강히 잘 있다가, 좀 더 있다가 나오라고 계속 이야기 하는 방법 밖에는 없었다.


 그렇게 두 달을 무사히 보내고, 출산 하기 2주 전즘에 심천에서 장모님과 처남이 왔다. 부모님 집을 나와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가면서 뭔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 무사히 출산을 할 수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가서 장모님이 해주시는 맛있는 요리들을 먹었다. 그때 아내도 정말 많이 먹었던 것 같다. 임신 기간 동안 정말 계속 먹고 싶어했던 그 음식. 엄마 밥. 내가 아내에게 해줄 수 없는 유일한 것이었다. 그렇게 와구와구 잘 먹는 아내의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일 수 없었다. 그때서야 나도 마음이 편해진 것 같다. 그렇게 편하게 지내는 동안 뱃속의 당근이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


나: 당근아, 이제 그만 엄마 뱃속에서 나와 줄래? 이제 그만 나와도 될 것 같아. 엄마랑 아빠 모두 니 얼굴이 보고 싶어. 아빠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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