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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Jun 19. 2018

#19. 미래의 상대방에게 편지 쓰기



 편지라는 건 상대방의 마음을 따뜻하게 움직이는데 좋은 것 같다. 많은 것이 이메일이나 출력된 인쇄물로 전달되는 지금, 여전히 손글씨는 매력적이고 진심을 전달하는 힘이 있다. 많은 것이 디지털화되고 있는 가운데, 손글씨 할 수 있는 도구도 디지털 화 되고 있다. 아이패드 프로나 삼성 갤럭시 노트 같은 기기를 보면 손으로 연필을 잡고 손글씨를 쓸 수 있는 기기가 많이 시도되고 있다. 그만큼 손으로 쓰는 메모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고 있는 메시지 전달 방법이다. 그렇다고 서로 각자에게 많은 손편지를 쓰는 건 아니다. 일반적인 정보 정도야 전달을 많이 하지만, 연인 사이가 아니라면 손편지를 보낼 일이 많지는 않다.


 나와 아내도 손편지를 아주 많이 쓰는 건 아니지만, 서로 메모로 여러 가지 메시지를 전달하곤 했다. 결혼 초기 출퇴근 시간이 다를 때는, 아내가 잘 때 포스트잍 메모를 식탁에 붙이고 간다거나, 작은 공용 칠판에 메시지를 적고 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 메모를 붙일 때, 상대방이 웃음 짓는 모습을 상상하며 정말 많은 메모를 서로에게 남겼었다. 


아내: 자기야 나 몸이 좀 안 좋아요.
나: 그래요? 그럼 오늘 출근 안 하고 쉬는 게 어때요?
아내: 안돼요. 그래도 출근은 해야죠. 일단 출근해 볼게요.
(출근 후 아내가 전화를 걸었다)
아내: 나 속이 너무 아파요. 집에 조퇴하려고요.
나: 앗 그래요? 내가 그쪽으로 갈게요. 일단 병원 갔다 가요.
아내: 병원은 안 가도 돼요..
나: 그래도 가야죠!


 어느 날 아내가 속이 많이 아팠던 적이 있다. 아내는 병원을 잘 가려고 하지 않는 편이고, 약 먹는 걸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 날은 아마도 뭘 잘못 먹어서 크게 속이 상했던 것 같다. 한참의 설득 끝에 가까운 내과에서 진찰을 받고 무수한 약봉지를 받아서 집으로 왔다. 상한 걸 먹어서 위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는데, 그 당시 의사가 아픈 걸 이때까지 참았냐며 뭐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아내가 한동안 크게 얋아서 많이 걱정을 했었다. 내가 뭘 해줄 게 없나 생각하다가 아내가 잠든 밤에 무수히 많이 받은 약봉지에 하나하나 메모를 붙이기 시작했다. 




아내: 와 이게 다 뭐예요? 어젯밤에 쓴 거예요? 이거 약봉지가 20개가 넘는데 다 붙였네
나: 자기가 아픈 거 참으면 안돼요.  많이 아프기 전에 병원 가야죠. 
아내: 네.. 그럴게요...
나: 이거 약 먹을 때마다 보면서 힘내고 얼른 나아요
아내: 고마워요~!


 정성스럽게 포스트 잍에 손으로 직접 쓴 메시지들은 조악한 글씨체이긴 하지만 상대방에게 꽤나 힘을 줄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쓴 메모들에 감동받고 내 마음을 느끼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글 속에서 느껴지는 상대방의 마음. 그게 손으로 쓴 글씨의 매력이 아닐까? 


 우리는 처음 맞이한 결혼기념일에 서로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어 고민을 했다. 서로에게 축하를 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고, 선물을 하고 케이크를 먹고. 기본이 되는 그런 행동들을 다 치르고 난 다음에 우리는 서로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그런데 그 편지는 미래의 나에게, 미래의 아내에게 쓰는 것으로 쓰고 나서 보관했다가 1년 후 결혼기념일에 같이 열어보기로 했다. 


나: 우리가 처음 결혼기념일을 보내네요!
아내: 그래요. 정말 기뻐요! 우리 맛있는 것도 먹고 재미있게 보내요. 
나: 그렇게 하시죠! 우리 편지도 쓸까요?
아내: 좋죠. 손으로 쓰는 편지 좋아요. 일단 이쁜 편지지를 사자.
나: 음. 그럼 각자 받고 싶은 디자인의 편지지를 골라서 쓸까요?
아내: 그것도 좋죠. 그리고 우리가 편지 쓰고 바로 주고받지 말고, 다음 결혼기념일에 열어보면 어때요?
나: 응? 1년 후에 열어 보자고요? 궁금할 텐데...
아내: 미래의 상대방에게 미리 편지를 쓰는 거죠. 
나: 한 번 해보죠!


 미래의 상대방에게 편지를 쓴다. 쓰는 시점에서는 미래의 상대방에게 쓰는 것이지만, 1년이 지나고 그 편지를 읽을 때면 과거에서 온 편지를 읽는 셈이다. 나와 아내가 지금 고민하는 것, 지금 생각하는 것이 1년 후에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우리가 목표로 하는 일들이 얼마나 이루어졌을까? 우리가 1년 동안 얼마나 타퉜을까? 이런저런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는 일이다. 미래의 상대방에게 편지를 쓰면 뭔가 걱정과 미안함이 더 담기는 것 같다. 그게 내 성향일 수도 있지만, 더욱 지금의 나의 모자람을 미안해하고 더 잘할 거라는 이야기를 쓴다. 


 원래 편지라는 것에는 마음이 담기기 마련이지만, 그게 미래의 상대방이라면 더 생각하면서 쓸 수밖에 없다. 몇 번의 경험상 더 미래 지향적으로 편지를 쓰게 되는 것 같다. '지금은 이런이런 상황이지만, 내년에는 이렇게 될 거야.', '내가 내년에는 이런 걸 배우고 발전할 거야', '계속 사랑할 거야' 등등 과거의 일 보다는 올해의 결혼기념일까지의 경험을 종합하여 내년에 어떻게 발전하고 사랑하고 지낼 것인가에 대한 내용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게 된다. 


아내: 다 썼어요? 어허~ 이 아저씨가! 보지 마세요.
나: 궁금한데, 살짝 봅시다. 
아내: 어허~ go away~! 자기는 무슨 언어로 썼어요?
나: 나는... 그냥 한국말로 썼어요. 그게 좀 더 내 마음을 쉽게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내: 나는 중국말로 썼어요. 메롱
나: 어....... 나 중국말 잘 못 읽는데.... 너무 하네...
아내: 소심쟁이. 중국말 아니고 영어로 썼어요. 걱정 마세요
나: 어휴 그나마 다행이다. 


 1년이 지나고 다음 결혼기념일이 되었을 때, 그 편지를 각자 꺼내서 읽어본다. 과거의 아내가 쓴 편지가 1년 후에 도착한 느낌. 편지를 읽는 동안 우리가 지내왔던 1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1년 동안 같이 고생하고 행복했던 그 추억들.  1년 전에 아내가 생각했던 지금 우리의 모습과 미래의 모습들을 편지에서 읽을 수 있다. 물론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도 많다. 그래도 그 일들은 같이 만들어가는 중이니까 또 내년을 기약한다. 


나: 음.. 이렇게 과거의 자기한테 온 편지를 읽는 것도 좋네요. 그동안의 일들도 생각나고.
아내: 그쵸! 너무 좋은 거 같아요. 근데 자기가 글씨 좀 알아볼 수 있게 써주세요. 나 암호 해독하면서 읽어야 돼요. 
나: 앗... 이거 엄청 잘 쓴 건데... 
아내: 나 외국인이거든요. 오래 걸려도 좀 잘 써주세요.
나: 하하하 그렇게 할게요. 이제 내년에 볼 편지를 써볼까요? 내년의 자기에게.
아내: 편지 읽고 나니까 올해 해야 할 것들이 생각났어요. 내년엔 다 완료했겠지?? 써보자!



 그렇게 한동안 서로의 편지를 읽고 나서 그것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1년 후의 상대방에게 편지를 쓴다. 역시나 편지지는 서로가 받고 싶은 디자인으로 골라서 앞으로 1년 동안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 생각하며 편지를 쓴다. 서로가 이루고자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다독이는 내용이 많이 담긴다. 그리고 앞으로 1년 동안 상대방에게 어떤 마음으로 대할지도 그 편지에 담긴다. 


 매년 결혼기념일에 여전히 우리는 서로에게 편지를 쓴다. 특히나 아내가 임신하고 맞은 결혼기념일 때 서로가 쓴 1년 전의 편지를 볼 때 감회가 새로웠다. 임신은 우리가 1년 전에는 전혀 계획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만큼 큰 일이었고, 임신 덕분에 못하는 일도 생겼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그 편지를 보며 서로 큰 힘을 받았던 것 같다. 그렇게 받은 힘으로 1년 후의 상대방에게 다시 편지를 쓰고 힘든 임신 초중기를 잘 보낼 수 있었다. 


 편지를 쓴다는 것만큼 속 마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것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이 마음속에서 정말 우러러 나와서 정리해서 써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좀 더 깊은 생각을 끌어내서 정성스럽게 쓰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을 꼭꼭 눌러 담아서 미래의 상대방에게 편지를 쓴다는 건 참 좋은 일인 것 같다. 미래의 상대방에게 편지를 쓰고, 과거의 상대방이 쓴 편지를 읽는다. 뭔가 타임머신을 탄 것 같은 착각도 들게 하는 멋진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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