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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빗구미 Jun 05. 2018

#17. 임신 중엔 모든 것이 예상과 다르게.



 산부인과에 가서 임신을 확정 지었던 그 날, 우리는 진료를 마치고 병원 앞 맥도널드에서 아침메뉴를 먹었다. 아내와 나는 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나가거나 각자 할 일을 하는 편이다. 임신 중에도 주말, 평일 모든 일정을  아침 일찍 일어나 진행하고, 밤에는 가능하면 일찍 자는 편이다. 이 패턴은 임신 중에도 주욱 이어질 거라 생각했고 평범하게 지나갈 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우리 마음처럼 그렇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 었다.


아내: 이제 병원에서 확정도 받았네요. 저는 소시지 들어간 거 먹을 거예요. 음료는..... 이제 커피는 못 먹겠네요. 오렌지 주스로 바꿔주세요.
나: 그래요. 이제 우리도 임신 기간을 맞았네요. 아직 점 같아 보이지만... 내가 음료는 교환해 올게요. 근데 이제 맥도널드도 못 먹는 거 아니에요?
아내: 아니, 일주일에 한 번먹는데요. 괜찮을 거예요. 뭐 특별히 다를 게 있겠어요? 앞으로 10개월 동안도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하면 돼요.
나: 그렇겠죠? 일단 최대한 시킬 거 있으면 나 시켜요.
아내: 그래요~ 강한 정자 남편님~
나: 앗... 그게 뭐예요~~!


 임신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우리의 생활 패턴과 태도에 영향을 줬다. 임신 초기에 안정 단계가 될 때까지 아내는 속 쓰림 입덧 때문에 고생을 했다. 헛구역질은 나지 않았지만, 속 쓰림이 심했다. 평소에도 밥도 조금씩 먹던 아내는 임신 초기에 밥을 거르는 경우가 많았다. 먹고 싶은 음식도 따로 없다고 하고, 계속 누워서 물만 마시는 시간이 많아졌다. 늘 중국에서 가져온 차를 즐기던 티타임도 없어졌고 그저 모든 음료는 물로 바뀌었다. 그리고 식사 시간을 마치고는 매일매일 근처 산책을 나갔다.


나: 자기 속이 아파서 어쩌죠? 뭐 먹고 싶은 건 없어요?
아내: 으음... 이게 왜 이렇게 아플까요? 막 크게 아프다기보다 계속적으로 아파요... 딱히 먹고 싶은 건 없는데.. 그래도 중국 음식이 먹고 싶어요. 엄마가 해주신 음식... 이요..
나: 아.. 그건 사 올 수도 없는데, 주변에서 살 수 있는 것 중에는 없을까요?
아내: 주변에선 딱히 없을 것 같아요..
나: 그럼 일단 중국 요리 집이 많은 대림이나 건대 쪽에 가서 중국 음식을 먹어보자.


 무엇보다 음식이 문제였다.  아내의 고향인 심천은 광둥요리를 먹는 지역이다. 그러니까 흔히 한국 사람이 생각하는 홍콩의 요리들이다. 하지만 대림, 건대입구 등 어느 지역을 가도 광둥요리는 찾아볼 수 없다. 대부분은 중국 북쪽 지방의 음식이 많다. 그래서 양념도 강하고 매운 음식들이 많아서 아내와 한 번 대림 쪽의 음식을 먹었다가 오히려 더 속이 아픈 경험도 했다. 그날 이후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광둥요리 집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급하게 검색하다 임신 전에 방문한 적이 있는 광둥요리 집을 다시 찾아갔다. 장모님이 요리한 음식은 아니었지만, 그 음식점이야 말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광둥요리 집이었다. 방문할 때마다 우리는 많은 요리를 시켜서 하나하나 맛보고 조금씩 남겼다. 물론 아내가 먹고 싶은 음식 위주로 골랐다. 그렇게 먹고 나서도 아내는 여전히 만족하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현지에서 먹는 음식과는 차이가 좀 있을 테니까.


나: 자기가 맛있게 먹었어요?
아내: 네 맛있게 먹었는데, 그래도 엄마 해준 요리가 먹고 싶어요.
나: 에고.. 지금은 어쩔 수가 없는데, 나중에 기회 봐서 가능하면 장모님 댁에 가보자, 비행기 타는 거 문제없으면요. 아니면 장모님을 출산 전에 일찍 오시라고 해도 되고요.
아내: 그래요. 그러시죠. 근데 자기야 우리 태명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 그쵸. 우리가 태명을 지어야 되는데, 뭘로 할까요?
아내: 좀 귀여운 태명이면 좋겠어요. 자기가 아이디어가 있으세요?
나: 음... 자기가 토끼 띠니까 당근이 어때요?
아내: 당근이? ㅋㅋ 귀엽네요. 자기가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나: 아니.. 지금 내가 입는 이 바지 보니까 토끼가 소중하게 당근을 안고 있네요. 이거 보니까 당근이로 지어야 할 거 같았어요. 하하하하.  


 그렇게 태명은 '당근이'가 되었다. 위의 바지는 사실 처남이 나에게 선물로 사준 바지인데, 이 바지가 태명과 연결될 줄은 몰랐다. 토끼띠인 아내가 당근을 소중하게 안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자연스럽게 아내가 출산해서 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당근이라는 태명으로 우리는 아이를 명명했다. 우리가 처음으로 만든 생명에게 우리가 지은 이름을 붙였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렇게 만들고 계획해야 할 일들이 참 많았다.


 그렇게 태명을 짓고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우리는 산부인과 가는 날을 기다렸다. 매번 갈 때마다 조금씩 커가는 당근이를 초음파로 보고 사진을 저장해서는 장모님과 부모님께 바로바로 전달했다. 양쪽 부모님들도 그런 모습들을 참 좋아하셨던 것 같다. 한국어로는 당근이, 중국어로는 후로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한국어도 귀여운 어감인데, 중국어로도 귀여운 어감이라고 한다.


 어느 날은 임신, 육아에 대한 것을 일기로 써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애플리케이션을 찾아봤는데 특별히 눈에 띄는 앱이 없었다. 그러다가 맘스 다이어리라는 일기 사이트를 발견했다. 앱도 있고, 웹에서고 매일 일기를 쓸 수 있는 곳인데, 100일 동안 매일 일기를 쓰면 책을 만들 수 있다. 완전히 무료는 아니지만 일정 부분 비용을 할인해줘서 실제 책으로 만들어 임신 기간 동안의 일을 책자로 받을 수 있다.


나:  나 이제 일기 쓰려고요. 좋은 사이트를 발견했어요.
아내: 정말요? 그런 곳이 있어요? 나는 그냥 내 메모장에 쓰려고요.
나: 여기 매일 쓰면 책으로 만들어줘요. 매일매일 써서 책으로 만들어서 나중에 우리도 보고 당근이도 보여줘야죠!
아내: 그래요 한 번 해보시죠!



 그 뒤로 지금까지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있다. 물론 중간중간 빠지는 날도 있다. 한 번 만들어진 습관이란 게 참 무섭다. 어디에 있든 자기 전에는 간단하게 라고 그날의 특별한 일을 기록으로 남긴다. 언젠가 당근이가 컸을 때, 매일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기록지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맘스 다이어리에서 책으로 만들어낸 것들이 여전히 책장에 그대로 꽂혀있다. 임신/육아 일기. 그걸 보고 있으면 뿌듯해지고, 그 와중에 커가는 당근이를 모니터로 볼 때마다 우리는 작은 기쁨을 느끼며 병원 앞 맥도널드에서 맥모닝으로 당근이의 성장을 축하했다. 그렇게 속 쓰림 입덧과 함께한 임신 초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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