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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키친anime cook Nov 06. 2019

우리는 모두 휴식이 필요해

영화 <안경>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을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건 또 아닌데 어쩌다 보니 나오코 감독의 영화로만 (영화 속 음식까지 포함하면) 8개의 영상을 만들었다. 오늘 소개할 영화 역시 나오코 표 특유의 감성과  음식이 있다.

 

영화 <안경>의 포스터


영화는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는듯한 사람들을 보여주곤 곧바로 공항을 보여준다. 비행기에서 유유히 내려 빠른 걸음으로 공항을 빠져나가는 이 사람. 비행기를 탔다는 건 조금은 먼 길을 왔다는 뜻일 텐데 짐이라고는 손에 들린 작은 가방뿐이다.


멀리서 얼핏 봐도 엄청난 포스를 뿜으며 걸어오는 사람의 이름은 ‘사쿠라’.

그리고 그녀를 애타게 기다린듯해 보이는 하마다 민박의 주인 ‘유지’와 고등학교 생물 선생님 ‘하루나’

영화 <안경>

위 세명의 만남 이후 곧바로 영화는 다시 공항에서 캐리어 하나를 힘겹게 끌고 나오는 한 사람을 비춰준다. 방금 전 작은 가방만을 가지고 나오던 사쿠라 씨와는 대조되는 모습의 주인공 ‘타에코’.

손에 들려 있는 종이 약도 한 장으로 줄곧 무언가를 찾는듯해 보이는 타에코 씨는 해변에서 사쿠라 씨와 마주치게 되는데,


빙수 있어요



뜬금없이 빙수 영업을 하는 사쿠라 씨.

타에코 씨는 그녀를 가뿐히 뒤로하고 유지 씨가 운영하는 민박 하마다에 도착한다.

그런데 이 민박 좀 이상하다. 간판이 없다. 아니, 간판이 있긴 한데 겨우 보일 정도로 작고 일부러 찾아봐야 볼 수 있는법한 위치에 있다.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게 싫어서 이렇게 해놨다는 민박집주인 유지 씨는 타에코씨의 짐가방을 그냥 마당 한가운데 방치하는가 하면, 유지 씨가 직접 손으로 그린 약도를 보고 하마다를 찾아온 타에코가 이 곳에 있을 재능이 있다는 알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고, 그냥 조용히 혼자 있고 싶어 하는 타에코 씨에게 민박집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공동체와 함께 할 것을 권하기도 한다. 아, 물론 한번 권해서 거절하면 뒤도 안 돌아보고 자신만 그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영화 <안경>


독특해 보이는 사람은 유지 씨뿐만이 아니었다. 사쿠라 씨 역시 꽤나 특이해 보인다.

자고 있는 타에코 옆에 앉아 있다가 아침인사를 건네는가 하면, 매일 아침마다 우스꽝스러운 동작의 메르시 체조를 하고, 빙수를 싫어하는 타에코 씨에게 뜬금없이 빙수를 권하기도 한다. (사쿠라 씨가 만든 빙수는 물물교환을 통해서만 사 먹을 수 있다.)


딱히 관광지도 없고 늘 조용한 이곳엔 그냥 멈춰 서서 혹은 앉아서 늘 사색에 잠겨있는 사람들뿐이었다. 휴식이 필요해서 여행을 온 타에코 씨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을 묘하게 불편하게 하는 이곳이 부담스러웠던 타에코 씨는 결국 하마다의 사람들을 견디지 못하고 마린 팔레스라는 또 다른 숙소를 찾아 떠난다.


그런데 웬걸... 작은걸 피해 갔더니 더 큰 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린 팔레스는 매일 오전 공동 노동을 하고 오후엔 함께 공부를 하며 그날 먹을 식재료를 땀으로 일궈내는 노동(?) 공동체였다.

영화 <안경>


누가 봐도 휴식이 필요해 요론 섬을 찾은 타에코 씨가 이곳과 맞을 리 없었다. 허겁지겁 그곳을 빠져나와 유지 씨의 약도를 벗 삼아 하마다로 향한다. 울퉁불퉁한 시골길을 걷는 타에코 씨의 짐가방은 어느 때보다 힘겨워 보였다. 타에코 씨는 그렇게 짐가방을 질질 끌고 시골길을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아침도 먹지 않은 타에코 씨는 그렇게 걷다 지쳐서 길바닥에 주저앉고 마는데... 한참을 넋 놓고 앉아 있으니 저 멀리서 웬 자전거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사쿠라 씨의 자전거엔 자신만 탈 수 있는 자리만 있을 뿐 짐가방을 실을 자리 따위는 없었다. 꼭 필요한 것만 챙겨서 여행을 왔다던 타에코 씨는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그야말로 짐이었던 가방을 버려두고 사쿠라 씨의 자전거에 올라탄다. 그나마 아주 적은 양의 짐마저도 내려놓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영화 <안경>


이런 일을 겪은 후  타에코 씨는 전과는 다른 태도로 요론 섬의 일상을 즐기기 시작한다. 더 이상 늦잠도 자지 않고, 우스꽝스러운 메르시 체조를 무심결에 따라 하기도 하고, 하마다의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그들과 꽤나 즐겁게 이야기도 나눌 수 있게 된다. 사쿠라 씨의 자전에게 탔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묘한 부러움을 사기도 하고 또 그 사실에 으쓱해하기도 하는 타에코는 이제 제법 사색하는 게 익숙해진 것 같아 보인다. 그곳에 있을 재능이 있다더니 정말로 그런 것 같았다.

영화 <안경>




영화 안경은 나오코 감독의 전작들과 비교해 봤을 때 비슷한 감성의 영화이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영화는 시종일관 모든 물음표에 대한 대답을 딱히 하지 않고 있다.


사쿠라 씨는 어떤 사람이고 왜 매년 봄마다 이곳으로 와 빙수를 팔고 있는 거지?

하루나는 왜 타에코에게 까칠하게 구는 거지?

사람들은 왜 유독 사쿠라 씨 자전거에 타고 싶어 하는 거지?

타에코는 무슨 일을 겪었길래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곳을 찾아 여행을 오게 된 거지?

타에코의 제자 요모기는 왜 타에코를 찾아온 거지?

 

보는 내내 이런 내용들이 궁금해지는 내게 영화는 타에코 씨의 입을 빌어


뭔가 이유가 없으면 안 되는 건가요?


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영화 <안경>


등장인물들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지금 한 행동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이렇다 할 어떤 사건도 없이 정적이 흐르게 놔두는 이 영화는 가끔 움직이지 않고 앉아있는 사람들을 꽤나 오랜 시간 보여줘서 영화가 멈췄나? 하는 착각도 일으키게 해 줄 정도로 지루하기까지 하지만, 시끄럽고 분주한 일상을 살고 있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 어떤 의미나 이유를 부여하고 그래야만 하루를 보람차게 살았다고 생각하는 내게는 다소 충격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정화되는 그런 영화였다.


나에게도 아무 이유 없이 아무 의미 없이 넋 놓고 앉아서 하염없이 사색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이 정말 필요하구나 하고 느끼게 해 준 영화 안경. 호불호가 갈리긴 하겠지만 나처럼 쉼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영화다.

영화 <안경>


그리고 이영화는 나오코 감독의 작품답게 침샘 폭발하는 음식들을 보는 재미도 매우 큰데 이번 리뷰 영상 이후엔 영화 속에 나왔던 음식들을 재현하는 영상을 올리게 될 것 같다.

그나저나 이 영화의 제목이 안경인데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다 안경을 끼고 있어서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정말 그래서 제목이 안경인 걸까?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걸까? 타에코가 여행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차 밖으로 떨어뜨린 자신의 안경, 나는 거기서 그 해답을 찾았는데 뭐 제목이 안경인 이유가 뭐 그렇게 중요한가. 뭔가 이유가 없어도 되는 거지.


https://youtu.be/fNI6c5ezC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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