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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키친anime cook Jun 14. 2019

세상을 바꾼 변호인

성별에 근거하여  On the basis of sex

1956년, 하버드 로스쿨 입학식.

신입생 500여 명 가운데 여성은 단 9명뿐.

그 당시 하버드 학장은 9명의 여성들을 파티에 초대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여자가 왜 여기 남성의 자리에 왔습니까?"

1년 먼저 로스쿨에 입학원 남편을 둔 한 여성은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남편의 일을 더 잘 이해하는 아내가 되고 싶었습니다."

이 말은 거짓말이었고 이 말을 한 사람은 바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입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열심히 공부하여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을 꿈꾸던 사람이었습니다. 여성이 2%도 안 되는 하버드 로스쿨에서 환경의 압박과 함께 여자라는 이유로 온갖 차별에 시달렸지만 그는 뛰어난 성적으로 로스쿨을 마치게 됩니다. 그 후 그는 여성이고 엄마이며 유대인이란 이유로 로펌 면접에서 열 번 이상을 떨어지게 되고 결국 1963년 대학 교수로 부임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교수가 된 자리에서도 남성보다 형편없이 적은 봉급을 받게 되며 성차별을 몸소 겪게 됩니다. 여성이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 없었고 선택한다 해도 지극히 제한된 선택만을 허용하던 시대를 살았던 그는 대학에서 '여성과 법' 강의를 개설했고 미국 시민자유연맹 산하의 여성권익 증진단을 공동 설립했으며 다른 여성 교수들과 함께 대학의 성차별적 급여 체제에 관한 집단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기도 했습니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1973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처음으로 연방대법원에서 기혼여성인 공군 중위 '샤론 프론티에로'의 구두변론을 진행하게 되는데 기혼 남성 동료들과 같은 주거, 의료, 치과 치료 등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소송이었고 그때 그녀는 9명의 대법관 앞에서 이런 변론을 합니다.


"오늘날 여성들이 직면한 고용 차별은 소수집단의 차별만큼 만연하지만 훨씬 교묘하여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성별 기반 차별은 여성이 열등하다는 편견을 낳고 성별은 낙인으로 작용해 여성 보호 명목으로 여성의 고소득 취업과 승진을 방해합니다.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는 게 아닙니다. 내가 형제들에게 하려는 부탁은 우리 목을 밟은 발을 치워 달라는 것뿐입니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성차별 따위는 없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을 마주하며 성차별이 있다는 걸 입증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었다고 회상합니다. 그의 여러 가지 업적들이 많이 있지만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 참고) 그중 <세상을 바꾼 변호인>에서 다룬 이야기는 혼자 어머니를 돌보는 비혼 남성이 간병인 비용에 대한 세금 공제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소송이었는데 당시의 조세법은 가족 보육자 자격을 여성으로 지정해 놨었고 그러한 법은 여성을 차별하는 동시에 남성을 차별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연방 대법원에서 이 법 조항을 위헌으로 판결하면 앞으로 수많은 재판의 판례로 인용될 것이며 성별을 근거한 차별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 재판을 맡게 됩니다.

이 분에 대해 조금만 검색해 보아도 알 수 있듯 이 소송은 승소하고 이 재판으로 인해 남성 중심의 사법시스템 안에서 성별에 기초한 차별이 합법이었던 현실을 드러내며 178개의 성차별적 법들을 개정하는데 크게 기여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1993년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연방대법관으로 임명되고  86세의 그는 오늘도 연방대법원의 3명의 여성 대법관 중 한 명입니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20년 전 그는 앞서 소개해 드렸던 샤론 프론티에로의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성별에 따른 차별적 처우를 위헌으로 만들려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며 연방 대법관 청문회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논의를 반복해야 함은 알았습니다. 적어도 대여섯 번은요. 단번에 성공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일반적으로 사회의 진정한 변화와 지속적인 변화는 단계를 거친다고 봅니다.”


그녀는 자신이 한 말처럼 그렇게 살았고 포기하지 않음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에 기여했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인물에 대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세상을 바꾼 변호인>

솔직히 영화가 이 이야기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했던 게 사실입니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 홍보과정에서 벌어진 홍보용 포스터 논란으로 인해 그 걱정이 배가 되기도 했지만 개봉일에 영화를 보고 나와서 기쁘게 리뷰 영상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이 영화가 연출 적인 면에서도 훌륭했었기 때문입니다.

논란이 되었던 홍보용 포스터 <출처 경향신문>

영화는 루스의 투쟁과 함께 하며 지지해주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잘 담아내었는데 그중 인상 깊었던 건 루스의 딸 제인이었습니다. 어머니와는 다른 세대의 여성으로서 루스가 깨닫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많은 영감을 주는 제인은 두려움이 없는 세대의 강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러한 딸의 모습을 보고 주인공 루스는 시대가 변했음을 확신하며 포기하지 않고 그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제가 특별히 이 영화에서 주목한 점이 한 가지 있는데 왜 이 영화는 수많은 소송들 중 이 사건을 다루고 있는가 였습니다. 이 소송 이외에도 위대한 승리들은 많이 있었는데 말이죠. 물론 이 소송의 승소가 다른 성차별적인 법들을 개정하는데 문을 열어준 중요한 판례이기 때문에 다뤘으리라 생각합니다만 한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으로서 조금 다른 시선으로 이 영화 속 이야기를 바라보게 됩니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지금 한국 사회는 젠더 갈등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저는 이게 나쁘다고만 생각하는 입장은 아닙니다. 갈등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문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문을 지나면 우리 사회도 좀 더 평등한 사회로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에서 다룬 이야기에 좀 더 주목해야 합니다. 여성을 가족 보육자로 여기던 차별적 편견은 가족을 돌보며 살아야 했던 남성에게도 차별이었다는 사실을요.


제가 좋아하는 시인 루피 카우르의 책 <밀크 앤 허니> 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여자가 살지 못하는 곳에선 아무도 살지 못한다."

여성이 차별을 받는 사회에서는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남성들과 함께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차별적인 세상입니다. 모든 차별은 맞닿아 있고 여성에 대한 차별은 남성을 차별하는 근거로도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가부장제와 같은 것이 될 수 있겠네요. 가부장제는 여성들의 선택을 제한하고 억압하며 남성들에게는 큰 짐을 지어 줍니다.


영화는 말합니다. 우리가 싸워할 것은 기득권 중심의 시스템이라고.


 영화의 법정 씬에서 주인공 루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나라를 바꿔달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건 법정의 허락 없이도 이미 시작되었으니까요. 이 나라가 바뀔 권리를 지켜달라는 겁니다. 우리의 아들 딸들이 법에 가로막혀 편견을 근거로 기회를 박탈당하는데 214조 같은 법이 있다면 이런 편견이 틀렸음을 어떻게 입증할까요? 우린 이런 법들을 하나씩 고쳐나가야 합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들을 위해서."

https://youtu.be/rETW3PjVv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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