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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키친anime cook Jun 12. 2019

바닷마을 다이어리

고레에다 히로카즈 #1

‘별일 아닌 일’로 집에서 호출당한 요시노.

바로 그 일 때문에 ‘밤 잠을 설친’ 사치.

그 일에 대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농담을 하는’ 치카. 15년 전 가족을 버린 아버지의 부고를 들은 세 자매의 각기 다른 반응들.

아버지에 대한 다른 기억과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치, 요시노, 치카 세 자매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이복동생 스즈를 만나게 되고 어린 스즈의 모습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연민의 감정이 생긴 사치는 스즈에게 함께 살 것을 권하게 된다.

그렇게 그녀들은 세 자매에서 네 자매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그녀들이 ‘진짜’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영화를 좀 본다는 사람들에게 힐링 영화 한 편 추천해 달라고 하면 열에 하나쯤은 이 영화를 추천해 줄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이 영화를 보았다. 힐링하고 싶어서...


그런데 웬걸...?


영화를 볼 때 극 중 인물 중 누군가에게 심하게 감정 이입이 되는 편인 나는 이번엔 ‘사치’에게 이입되어 영화를 보았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힐링은커녕 영화를 보는 내내 고구마가 가슴에 턱 하니 걸린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부모의 부재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동생들의 보호자가 되어 살아온 그 인생도 짠해 죽겠는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 아버지의 남겨진 딸인 이복동생과 함께 산다고? 아, 물론 스즈는 아무 잘못이 없다. 스즈의 엄마도 사치의 엄마도 아무 잘못이 없다. 단지 그녀들의 아버지의 잘못일 뿐. 안 그래도 살아가기 힘든 인생, 지금까지 두 동생들을 돌보느라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적지 않게 포기하고 살았을 것이 눈에 훤하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고 그 동생들이 이제 성인이 되어 제 몫을 하게 되었는데 또 다른 어린 동생을 데려온다니... 스즈를 돌보기 위해 반드시 무언가를 포기할 수도 있는 상황일 텐데 그런 결정을 하는 사치가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여하튼 이런 이유로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땐 기분이 썩 좋지 않았었다. 사람들은 왜 이런 답답한 영화를 힐링 영화라고 부르는거야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영화 리뷰 영상을 제작하는 사람. 어쩔 수 없이 영화를 다시 켜고 찬찬히 보기 시작했다. 한 서너 번쯤 보았던 것 같다. 이런 기분으론 영상을 만들 수 없으니까 뭔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라도 봐야만 했다. 그리고 반복해서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들의 사연과 감정, 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힐링 영화가 맞았다. 나를 치유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극 중 네 자매들은 서로를 통해서 치유되고 있었다.

이 영화 속엔 인간의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있었다. 각자 처한 상황과 자라온 배경, 겪었던 경험 등을 통해 같은 사건이라도 대하는 자세가 달랐고 받아들이는 마음이 달랐다. 그녀들의 시선에 맞추어져 해석되는 사연들이 얽히고설켜 있었고 영상에서 보여주는 잔잔함 이면엔 그녀들의 치열함이 담겨 있었다.

특별히 스즈에게 마음이 많이 가게 되었는데 스즈는 늘 아버지가 언니들을 떠났던 일을 떠올리며 그녀들에게 부채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와의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고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감정도 드러내지 못했다. 그중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점이었다. 아버지의 외도로 인해 태어난 나에 대한 자기에 대한 부정적 감정 말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 네 자매들은 함께 살아가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정리한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나 어머니에 대한 미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생각 등이 변하기 시작한다. 정말 감동스러웠던 점은 그 변화를 서로 이끌어 내준다는 것이었다.

이 가족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보통의 가족은 아니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의 가족은 혈연으로 묶인 가족이니까 그 점에서는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내가 영화를 통해 본 이 가족은 정말 이상적인 가족이었다. 서로의 감정을 배려해주고 기다려주었으며 내 감정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현실의 가족들은 가족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의 생활과 감정을 당연한 듯 침해하거나 배려하지 않고 살아가는데 바닷마을 다이어리 속의 이 가족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너무 좋았다. 이게 진짜 가족이지 싶었다.


영화는 이런 복잡한 감정들을 아주 잘 담아냈다. 사계절을 지나며 변하는 풍경과 함께 달라지는 네 자매의 표정과 말투, 태도의 변화를 너무 아름답게 담아냈고 영화엔 등장하지 않지만 자매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떠나간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도 대사를 통해 잘 담아냈다. 말로만 들었는데 눈으로 본듯한 느낌이었달까...? 가족과의 추억으로 연결되는 음식들도 너무 따뜻했다. 영화 속 요리를 재현하는 나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던 영화였다.

정말 밤을 새우며 이야기하고 싶어 지는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 개인이 가진 각기 다른 경험의 눈으로 영화를 보았을 때 느껴지는 다른 울림들을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사람들도 느꼈으면 좋겠다.


https://youtu.be/sZ444TqaZW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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