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문보 Dec 12. 2018

혼돈에서 고요로의 여정, <로마>

생생하게 재현된 대서사시이자 당시 여성들을 위한 애정이 담긴 인사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17년 만에 멕시코로 돌아가 신작을 찍는다고 발표했고, 넷플릭스는 제작을 맡았다. <옥자> 때문에 칸영화제와의 경쟁부문 출품을 놓고 첨예한 대립을 보인 넷플릭스는 올해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 <로마>를 경쟁부문에 출품했고 황금사자상이라는 최고상이라는 엄청난 성취를 이뤄냈다. <로마>는 시간적 배경으로는 혼돈의 1970년대 초반을, 그리고 공간적 배경으로는 멕시코시티 로마 지역을 삼았다. 겉으로는 가정을 버린 남편으로 인해 혼자가 된 여성과 임신 사실을 고백하자 책임을 회피하며 도망간 연인 때문에 혼자가 된 여성의 시간을 다룬다. 하지만, <로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자신의 유년 시절을 돌봐준 모든 여성들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자전적 이야기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은 롱테이크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근데, 이번 영화에서 그는 이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데, 이를 위해 그는 ‘패닝 쇼트(panning shot)’, ‘트래킹 쇼트(tracking shot)’, 그리고 피사체를 화면 중심에서 이탈하지 않게 만드는 절제된 카메라 워킹을 준수한다. 1970년대 멕시코시의 상황이 어땠는지 우리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멀리서 볼 때 그나마 조화를 이루는 듯해 보이지만 막상 가까이서 들었을 때 확인되는 불협화음의 군악대 행진을 미루어 보아, 그 당시 멕시코는 혼돈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널브러진 개똥을 계속 닦아도 개똥이 사라지지 않는 바닥은 국가나 권력자들이 오히려 빈곤 계층을 더 약탈할 뿐만 아니라, 있는 자들끼리 질투하며 재물을 쟁취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추악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즉, 박제된 동물들처럼 권력을 쟁취한 자의 손길에 패배한 나머지들은 편히 있지 못하고 전시되는 어두운 상황이다. 개인적으로는 남성 권위적인 사회로 인해 여성들은 같이 공유해야 하는 두려움을 혼자 감당해야 하는 힘든 상황이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성과 그녀의 할머니, 그리고 연인으로부터 버려진 여성이자 <로마>의 중심 시선이기도 한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는 서로의 손을 잡는다. 비극이 일어나는 순간에 세 사람은 서로를 외면하지 않는다. 계속 함께한다. 그리고 함께 새 출발을 한다. 이전에는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였다면, 이제 세 사람은 고요한 삶을 함께하는 동지가 되었다. 클레오의 고용인인 여성은 자식들과 클레오 모두에게 앞으로 남편과 따로 살아갈 예정이며 새로운 직장을 다니며 이전보다 행복한 삶을 살 거라는 다짐을 공유한다. 클레오는 파도에 휩쓸린 아이들을 구하다가 얼마 전 죽은 채 태어난 자신의 아기를 떠올린다. 현재와 과거의 일이 충돌하면서 그녀의 무의식에서는 죄의식이 발동한다. 무의식을 마주한 클레오는 아이들과 자신의 고용인 앞에서 진심을 고백하고 같이 부둥켜안는다. 



더 나아가, 두 여성의 고백과 더불어 두 여성이 아이들과 여행을 떠난 사이 방 구조를 바꾼 할머니의 행동을 통해서도 이를 증명할 수 있다. 새로운 구조는 새로운 출발을, 남성으로부터 버려진 두 여성이 모두가 있는 앞에서 고백하며 슬픔을 함께 하는 모습은 동지가 되었음을 나타낸다. 여행지에서 같은 장소이지만 한쪽은 삶의 슬픔을, 결혼식이 진행 중인 다른 한쪽은 삶의 기쁨을 그려내는데, 이는 삶을 양가감정으로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상호 대립되거나 모순되는 감정을 대응하는 방식과 그 결과가 다르다. 하지만, 이들의 포옹과 고백, 그리고 공간적인 변화는 격랑 속에서도 이들이 두 가지 감정 모두 함께 나누며 잘 살아갈 거라는 희망을 품게 만든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는 흑백영화다. 그러나 흑백 화면을 뚫고 나온 빛은 스크린 밖으로 전달된다. 만약,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요란법석 화면을 구성했다면, 여성들의 여정은 온전히 전달되지 못했을뿐더러, 자신이 전달하고자 했던 애정과 고마움 역시 증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패닝 쇼트와 트래킹 쇼트, 그리고 절제된 카메라 워킹으로만 미장센을 구축했기에 <로마>는 그 여정을 온전히 그려낼 수 있었다. 그래서 <로마>는 개인의 삶을 외면하지 않은 우아한 영화다.



* 해당 글은 아트렉처에 발행하는 글과 동일합니다: https://artlecture.com/event/view?id=458

관람 인증

1. 2018.10.09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2. 2018.12.12 (아트나인 일반 관람)


매거진의 이전글 독특하게 풀어낸 믿음과 의심 간의 갈등, <메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