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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Dec 10. 2018

독특하게 풀어낸 믿음과 의심 간의 갈등, <메기>

<메기>의 구덩이는 무엇을 역설하는가?


올해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4관왕 영예를 안았고, 얼마 전 막을 내린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메기>는 믿고 보는 이옥섭&구교환 감독의 조합을 장편영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 많은 사람이 주목을 한 영화다. 이번 영화에 이옥섭 감독은 연출을, 구교환 감독은 프로듀서 겸 주연 배우로 참여했다. 영화 <메기>는 경계가 없는 진실과 거짓말, 혹은 믿음과 의심을 이야기한다. 사실 믿음과 의심은 같은 메커니즘으로 발동되는, 즉 동전 양면과 같다. 인간은 자신이 믿거나 의심하는 대상을 두 눈으로 확인하려는 본성을 갖고 있다. 이는 결코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믿음과 의심을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왜냐하면 믿음과 의심을 구분해서 놓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 보기 싫은 것을 점차 배제해버리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를 성관계하는 X-ray 사진이 발견되면서 시끄러워진 병원 에피소드, 병원 부원장(문소리)과 정형외과 간호사 여윤영(이주영)의 에피소드, 윤영의 남자 친구(구교환)와 싱크홀 공사현장 동료와의 에피소드, 그리고 여윤영과 남자 친구의 에피소드로 풀어낸다.


     

극 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믿음과 의심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결국 관찰적인 판단과 윤리적인 판단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기 시작한다. 특히, 부원장과 윤영의 에피소드에서 부원장이 직원들이 출근을 하지 않는 이유를 의심하자, 윤영은 부원장에게 이들을 믿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윤영은 의심과 믿음을 분리해서 보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영화 엔딩 장면은 버즈 아이 뷰 숏(bird’s eye view shot)으로 마무리되는데, 구덩이(혹은 싱크홀)가 마치 믿음과 의심의 경계에 생긴 것처럼 그려낸다. 구덩이는 관찰적인 판단과 윤리적인 판단을 헷갈리게 되면서 생겨난 믿음과 의심의 혼재를 구체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메기’는 평소에는 가만히 있다가 두 가지 판단의 혼동, 그리고 믿음과 의심 사이의 갈등을 감지할 때 높게 공중으로 튀어 오른다.


     

윤영이 세탁소를 들렀다가 우연히 발견한 쪽지에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이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지만, 점점 많은 싱크홀이 생기는 것처럼 현재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우리가 해야 하는 자세를 나타낸다. 자신이 믿었던 사람에게서 배신감을 느껴서 구석구석에서 싱크홀의 수가 증가하는 것도 있지만, 의심 때문에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기 싫은 것을 외면했기에 생긴 것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 인간이 문구에 적힌 태도를 실천하지 못한다면 이미 생긴 구덩이는 더 깊어질 뿐만 아니라, 늘어난 싱크홀 때문에 관계가 무너지고, 더 나아가 사회가 무너질 것이다.


     

따라서, <메기>는 마음 한편에 생긴 내면의 악마를 제거하기 위해 믿음과 의심의 메커니즘을 깨닫는 일, 그리고 관찰적인 판단과 윤리적인 판단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하는 필요성을 강조하는 영화다.


* 해당 글은 아트렉처에 발행하는 글과 동일합니다: https://artlecture.com/event/view?id=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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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8.12.06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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