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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Dec 10. 2018

또 다른 실험극, <더 길티>

빛의 변화에 따른 내면의 변화


올해 제34회 선댄스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은 덴마크 영화 <더 길티>는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를 통해서만 사건의 경과를 다룰 뿐만 아니라 주인공은 오로지 그것에 의존해서 사건을 해결해야만 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다.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더 길티>는 배우 하정우가 출연한 <더 테러 라이브> (2013)와 비슷한 영화처럼 보인다. 그러나 <더 테러 라이브>의 주인공 윤영화(하정우)는 장난 전화인 줄 알았던 협박 전화가 실제 상황으로 이어지자 그 상황을 명예회복을 위한 기회로 삼지만, <더 길티>의 주인공 아스게르(제이콥 세데르그렌)는 책임감과 죄책감 때문에 단독행동을 하더라도 진정으로 사건을 해결한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다르다. 그런데, 사건의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주인공의 내면 혹은 죄책감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이를 공간을 비추는 빛의 변화를 통해 묘사한다. 또한 빛이 변하는 순간을 고요한 분위기로 나타내거나 혹은 아예 소리를 소거함으로써 주인공의 내면이 어떻게 변화의 단계에 있는지를 뚜렷하게 드러낸다. 



빛 1: 전등 빛


과거에 벌어진 사건 때문에 직무 해제된 경찰 아스게르는 임시로 긴급 센터에서 야간 응급 전화 업무를 맡게 되었다. 다음날 최종 재판에서 문제가 없다면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는 그는 긴급 센터에서의 마지막 업무가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한다. 그는 본인에게 따분한 응급 전화 업무를 처리하고 잠깐 쉬면서 비타민 발포제를 넣은 물을 마신다. 점점 소리가 줄어들면서 갑자기 다른 전화 한 통이 울리는데, 한 여성이 아스게르에게 전남편에 의해 납치되어 어디론가 이동 중이라고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말한다. 이 전화를 받기 전까지 자신의 업무에 대해 어떤 책임감도 보이지 않았던 그가 여성을 납치한 차량과 여성의 전남편을 추적하는 데 열중한다. 심지어, 여성에게 두 아이가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된 그는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경찰들이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이자 단독행동을 강행한다. 그는 건물 안의 전등 빛 아래에서 사건 해결에 가까워질수록 경찰로서의 사명감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망각하고 있던 죄의식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일종의 용서를 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까지 하면서 해결하려고 했던 사건이 예상한 바와 달리 굉장히 큰 사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그가 있던 공간의 소리는 완전히 소거된다. 



빛 2: 빨간빛


아스게르는 전화 내용을 토대로 얻은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해 정보만으로 여성을 납치한 남성의 죄를 단정 지었다. 하지만 자신이 관여한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자 그는 엄청난 충격에 빠졌을뿐더러, 남성의 울부짖음에 담긴 국가 기관을 향한 분노에 자신의 책임도 있다는 생각에 자신에게 화를 낸다. 그는 자신의 단정적인 태도와 오판이 상황을 어떻게 악화시켰고,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남겼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어두웠던 공간은 빨간빛으로 물든다. 즉, 빨간빛은 아스게르가 사명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만든 죄의식이 변화했음을 넌지시 나타낸다. 더 나아가, 아스게르의 변화한 죄의식은 다음날 재판에서 자신을 위해 증언대에 설 동료 경찰로 이어진다. 그는 동료에게 본인의 현장 복귀를 위해 위증할 필요 없으니까 솔직하게 증언해도 된다고 말한다.



빛 3: 전등 빛


충격에 빠져있던 그는 긴급센터 동료로부터 자신이 구하고자 했던 여성이 전화로 자신을 급히 찾는다고 전달받았다. 그래서 전화를 받기 위해 전등 빛이 내리는 공간으로 다시 이동해 전화를 받는데, 그는 이 여성 역시 본인의 성급하고 단정적인 판단 때문에 엄청 깊은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자 그는 많은 동료가 지켜보는 가운데 여성에게 내일 있을 재판과 관련된 과거의 사건에 관해 진실 고백을 한다. 그는 고백을 통해 자신의 공권력을 이용해서는 안 될 행동을 저질렀음을 시인하고, 그리고 자신의 불리한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동료 경찰과 증언을 조작했다는 사실도 고백하며 억누르고 있던 다른 대상에 대한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그가 사건을 추적하기 시작했을 때와 달리 현재 공간을 비추는 전등 빛은 그가 그동안 억누르고 있던 죄의식을 비로소 마주했음을 의미한다. 



빛 4: 어둠


사건이 종결되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어두운 복도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시종일관 주인공을 미디엄 숏이나 익스트림 클로즈업 숏으로 담아낸 화면은 이 순간 롱숏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아예 아이룸을 확보하지 않은 채 그림자가 드리운 그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카메라는 아스게르의 내면의 변화를 끝까지 응시할 뿐만 아니라, 관객들 역시 카메라의 시선에 참여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아스게르처럼 편견과 오해로 죄가 없는 사람을 유죄라고 단정한 관객의 태도를 지적한다. 



따라서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의 <더 스퀘어> (2017)는 인간의 위선적이고 모순적인 태도를 스크린 안팎에 걸친 실험으로 폭로한 일종의 실험극인 것처럼, <더 길티> 또한 스크린 밖에 있는 관객을 스크린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일련의 사건에 참여하게 만들고, 결국 어떤 정보를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이를 바탕으로 타인을 판단하는 현대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폭로하는 실험극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해당 글은 아트렉처에 발행하는 글과 동일합니다: https://artlecture.com/event/view?id=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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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8.12.06 (2018 씨네큐브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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