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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Sep 23. 2019

아버지라는 우주에서 벗어나는 여정, <애드 아스트라>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을 받은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영화 <애드 아스트라> (2019)는 외형적으로 무수한 천체를 포함하는 우주를 주된 공간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두 행성의 그림자가 겹쳐져 있다가 서서히 분리되며 독립되는 과정을 묘사한 오프닝 시퀀스를 고려한다면, 이 영화에서 실질적인 우주는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의 차가움을 넘어서서 자기 파괴적인 내면과 그런 내면을 갖게 되는 데 지배적인 영향을 미친 아버지 ‘클리포드 맥브라이드(토미 리 존스)’의 그림자를 형상화한 비유적 우주다. 제임스 그레이 감독은 ‘로이 맥브리이드’가 아버지라는 우주에서 벗어나 ‘나’라는 우주에 정착하는 내면의 여정을 그려냈는데, 이런 점에서 영화 <애드 아스트라>는 인간의 존재론적 질문을 담아낸 스탠리 큐브리 감독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1968), 역사적 비행을 해야만 했던 닐 암스트롱의 내면에 집중한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 <퍼스트 맨> (2018) 등과 같은 영화 분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로이 맥브라이드’는 오래전 우주의 지적 생명체를 찾기 위한 ‘리마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실종된 아버지처럼 영웅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그렇지만, ‘로이 맥브라이드’는 영웅의 전형성과 거리가 대단히 먼 인물이다. ‘로이 맥브라이드’는 인류를 위협하는 ‘써지 현상’을 막기 위한 임무를 망설이지 않고 맡았지만, 주변 인물과 달리 이 임무의 숨겨진 방향과 목적을 아예 모를뿐더러 어떤 일을 겪어도 심박수가 80을 유지한다. 따라서, ‘로이 맥브라이드’는 목적과 방향을 상실한 자기 파괴적인 인물이며 기계와의 소통을 더욱 편안히 느낄 정도로 관계, 소통, 그리고 감정 교류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인물이다. 더 나아가, 현재를 살아가지만, 아버지와의 유년 시절 추억을 자주 떠올리고 실종되기 전 아버지가 남긴 영상을 빈번히 꺼내 보는 장면들은 ‘로이 맥브라이드’의 심장이 아버지에 지배되어 현재의 모습과 결함을 갖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임무를 위해 우주로 떠나게 되면서 ‘로이 맥브라이드’는 일련의 과정을 겪는데, 이는 자기 파괴적인 성향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된다. 영화 초반부 ‘써지 현상’으로 동료를 잃었지만, ‘로이 맥브라이드’는 기이할 정도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슬픔이나 비극을 자각하지 못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로이 맥브라이드’는 원래는 자신을 감시하러 왔지만, 아버지의 실종과 관련된 진실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프루이트(도날드 서덜랜드)’가 달에서 사고를 당하자 이전과 달리 흔들리는 감정을 감지하게 된다. 또한, ‘로이 맥브라이드’는 구조 요청이 들어온 노르웨이 정거장에 들렀다가 심히 격분해 폭력성을 억누르지 못하는 실험용 개코원숭이를 목격하는데, 형용할 수 없지만, 본인 역시 개코원숭이의 분노를 보며 자신의 분노를 인지하기 시작한다. 상대방의 감정을 보며 본인의 감정을 느꼈다는 점은 내면의 변화 조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사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흔들리면서 공교롭게 ‘로이 맥브라이드’는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아를 확립하게 된다. 우선, 혼자 화성으로 이동하기 전, ‘프루이트’가 건네준 기밀 정보가 담긴 이동식 기억장치 덕분에 아버지를 영웅화할 수밖에 없었던 국가적 이유와 이번 임무에 본인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뿐만 아니라, 화성에 도착했을 때 ‘로이 맥브라이드’는 ‘헬렌 란토스(루스 네가)’를 만나는데, ‘헬란 란토스’는 ‘로이 맥브라이드’에게 그의 아버지가 우주의 지적 생명체를 찾아 국가이익에 공헌하겠다는 신념에 사로잡힌 나머지 저지른 비윤리적인 행위를 알려준다. 이를 계기로 ‘로이 맥브라이드’는 아버지와 얽힌 유년 시절의 기억 조각 중 일부가 왜곡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본인은 현재를 살지만, 과거의 아버지가 되어가는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덕분에 아버지와 달리 본인이 사랑했던 아내와의 관계에서 저지른 잘못을 비로소 인정했으며, 일상으로 돌아가 주변 사람에게도 의지하며 활기찬 삶을 다짐한다. 그리고 ‘로이 맥브라이드’의 감정이 깃든 응답과 표정을 담아낸 엔딩은 기계처럼 딱딱했던 응답과 표정을 보여준 오프닝과 대치되는데, 이는 ‘로이 맥브라이드’가 아버지라는 어두운 심연 속에서 드디어 빠져나왔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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