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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Oct 03. 2019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자 완성된 음지에서의 정서적 정화

<조커> (Joker, 2019)


코믹스 영화 최초 제76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안은 토드 필립스 감독의 영화 <조커> (2019)는 무의식에 내재되어 있는 트라우마나 콤플렉스를 밖으로 배설해 정화한다는 카타르시스의 정신분석학적 정의를 ‘조커’ 캐릭터로 풀어낸 작품이다. ‘조커’의 기원은 원작에서 공식화된 탄생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에 토드 필립스 감독은 본인이 생각하는 다면적인 ‘조커’를 구상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불명확성으로 가득한 ‘조커’의 정체성이 자리를 잡고 감정이 정화되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펼쳐낼 수 있었다. 또한, 영화 속 시대적 배경을 코믹스 속 세상에서 벗어나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안팎으로 들끓었던 미국의 상황을 고려해 1981년 고담시로 설정했는데, 이는 ‘조커’로 재탄생하기 전 ‘아서 플렉’과 관련된 설정과 맞물리며 이 영화가 제공하고자 한 카타르시스를 더욱더 극적으로 일으킨다. 



영화 <조커>는 전염병이 창궐하고 공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된 고담시의 상황을 뉴스 매체로 전달하며 시작한다. 이와 같은 상황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과 그의 어머니 ‘페니 플렉(브래트 컬렌)’처럼 사회적 약자를 더 소외시킬뿐더러, 이 상황 자체가 ‘아서 플렉’의 상황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아서 플렉’은 어머니가 붙여 준 ‘해피’라는 이름처럼 세상에 웃음과 기쁨을 줄 수 있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을 꿈꾸며 광대로 벌이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스탠드업 코미디를 진행하는 클럽을 방문한 ‘아서 플렉’이 계속해서 군중이 웃음을 터뜨리는 지점으로부터 엇나가는 지점에서 웃음을 짓는 장면을 고려한다면, 그의 웃음은 어딘가 기괴하다. 게다가, ‘아서 플렉’이 한 번 웃음을 터뜨리면 멈추지 못하고 몇 분 동안 그 상태를 유지하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은 그의 웃음이 성장 과정에서 생긴 트라우마나 콤플렉스에서 기인했다고 유추할 수 있다. 



무엇보다 영화 <조커>에서 가장 중요한 설정은 ‘아서 플렉’이 어머니처럼 망상에 의존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본인이 과거에 ‘토마스 웨인(브래트 컬렌)’과 사랑하는 관계였으며 ‘아서 플렉’이 그의 아들이라는 망상에 집착한다면, ‘아서 플렉’은 두 가지 망상에 젖어 있다. 하나는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 니로)’의 프로그램에 방청객으로 갔다가 우연히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그와 포옹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망상이며, 또 다른 하나는 이웃인 ‘소피 두몬드(재지 비츠)’와 데이트를 하며 호감을 느끼게 되는 망상이다. 전자의 경우 ‘아서 플렉’이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지만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고담시가 힘들어지면서 자신에게 필요한 공공 서비스조차 받지 못한 상황으로 인해 망상에 사로잡혔으며, 후자의 경우 가족이나 동료로부터 느끼지 못한 애정이 망상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와 같은 망상은 ‘아서 플렉’이 무의식적으로 자아를 더 불투명하게 만들었을뿐더러,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비극의 검을 더 깊이 위치시킨다.   



하지만, ‘아서 플렉’은 지금까지 진실이라고 믿었던 어머니의 고백이 망상이었음을 깨닫게 되면서 본인 역시 자기 망상을 자각하게 되며 현실을 깨닫는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시작한 ‘아서 플렉’은 자기 내면으로 향해 있었던 비극의 방향성을 지금까지 타인을 향해 바깥으로 설정되어 있던 웃음과 행복의 방향성과 맞바꾸며 새로운 목표를 설정한다.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된 ‘아서 플렉’은 더는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대신 ‘조커’로 불리기를 바란다. 다시 말하자면, ‘아서 플렉’은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는 삶을 청산하고 ‘조커’라는 정체성을 비로소 확립했다. 이는 이전까지는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유령처럼 오가던 ‘아서 플렉’이 ‘조커’로 재탄생한 후 불편한 걸음걸이 대신 쾌활한 걸음으로 뛰어다니는 장면이 뒷받침한다. 또한, 엔딩 시퀀스는 웃음을 한 번 터뜨리기 시작하면 한동안 멈출 수 없는 질병도 ‘아서 플렉’의 망상이 만들어낸 상상의 질병이었지만, 이제는 ‘조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실질적 웃음으로 승화되었음을 넌지시 드러낸다. 



따라서 영화 <조커>는 ‘아서 플렉’이 ‘조커’가 된 후에도 자신이 뿌리내린 음지에서 벗어나지 않았지만, 자기 자신을 거리 두며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정서적 정화를 해낸 모습을 그려낸 작품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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