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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Mar 22. 2018

치열하게 살아간다, 뜨겁게 사랑한다 <120BPM>

이 사랑의 속도에 뛰는 심장의 소리가 가슴에 새겨질 수밖에 없는 이유


작년에 열린 제70회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120BPM>은 제61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클래스> (2008)의 각본을 맡은 로빈 캉필로가 연출한 작품이다. 사실, 이 영화는 로빈 캉필로 감독이 실제로 '액트업파리'에 참여했기에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 올바름을 내세우는 단체들을 다루는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자연스럽게 <120BPM>에서 의아하게 여겨지는 부분을 찾을 수 있다. 통상적으로 정치적으로 올바름을 요구하는 단체들을 다루는 영화는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정부기관들이 개선될 거라는 기대감을 관객들에게 안기지만, <120BPM>은 그런 기대감을 짓밟는다. 직설적으로 다시 말하자면, <120BPM>은 '액트업파리'의 성공담이 아닌 실패담을 다루는 영화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마음이 뜨거움으로 인해 꿈틀거리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이번 글을 통해 실패담을 전달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심장이 120 BPM으로 뛰는 이유를 찾아보려고 한다.



<120BPM>이 '액트업파리'의 실패담인 이유


1989년 '액트업파리'의 운동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영화 편집과 '액트업파리'에 참여하고 있는 구성원들, 총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우선, <120BPM>의 편집 방법 자체가 '액트업파리'의 상황을 대변한다. 관습적으로 정치적 투쟁을 다루는 영화들은 시위 장면에 상대적으로 더 긴 시간을 할애해서 다룬다. 하지만, 이 영화는 토론하는 장면과 투쟁하는 장면을 뒤죽박죽으로 섞는 편집을 고수한다. 영화는 '액트업파리' 단체 사람들이 회의장에 난입해 가짜 피를 던지고 에이즈 치료제 개발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사실에 대한 소피(아델 하에넬)의 발언으로 시작하지만, 갑자기 세미나에서 토론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토론, 정치적 투쟁, 안건에 관한 찬반 투표, 반성 등이 심리적 효과를 절대로 동반하지 않은 편집으로 인해 동시에 마구 섞이게 되면서 영화는 관객들에게 특정 역사적 사건 및 단체의 끝을 주관적 시각을 최대한 배제한 채 암시한다.



이 영화가 실패담을 전달한다는 또 다른 근거는 '액트업파리'에 소속된 구성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단체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단체 구성원으로는 LGBT, 이성애자, 의료사고로 인한 HIV 양성반응 환자의 부모 등이 있으며, 사실은 모두 다 HIV 양성반응 환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액트업파리' 구성원들 모두가 다 HIV 양성반응 환자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정부기관과 제약회사를 상대로 치열하게 싸운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 간의 균열이 발생하고 점차 심각해진다. HIV 양성반응 환자와 음성 판정을 받은 사람 사이에는 결코 좁힐 수 없는 죽음이라는 극간이 존재한다. 이 단체는 매일 한 사람은 죽어가고 다른 한 사람은 살아가는, 즉 죽음의 그림자가 시종일관 배회하는 상황을 맞이해야 하며 어떠한 동정도 없이 그 상황을 받아들인다. 누군가 죽으면 모든 투쟁은 멈춰야 하지만 '액트업파리' 사람들은 타인보다 나 자신이 살아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로 투쟁을 멈추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투쟁할수록 삶과 죽음 사이의 틈은 좁혀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벌어진다는 점에서 관객들은 '액트업파리'의 성공담이 아닌 실패담을 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속도 '120 BPM'에 심장이 뛰는 이유 1: 교육에서 치환되는 삶의 치열함


<120BPM>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감정을 전달하지 않는 대신, 영화의 절반을 AIDS 관련 지식을 전달하는 데 할애한다. HIV 양성반응 환자들이 복용하는 약이 무엇이고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제약 회사에서 개발 중인 치료제가 무엇인지, 성병 및 AIDS를 예방하기 위한 수칙, 교육부에서 청소년들의 건전한 성생활을 위해 내린 권고가 무엇인지 등 각종 정보들이 쏟아진다. 이와 같은 정보 교육이 진행되는 동시에 토론 교육도 진행된다. '액트업파리' 사람들은 엄격한 몇 가지 규정들을 정립한 뒤 세미나 강의실에서 각종 안건들을 다루고 토론하면서 이 상황을 즐긴다. 언급된 두 가지 교육이 사랑의 속도 '120 BPM'에 우리의 심장이 뛰는 이유와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들이 보여주는 교육은 자신들을 스스로 드러냄으로써 차별받지 않고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 중 한 명으로서 동등한 위치에서 질병을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정부기관에서 소홀히 하는 에이즈 예방 교육을 앞장서서 진행함으로써 다른 사회 구성원의 생존권을 지키는 데  도움을 준다. 결국, 교육을 기반으로 하는 비폭력적인 운동은 삶의 치열함으로 치환되기 때문에 우리의 심장이 120 BPM으로 뛰기 시작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속도 '120 BPM'에 심장이 뛰는 이유 2: 감정과 태도 전달하는 울림


영화의 전반부가 지식 전달에 초점을 둔 이야기를 한다면, 영화의 후반부는 감정과 태도의 전달에 초점을 둔 이야기를 진행한다. 극 중에서 션(나우엘 페레즈 비스카야트)과 나톤(아르노 발로아)은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면서 사랑하는 연인이 된다. 이들의 사랑은 목숨을 건 모험이라고 볼 수 있다. 션처럼 티보(앙투안 라이나르츠)도 HIV 양성반응 환자이지만 죽음이 가져다주는 두려움 때문에 병문안을 갔음에도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션을 절대로 만지지 않는다. 이와 반대로, 나톤은 HIV 양성반응 환자가 아니기에 더더욱 조심해야 하지만 신경 쓰지 않고 션을 간호할뿐더러 그의 몸까지 만져주면서 사랑이 변치 않았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총 세 번의 춤을 추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춤을 추는 장면들이 상징하는 바는 죽음의 그림자가 끊임없이 자신들의 주변을 배회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들이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증명한다는 것이다. 특히, 프라이드 축제에서 치어리딩을 하는 단체 사람들의 모습은 지금 묘사된 상징에서 확장된다. 클럽에서 숨어서 춤을 추는 것과 달리 이들은 낮에 자신들의 에너지를 표출한다. 이 표출은 클럽에서 춤을 추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어딘가에 숨지 않고 정면으로 죽음 앞에서 자신들의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때문에 죽음을 향한 태도가 한 단계 더 발전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투쟁할수록 삶과 죽음 사이의 틈이 오히려 넓어지기 때문에 좌절해도 이상할 게 없다. 하지만, 이들의 위험을 무릅쓴 사랑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되레 즐거워하는 태도는 깊은 여운이 되어 우리를 감싸기 때문에 그들의 심장 소리가 우리의 심장에 전이되었다고 본다.



거듭 말하지만, <120BPM>은 '액트업파리'가 실패했음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이유는 이들이 절대로 침묵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이 혐오의 시선으로 자신들에게 입을 다물라고 무언의 압박을 넣더라도, '액트업파리'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렇게 살아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고 사랑했다. 그랬기에, 로빈 캉필로 감독이 실패담을 들려줬어도 1989년 파리를 쉴 새 없이 돌아다녔던 사랑의 속도가, 그리고 그 속도로 뛰었던 심장의 소리가 오늘날 우리의 마음에 새겨져 지금까지도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관람 인증

1. 2017.11.04 (서울 프라이드 영화제 GV)

2. 2018.03.15 (KT&G 상상마당시네마 굿즈패키지 상영)

3. 2018.03.16 (CGV 라이브러리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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