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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Jul 03. 2018

내 추억이자, 내 경험이자, 내 모습
<너와 극장에서>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이 영화로 답할게요


그동안 많은 사람이 나에게 '영화를 왜 좋아하세요?'와 '요즘은 영화를 집에서도 볼 수 있는데 왜 굳이 극장에 가서 보세요?'라는 질문을 던질 때마다, 두 가지 질문을 동시에 대답할 수 있는 영화가 내 앞에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 혹은 나의 영화적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영화가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열린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내가 그토록 바라던 영화를 만났는데, 그 영화가 바로 개막작이었던 <너와 극장에서> (2017)이다. <너와 극장에서>는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고, 각 에피소드는 대구에 위치한 '오오극장', 서울 압구정에 위치한 '이봄씨어터', 그리고 서울 종로 3가에 위치한 '서울아트시네마' 극장을 담아낸다. 세 개의 에피소드는 '극장 쪽으로', '극장에서 한 생각', 그리고 '우리들의 낙원'이라는 제목을 갖는데, 각 에피소드는 내 추억, 나의 직간접적인 경험, 내 모습을 재연하는 듯한 행복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너와 극장에서>를 만나서 기쁘고, 행복하고, 감사하다.



'극장 쪽으로'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온 선미(김예은)는 더위와 단조로운 일상으로 인해 자기도 모르게 심신이 지쳐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받은 '극장에서 만나자'라는 쪽지에 선미는 혹시나 모르는 기대를 안고 '오오극장'으로 향한다. 극장에서 쪽지를 건넨 사람을 만날지 모른다는 설렘과 처음 가보는 극장이어서 길을 잃고 헤매다 보니 일어나는 짜증과 초조함이 묘사된다. '오오극장'을 가본 적이 없지만 이와 비슷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2014)와 <한공주> (2013)를 보기 위해 '에무시네마'를 처음 방문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운명적인 만남을 기대한 적은 없지만 처음 가보는 극장을 간다는 사실과 보고 싶었던 영화를 드디어 극장에서 본다는 사실 때문에 느낀 설렘이 선미의 설렘과 연결되었고, 골목 어딘가에 위치한 '에무시네마'를 찾지 못하고 땡볕 아래에서 더위 때문에 짜증 냈던 모습이 골목에서 길을 잃은 선미의 모습과 통했다. 이렇게 극장 쪽으로 걸어갈 때 느낄 수 있는 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 모두 결국 바쁜 와중에도 극장으로 걸음을 옮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를 유독 좋아하는 이유는 근원은 다르지만 초조함과 불안감을 느낀다는 측면에서 골목에서 길을 걷는 선미의 모습이 아녜스 바르다 감독이 연출한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1962)에서 클레오가 거리를 걷는 이미지가 겹치기 때문이다. 이것도 영화와 극장이 없었다면 쌓을 수 없는 영화적 추억이지 아닐까 싶다.



'극장에서 한 생각'


<내가 어때섷ㅎㅎ> (2015), <처음> (2015), <비치온더비치> (2016), <밤치기> (2017) 등을 연출한 정가영 감독이 연출한 '극장에서 한 생각'은 극장에서 혹은 GV현장에서 할 수 있는 영화감독만의 상상을 그려낸다. 가영(이태경)이 영화 상영 후 진행되는 GV에서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 내뱉는 말들은 엉큼하면서도 어둠의 경로를 통해 영화를 감상하는 비율이 증가하는 현실을 저격하기 때문에 쓸쓸함을 남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가 나의 직간접적인 경험 그 자체이기도 하다. 영화감독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관객이지만 시네마톡이나 GV 이벤트에서 가끔 질문을 던지는데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가영의 모습이 두서없이 질문하는 내 모습을 떠올리게 했을 뿐만 아니라, 가영과 어느 한 관객 사이에 흐르는 냉기가 어쩌다 한 번 아트나인에서 목격했던 질문자와 평론가 사이에 흐르는 냉기를 소환시켰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태경 배우가 가영이라는 인물을 연기해서 그런지, 정가영 감독을 스크린 앞에서 직접 만나는 듯한 착각도 하게 된다. 그래서, '극장에서 한 생각'은 이런 착각과 경험은 극장에 가지 않았다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고 쌓을 수도 없음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다. 



'우리들의 낙원'


김진태 감독이 연출한 '우리들의 낙원'은 연락이 닿지 않는 민철(오동민)을 찾기 위해 서울아트시네마까지 오게 된 은정(박현영)의 하루를 이야기하는 에피소드다. 민철에게 받아야 하는 문서가 있는 은정은 우여곡절 끝에 민철을 만나지만, 놀란 민철이 갑자기 극장에서 도망쳐 나오는 바람에 가방을 두고 나왔다. 그래서 두 사람은 다시 서울아트시네마 안으로 들어가는데, 한 관객이 영화 상영이 시작했으니 앉아달라고 부탁해 둘은 어쩔 수 없이 착석했다. 근데, 은정은 자기도 모르게 스크린에 빠져든다. 김진태 감독이 극장을 낙원이라고 비유한 게 대단히 좋았다. 생각보다 멀지 않은 거리에 극장에 있음에도 바쁘다 보니 자주 가지 못하는 곳이 극장이다. 하지만, 학업에 매진하면서, 아르바이트하면서, 혹은 직장 다니면서 쌓인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아늑한 극장에 가서 한 편의 영화를 몰입해서 보다 보면 잠깐이나마 잊거나 해소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에 빠져든 민철과 은정의 모습은 곧 아트나인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있는 내 모습이어서, 이 에피소드는 내 모습 그 자체를 설명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너와 극장에서>는 연출 기법을 중심으로 장면 하나하나를 분석할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게 되는 영화다. 이번 <너와 극장에서>라는 영화를 통해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와 웬만해선 아트나인의 영화관주의(映畵館主義)를 지키려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언젠가는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영화 한 편도 만날 수 있기를 몹시 기대한다. 참고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극장은 이수역에 위치한 아트나인이다.




관람 인증

1. 2017.12.06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

2. 2018.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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