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의 밤
무언가를 욕망하는 건 어쩌면 인간에게 너무나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린 “욕망”하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을 더 많이 생각한다.
사랑, 산소, 물 같은 것들은 긍정적으로 보면서 왜 하필 욕망만은 부정적으로 바라볼까.
아마 욕망은 욕망 자체로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원하면 그 마음은 점점 커진다.
심지어 원하는 것을 손 안에 넣게 되더라도 그 마음은 충족되지 않고 더 큰 걸 원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그런 마음은 나쁜 게 아니다.
성공을 해도 더 큰 성공을 원하는 마음은 사실 문명의 발달에서 매우 큰 원동력으로 작동했다.
하지만 그 마음이 부정적인 취급을 받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타인의 고통을 수반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영화 <사냥꾼의 밤>은 그런 인간의 병든 마음을 제대로 그려낸 수작이다.
무려 1955년에 개봉한 이 작품은 해리 파웰이라는 무시무시한 악당을 낳은 영화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의 큰 줄기는 어린 아이들인 존과 펄이 죽은 아버지가 체포 직전 숨기라고 준 돈을 그의 감방 동기인 해리가 훔치러 오자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내용이다.
얼핏 보면 영화는 해리가 두 아이를 쫓는 단순한 구조이지만 감독은 명암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지고 놀면서 영화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악역인 해리를 상징하는 건 당연히 어둠이다.
해리가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접근할 때 그는 실물이 아닌 그림자로서 등장한다.
본심이 드러나는 모든 장면은 그의 얼굴이 어둠 속에 담긴 것으로 연출되고 있다.
숨겨진 돈을 얻기 위해 아이들의 어머니를 유혹하고 결혼하게 되는데, 첫날 밤 그녀는 불빛을 끄고 어둠으로 들어간다.
빛으로 가득해야 할 결혼생활이 어둠으로 시작되는 기이한 모습이다.
그 시퀀스에서 해리는 관계를 은근히 원하는 그녀를 질책하며 설교를 한다.
당연히 그런 그의 언행은 가식이고 기만일 뿐이다.
영화는 그런 그의 거짓이 등장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빛속에 넣는다.
그리고 그런 그의 거짓된 모습이 나오는 순간들이 그의 본성이 터져나올 때보다 더 소름 끼친다.
마치 어둠은 빛으로 가장하여 다가올 때가 더 섬뜩하다는 걸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당연히 그가 그녀에게 설교할 때 그는 어둠 속에서 불빛을 켠다.
그리고 설교가 끝나면 전구를 끄고 어둠으로 들어간다.
마찬가지로 펄에게 환심을 살 때 해리는 빛을 받으며 그녀와 대화한다.
아이들의 어머니를 죽이는 장면에서도 그 매커니즘은 유효하다.
그녀가 그의 본심을 알아차리자 그는 그녀를 죽이려한다.
그의 진짜 표정이 일그러지며 등장할 때 그는 어둠 속에 존재한다.
칼을 꺼내고 다가갈 때 역시 마찬가지다.
칼을 숨기고 그녀에게 다가갈 때 다시 빛으로 들어가지만, 이내 본심을 보이며 칼을 집어올릴 때 다시 어둠 속에 들어간다.
이렇게 어둠은 교활하게 사람들을 잠식해간다.
영화 처음 보름달이었던 달은 해리가 득세하자 어둠에 잡아먹혀 초승달로 변한다.
영화를 보면 해리라는 악이 패배하고, 존과 펄이라는 선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영화의 절정부 해리가 체포될 때 존이 돌연 체포하지 말라고 경찰들에게 애원하는 장면이 나온다.
위의 공식에 대입하면 이상한 행동이다.
사실 우리가 존과 펄이 가진 돈의 정치를 간과한 부분이 있다.
그 돈은 두 아이의 아버지가 은행에서 턴 돈이다.
즉, 그렇게 두 아이가 지키려 한 돈 역시 악의 결과인 것이다.
해리는 교수형을 당한 아버지의 자리를 대체하고, 손에 든 무기만 다를 뿐 체포당하는 모습조차 똑같은 구도로 체포당한다.
완전히 달라 보이는 그 둘이 사실은 같은 인물임을 영화가 은근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사실 두 아이 역시 어둠 속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잠을 자는 방에서 그들은 어둠 속에 있고, 결정적으로 해리로부터 숨는 장소는 어두운 지하창고다.
결국 더러운 돈을 가진 둘 역시 해리와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영화가 이 둘을 악인으로 그리고 싶은 생각은 없어 보인다.
다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욕망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영화가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이다.
존과 펄은 끝내 그 인형에 숨긴 돈을 포기함으로서 진정한 해피엔딩에 이른다.
결국 인간을 파멸시키는 건 그릇된 욕망이다.
그걸 내던지는 순간 인간은 구원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절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렇기에 전체적인 완성도가 준수함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결말이 지나치게 순수해보이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