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을 위한 식탁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알고보면 상대의 몸을 옭매이고 조아버리는 일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어머니는 딸의 거식증세를 고쳐야 하는 병이라고 바라보았고, 딸은 유일하게 자신이 자유롭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시위와도 같은 것이었다. 이 둘의 간격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는다.
얼핏 이 영화의 구성은 박채영씨가 자신의 거식증과 폭식증을 이겨내고 자신의 어머니와 화해하게 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영화 중반 어머니가 호주로 떠나는 딸을 안으면서 “아프지만 마”라고 읊조리고 딸이 함께 눈물을 훔치는 장면은 마치 쌓인 앙금이 모두 해소되는 카타르시스도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영화 중후반 어머니는 호프집에서 타로카드를 꺼낸다. 대치하고 있는 두 병사. 딸과 화해한 줄 알았던 어머니는 당황한다. “그럼 아직도 내 딸이랑 풀린 게 아닌 거야?“ 사실 그 카드 뒷면에는 그림의 진실이 있다. 그 병사 둘의 뒤에는 화산이 폭발하고 있다. 화산 쪽으로 바라보는 병사는 화산을 향해 무기를 들고 있던 것이고, 화산을 등지고 있는 병사는 그걸 오인하여 무기를 든 상대에게 공격자세를 취한 것이다. 즉, 한 쪽은 상황을 제대로 보고 있고 한 쪽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는 말한다. ”그럼 (화산을 보고 있는 병사)얘가 나네?“ 과연 그랬을까.
각자의 입장에서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딸은 딸대로 어머니에게 앙금이 쌓여있고,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딸에게 상처를 받았다. 이 문제들을 마주하면서 각자는 상처를 주고 입은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되었다. 각자는 스스로가 제대로 보고 있다고 느끼겠지만 어쩌면 둘 모두가 화산을 등진 병사일테다.
영화의 결말부 아름다운 산을 배경삼아 정갈하게 이루어지는 제사상을 먹는 모녀의 모습은 정말 얼어있는 호수에 돌을 던지듯 불안이 튀어나온다.
-시골이 싫어?
-아니 무주가 싫어
-왜, 여기 내가 있는데?
-그래서 싫어.
-...그럼 우리는 계속 평행선처럼 가는 거네
-...
-...
-...그래도 평행선은 같이 가는 거야
우리가 생각하는 화해는 상업영화들이 만들어낸 지독한 환상일지도 모른다. 그 간격이 메워지기에는 너무나 깊고, 어쩌면 이 둘에게도 아직은 시간이 덜 무르익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간격이 마치 <그래비티> 속 스톤과 코왈스키를 잇는 선처럼 멀리 발산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를 끌어당기고 있다. 이 간격은 그렇게 서로를 잡아주는 든든한 중력이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