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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비선비 Aug 29. 2021

비자발적 관짝격리

영화 <베리드(2010)>

*영화 <베리드>(2010)의 결말 및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한된 장소를 소재로 만들어진 훌륭한 영화들이 많다. 90년대 후반에 제작되어 수많은 작품에 영향을 끼친 '큐브'는 밀실의 공포가 두드러진다. 조엘 슈마허 감독의 '폰 부스'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전화를 끊지도, 맘대로 나가지도 못하는 주인공의 상황을 전제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앞선 두 영화는 장소의 제한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 동시에 정반대의 특성을 갖는데, '큐브'는 밀실의 공포에서도 퍼즐을 풀며 나아갈 '이동의 자유'가 주어지지만, 반대로 '폰 부스'는 시야가 완전히 트인 뉴욕 거리 한복판에서 협박범의 전화를 끊을 수 없어 생기는 이동의 제한을 겪는다.


 만약 이 두 영화의 조건을 섞어 논다면 어떨까? 큐브와 같은 완전한 밀실인 동시에 협박범에게 전화로 조종당하며 상황을 풀어갈 기회 조차 주어지지 않는, 놀랍게도 '베리드'는 큐브보다 더욱 협소한 장소, 폰 부스보다 더욱 말이 안 통하는 협박범을 상대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처음 베리드의 영화 줄거리를 읽고 든 생각은, '과연 이걸로 영화가 될까?' 하는 우려였다. 90분이 넘는 러닝타임을, 몸 하나 겨우 뉘일 공간에서 다 풀어내는 건 불가능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영화의 중반부부터는 탈출 이후의 상황을 다룰 것이란 예상을 깨고, 이야기는 놀랍게도 관에 갇힌 트럭기사 '콘로이'의 전화 통화로 시작과 끝을 맺는다.


 아무리 공간의 제약으로 인한 답답함을 관객들로 하여금 간접적으로 느끼게 할 지라도 선을 지키지 못하면 상당히 불쾌하게 다가올 가능성이 큰데, 베리드는 끝까지 몰입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주인공이 느낄 무력감을 잘 전달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물론 FBI나 국가 기관, 지인들, 인질범과의 통화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물론 가장 중요했지만, 관에 갇힌 콘로이의 모습을 클로즈업, 익스트림 클로즈업, 풀샷으로 다양하게 보여주며 그가 느낄 심리적 압박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한 것이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관에 갇힌 콘로이의 모습을 멀찍이서 작아 보이게 잡는 샷은 관객에게는 답답함을 잠시나마 환기하는 동시에, 갇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주인공의 무력감을 잘 표현한 장면으로 꼽을 수 있다.




 베리드는 적은 제작비로 관객들의 상상력을 최대치로 활용한 초 가성비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목소리 출연을 제외하면 배우도 라이언 레이놀즈 단 한 명만 얼굴을 비출 뿐이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라이언 레이놀즈의 중간중간 등장하는 코믹 연기가 큰 매력을 갖는 동시에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는 것? 그 외에는 단점을 찾을 수 없는 영화였다.


 10년이 지난 영화이지만 요즘 시국과도 묘하게 어울리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을 제외하고 현재 많은 나라들이 코로나로 인해 병상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많은 환자들이 집에 격리당한 채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들은 베리드의 주인공 콘로이처럼 뜻하지 않은 불행과 마주쳐 차갑고 냉정한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콘로이를 끝내 구출해내지 못한 미군은 분명 그러한 결말을 의도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쓸쓸한 결말을 맞이하는 콘로이의 입장에선 극렬한 배신감과 원망이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코로나로 인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입고 있는 인류에게 와닿는 감정일 거라 생각한다.


 거대한 재앙 속에 한낱 인간은 얼마나 작고 무력한 존재인가? 스마트폰으로 뉴스라도 읽고 누군가와 소통할 수라도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려나.

관에 갇혀 세상과 연락하는 콘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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