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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송 Nov 23. 2021

그 드라마의 시점 충돌

드라마 <하이바이, 마마!>

일각에서는 <하이바이,마마!>가 기획의도에서 벗어났다고 하지만 나는 기획의도에는 매우 충실했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차유리(김태희)가 다시 죽게 되는 결말은 기획의도와 제목부터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 ‘기적 같은 일이 축복이기만 한 것인지’란 의문 제기와 ‘삶과 죽음, 이 거스를 수 없는 순리와 상실이 전하는 메시지’란 기획의도의 문장들 그리고 ‘안녕, 엄마’라는 모호한 제목이 아닌 ‘바이’라는 작별 인사가 명확하게 들어간 제목임을 생각해보면 드라마는 뚝심 있게 처음부터 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해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일관된 메시지를 전하였음에도 왜 많은 시청자들이 전개 과정과 결말에 의문을 품은 것일까? 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시점과 실제 드라마의 시점 사이의 괴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획의도는 갑자기 돌아온 유리를 맞이하게 되는 당황스러운 사람들, 즉 조강화(이규형)의 시점에서 쓰였다. 당연하다. 가족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고 그들에게 위로를 주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드라마는 어떠한가. 초반 내레이션의 주인공은 유리이며 철저히 유리의 시선으로 드라마는 진행된다. 거기에 김태희란 스타 파워까지 더해졌으니 시청자들은 완전히 유리에게 감정이입할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은 유리가 강화-민정 부부 사이에서 겉돌다 결국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유리의 시점을 유지하면서도 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는 기존 설정과 반대로 49일 만에 다시 죽어야 한다는 제약을 주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49일 만에 영영 죽어야 하는 상황에서 귀신에서 다시 육신을 얻은 유리가 가족들 곁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차라리 인간적(?)이다.

자신의 원래 자리를 되찾으려고 노력하는 메인 스토리가 진행되다가 결국 남겨진 사람들과 제대로 된 인사를 하고 간다는 방향으로 변했으면 어떨까. 딸이 귀신을 보게 할 수 없어 생을 포기하고 떠난다는 외적 이유보다 유리 스스로가 49일이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위해 하늘에서 준 선물임을 깨닫고 떠난다는 내적 이유가 더 받아들이기 쉬울 것이다. 기획의도에까지 귀신들이 따뜻하다고 언급했음에도 딸이 귀신을 보는 것에 대해 심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아이러니함도 막을 수 있고 착한 드라마에 유독 튀는, 굳이 갈등을 위해 쓰이는 소모적인 저승사자와 같은 캐릭터도 필요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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