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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Jan 10. 2017

나쁜 것들에 대한 고찰

필립 지앙 <나쁜 것들> 리뷰

 ‘일반적이다’라는 말은 개별 사례의 고유성을 뭉뚱그려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범위 안에 구겨 넣음으로써 그 의미를 규격화시킨다. 그 오차범위에 절대적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음에도 ‘일반적임’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행동양식을 규정하는데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나쁜 것들’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들은 일반적이라는 범주 외부에서 존재한다. 마약, 불륜, 살인, 그리고 용서받을 수 없는 거짓말들. 이 단어들 없이 소설은 전개되지 않는다. 인간들의 삶에 정도(定道)는 없지만 인간들은 모두 그 사회에서 통용되는 도덕, 가치관의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나쁜 것들’의 인물들은 일반적인 범주를 탈피한 세상에서 존재한다. 

이해할 수 없는 나쁜 것들. 그것은 어느 순간 나의 삶 역시 나쁜 것들로 점철된 것은 아니었는지 고민하게 한다.

 객관적인 척 상황을 바라보는 주인공 프랑시스 역시 작가가 설정한 비정상적 인물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프랑시스야말로 그 탈(脫) 범주를 가장한 세상의 핵심이다. 소설을 쓰는 행위를 엄폐호라고 말하며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격리하려 애쓰지만 끊임없이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소외당할까 두려워한다. 질척거리는 내면의 이중성. 사랑과 분노가 한데 얽히고 동정과 멸시가 공존하는 그 내면에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 질척대는 내면을 타이핑을 치며 벗어나려는 노인의 발버둥은 소설가의 광기라고 해석해야 하나.

 10년 전, 불의의 사고로 아내와 첫째 딸을 잃고 발간한 소설의 성공 이후 프랑시스는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10년 후 둘째 딸 알리스의 실종사건의 진실과 아내 쥐디트와의 이별 후 다시금 소설을 쓴다. 그 10년. 마치, 윤회처럼 모든 죄악과 죄책감은 돌고 돌았다. 알리스가 프랑시스를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했던 것처럼 프랑시스는 알리스를 이해하지 못하고 밀어냈다. 프랑시스의 남성성을 부정하고 불륜을 저질러온 쥐디트는 눈앞에서 잠자리 상대였던 제레미의 자살을 목도한다.

 이른바 나쁜 것들은 돌고 돌아 타자를 나쁜 것들이라 칭하던 자신들마저 어느 순간 자신도 타자에게 ‘나쁜 것들’이 되는 삶을 저질렀다. 정상은 없다. 프랑시스를 중심으로 알리스의 자작극을 중심을 얽힌 로제, 알리스, 쥐디트와의 관계, 쥐디트의 불륜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쥐디트, 제레미와의 관계, 동성애자인 어머니를 혐오하고 죽음을 방치하는 제레미, 안 마르와의 관계. 그 모든 관계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점철됐다. 

 일련의 사건들이 프랑시스를 덮칠 때, 오히려 프랑시스의 타이핑은 활기를 띠고 거세진다. 어쩌면 프랑시스는 그를 둘러싼 비정상적인 상황을 비난하고 역겨워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오히려 소설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그 사건들을 반기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모순 그 자체였다. 10년 전, 불의의 사고로 절필을 선언했던 그에게 사고들만이 소설을 쓰게 하는 것이었다. 그 팽팽한 모순의 긴장감. 

 세상과의 단절과 절필 그리고 세상 세상과의 연결과 소설은 서로 양립할 수 없도록 팽팽하게 긴장감을 유지하다가 그 광기와 내부의 분열을 프랑시스에게 쏟아부어버린다. 그러면 사고들에 휘말려 지칠 대로 지친 프랑시스는 소설을 자신의 세계에 한 글자, 한 글자씩 새겨 넣는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를 둘러싼 세상이라는 서재에 한 권의 모순을 꽂아 넣으며 더 혼란스러운 내부 분열의 세계로 그를 인도한다.

 다시금 질척거리는 세상. 나쁜 것들은 프랑시스의 내부일까, 프랑시스를 둘러싼 세상일까. 과연 무엇이 나쁜 것들일까. 프랑시스의 비정상적인 행위와 자기모순이 그를 둘러싼 세상을 휘저어 놓은 것일까, 프랑시스를 둘러싼 세상이 그의 내부를 어지럽혀 놓은 것일까. 아니면 그를 비롯한 소설 속의 인물들에게 나는 내적 갈등과 모순, 타락의 욕망이 없는 척 깔끔하게 그들을 감히 악(惡)이라 규정하는 나의 생각이 나쁜 것일까. 나쁜 것들은 내가 감히 알 수 없이 나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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