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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May 10. 2018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시음 후기

깊이 퍼지지 못하고 흩어지는 바디감. 그럼에도 향은 남는다. 

제목: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2017 作)

감독: 세드릭 클라피쉬

출연: 피오 마르마이(장 役), 아나 지라르도(줄리엣 役), 프랑수아 시빌(제레미 役)

#1시간 53분 #와인 #프랑스판 <리틀 포레스트>? #힐링 


 와인 같은 영화다. 떨떠름한 맛을 참아내고 나서야 비로소 향이 올라온다. 향이 오래도록 남지 못하고 흩어진 것은 아쉬웠으나 그럼에도 한 번쯤은 시음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 프랑스판 <리틀 포레스트>로도 불리는데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주인공이 고향으로 돌아와 자연에 동화됨으로써 평안함을 되찾는 과정을 담았다는 점에서 두 작품은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나 기승전결과 서사적 교훈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 <리틀 포레스트>와 달리,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서사에 대한 욕심을 끝까지 놓지 못한다.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힐링을 빙자한 삼 남매의 성장극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와이너리(와인 양조장)를 공동 소유하게 된 삼 남매는 그들만의 힘으로 와인을 양조해야만 한다. 그렇게 사계절이다. 포도를 수확하고, 즙을 내고, 발효를 기다리고, 다음 해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들이 스크린 속에서 천천히 익어간다.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이 꽤나 감각적이다. 인물들이 포도나 와인을 음미할 때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입술을 강조한다거나, 포도를 발로 압착할 때 느린 호흡으로 발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집중한다는 식이다. 


<리틀 포레스트>가 꾸밈 없는 힐링극이라면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나름 꾸며진 힐링극이라고 할 수 있다.


 삼 남매의 고민 역시 와인과 함께 숙성된다. 감독은 이들이 가진 고민을 철저하게 해체한 후, 각 인물별로 갈등 과정을 거치게 해서 기어코 극복시킨다. 마치, 도장깨기처럼 한 인물의 고민을 해결하고 나면 다음 인물의 고민을 해결하는 식이다. 삼 남매의 고민 해결 과정은 관객들에게 기계적으로 일종의 교훈을 전한다. 오해를 걷어내고 상대방의 진심을 바라볼 것, 주늑들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낼 것, 자신감을 갖고 거침없이 도전할 것. 그러나 감동의 밀도는 감독이 바랬던 것만큼 높지 않았다. 평범한 교훈을 인위적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영화 초중반 동안 진행되는 와인 양조 과정 파트와 영화 중후반 동안 진행되는 삼 남매의 고민 해결 파트 사이에서 발생하는 괴리감이 좀처럼 극복되지 않는다. 스토리의 호흡 자체가 달라진다. 와인 양조 과정 파트에는 기본적으로 여백이 많다. 서사보다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 인물들의 사소한 행동에 집중한다. 따라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유머러스한 씬이나 음악과 몸짓만으로 구성되는 씬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생긴다. 거기에 더해 부르고뉴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익스트림 롱샷도 자주 보여줌으로써 시각적 편안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분명한 건, 우리 모두는 저마다 말 못할 고민을 갖고 있으며 위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감독은 깊이 있는 향을 원한 것 같았지만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겠다는 욕심을 덜어내지 못한 까닭에 의도했던 충분한 깊이에 도달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럼에도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의 서사를 통해 새삼 느끼는 것이 한 가지 있다. 같은 와이너리에서 양조된 와인일지라도 연도에 따라 풍미가 다르듯 사람들 역시 비슷한 환경에서 살았을지라도 각자 말 못 할 고민 하나쯤은 안고 산다는 거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고민을 숙성시킬 수 있는 저마다의 '부르고뉴'가 필요하다는 것도.

 몇 가지 결점이 존재했지만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관객들을 힐링시키겠다는 본연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낸다. 가파른 기승전결에 온갖 신파를 뒤집어 씌운 영화들이 쏟아지는 지금,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에서 드러나는 서사의 욕심은 약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또한, 경건할 줄 알았으나 경쾌함에 가까운 영화 분위기와 프랑스 영화 특유의 오버톤은 나름의 케미를 이루며 예상외의 산뜻함을 선물한다. 이유 없이 지친다고 느끼는 당신에게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한잔을 건네본다.   


리뷰 원본 http://www.lunarglobalstar.com/news/articleView.html?idxno=18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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