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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May 10. 2018

<라이크 크레이지> 순간을 사랑하는 우리에게

사랑에 빠지는 모든 순간은 아름답다

제목: 라이크 크레이지

감독: 드레이크 도리머스

출연: 안톤 옐친(제이콥 役), 펠리시티 존스(애나 役), 제니퍼 로렌스(샘 役), 찰리 뷰리(사이먼 役)

#1시간 30분 #장거리 연애 #영원한 건 없지만 #유통기한


*해당 리뷰는 [브런치 무비 패스]의 지원으로 시사회에 참석하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랑에 빠지는 모든 순간은 아름답다.  그 사람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세상은 행복으로 물든다. Like Crazy. 마치, 영화의 제목처럼 미친 듯이 그 사람에게 빠져들게 된다. 그러나 모든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존재한다. 시들고, 상한다. 뒤처리는 사랑에 빠진 순간과는 달리 구질구질하다. 오랜 시간 동안 뒤섞여서 분리수거조차 쉽지 않다. 그래서 이미 상했음에도 모르는 척, 방치하고 썩혀두는 연인들도 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 <라이크 크레이지>는 상해버린 사랑을 간직하고 살아가는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영국에서 LA로 유학을 온 애나는 같은 수업을 듣는 제이콥과 사랑에 빠진다. 영화는 이들이 애초에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을 전제로 시작한다. 두 사람은 영화 시작 10분도 되지 않아 서로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연인이 된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애나는 비자 기한을 넘기면서까지 LA에 머무르며 제이콥과 함께한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애나가 체류 기간을 넘긴 죄로 LA에 있을 수 없게 됨에 따라 두 사람은 졸지에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된다. 벌어진 거리만큼 두 사람의 마음 역시 서서히 벌어진다. 영화 시작 25분 만의 일이었다.


시작하는 순간에 한해서 모든 사랑은 아름답다.


 'Like Crazy'는 영화 초반, 제이콥이 애나에게 선물한 의자 한켠에 새겨진 문구다. '나는 너에게 미친 듯이 사랑에 빠졌어' 혹은 '너와 미친 듯이 사랑하겠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라이크 크레이지>는 제목과는 전혀 다른 서사를 취한다. 미친 듯이 사랑에 빠지고 난 이후에 두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사랑의 무게를 다룬다. 그것은 감정이라기보다 책임에 가깝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사랑한다. 그것이 넌센스다. 사랑하면서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이제는 미친 듯이 사랑에 빠졌던 순간이 올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두 사람은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서로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외로움을 메운다. 두 사람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자신 역시 저지른 일이면서도 상대방이 다른 사람과 함께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이러니는 애나와 제이콥은 함께 있을 때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서로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더 이상 같은 밀도로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공허감은 어떠한 관계로도 채워지지 않았다. 두 사람이 느끼는 이러한 상실감은 영화적 기법을 통해서도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처음과 같은 밀도로 사랑이 이어질 수는 없다.

 

 두 사람이 한창 사랑에 빠진 영화의 초반, 두 사람이 서로에게 꼭 붙어 해변을 걷는 씬이 있다. 사랑이 식어버린 영화의 중반, 같은 구도로 해변 씬이 연출되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 가되 약간의 거리를 둔다. 두 사람 사이에 벌어진 마음의 거리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결혼식 씬에서 역시 두 사람은 시종일관 어색한 미소로 서로를 바라본다. 촬영 기법도 상황 전체를 조명하는 '롱 샷'과 피사체의 시선을 거치는 것이 아닌 카메라에서 바로 뻗어나가는 방식의 '클로즈업'을 사용했다.

 

 이와 같은 기법은 관객이 두 사람에 대한 감정이입하게 되는 것을 막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하게 함으로써 끊임없이 제이콥과 애나의 '관계의 위태로움'을 자각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라이크 크레이지>의 촬영 기법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거칠게 흔들리는 앵글'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기법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씬에만 한정해서 이뤄진다.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고 어지러워 보이는 앵글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한없이 위태로워 보인다. 그럼에도 영화는 끝끝내 두 사람을 자석처럼 붙여놓는다. '한때 내가 미친 듯이 사랑했던 사람이었으니까'라는 인력과 '더 이상 이 사람에게 전과 같은 사랑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아'라는 척력은 같은 밀로로 부딪치며 끊임없이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두 사람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엔딩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미국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제이콥에게 찾아 간 애나. 두 사람은 함께 샤워를 한다. 적막과 공허함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이라고 하고 싶은 듯, 상대방을 꼭 끌어안는다. 그 순간, 두 사람은 서로가 사랑했던 지난날들을 생각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눈 빛은 여전히 공허하다. 두 사람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과거의 감정들에 대한 책임감과 믿음마저 옅어버리고 나면 과연 두 사람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어쩌면 <라이크 크레이지>는 사랑에 관한 가장 우울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음울한 측면만 지나치게 부각된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져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씬들은 재빨리 스쳐 지나가는 슬라이드나, 연속성 없는 특정 장면의 짜깁기로 표현된 것이 전부였다. 감독은 시간의 변화 앞에 사랑이 얼마나 유약한지에 대해 다뤘다. 유독 차가운 화면 온도와 적막한 화면 구성은 감독이 표현하고자 하는 사랑의 특징을 시각적으로 충실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영화의 스토리텔링 자체는 미적지근했으나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만큼은 생생하게 남는 작품이었다.

 미친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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