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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vie Street Sep 21. 2018

크리스토퍼 놀란 다시 보기#3: 덩케르크

이 영화는 그 누구도 아닌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제목: 덩케르크(2017 作)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핀 화이트 헤드, 마크 라이런스,  톰 하디, 톰 글린 카니, 배리 케오간

#1시간 46분 #실화 #다이나모 작전 #세계 2차 대전 #공동 #연대 #생존 #희생 #전쟁  


 놀란 감독은 장르와 주제의식 사이에 정확하게 선을 그어 작품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만드는데 도가 튼 감독이다. 장르마다 고유의 정서적, 서사적 특색이 다르기 마련인데 놀란 감독은 장르의 특색을 최대한 살리면서 자연스럽게 작품의 주제의식을 뒷받침한다. '크리스토퍼 놀란 다시보기 #2: <인터스텔라>'를 떠올려보자. <인터스텔라>는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라는 장르적 특성을 딛고 '가족애'로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 <덩케르크>는 (실화를 배경으로 한)전쟁이라는 장르적 특성을 딛고 '공동의 생존'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우연'에 생존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병사들의 공포가 작품 속에 그대로 반영된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덩케르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프랑스 북부의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연합군 33여만 명을 일주일 안에 기적적으로 영국 본토로 철수시킨 '다이나모 작전'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당시 덩케르크에서는 큰 접전이 벌어지지 않았고 놀란 감독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가감 없이 영화에 투영했기에 <덩케르크>는 전쟁 영화면서도 이례적으로 대규모 전투가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상에 등장하는 독일군의 최대 전력은 폭격기 3대. 연합군의 전력도 마찬가지다.

 놀란 감독은 전쟁 영화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요건만으로 인물들이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공포를 이끌어 낸다. 폭격기 3대만으로는 덩케르크에 있는 연합군 전원을 몰살시킬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폭격은 구조함과 해안가를 가리지 않고 무작위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연합군 전원의 생명을 시종일관 위협하는 일종의 영화적 장치가 된다. 작품 속에서 생존과 죽음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는 '우연'이다. 우연을 기반으로 한 죽음에 대한 공포는 연합군 전원에게 동등하게 주어지고 생존에 대한 본능은 이들 전부를 포괄하는 공통분모가 된다.  

 영화가 지향하는 바가 '승리'가 아닌 '생존'이라는 점에서 <덩케르크>는 전쟁 영화보다 서바이벌 영화에 가깝다. 생존과 죽음의 경계선 위에 연합군 전원은 '무력한 하나의 생명'이라는 점에서 절대적으로 평등하다. 놀란 감독은 이러한 영화적 전제를 인물 설정을 통해 확립한다. 메인 캐릭터 중 한 명으로 등장하는 병사는 한 번도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이는 그에게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부여되지 않았다는 맥락으로 읽어낼 수 있다. 그는 우연에 의해 생존과 죽음이 결정되는 덩케르크의 수많은 병사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불리지 못한 메인 캐릭터의 이름은 결국, 덩케르크에 고립된 수많은 병사들의 이름인 셈이다. 그들 중 누구의 이름을 메인 캐릭터에 대입해도 영화는 성립한다. <덩케르크>는 잔혹한 역사에 자신의 생명을 저당 잡힌 수많은 병사들의 이야기다. 우리는 이러한 작품 속 캐릭터 설정을 통해 놀란 감독이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을 유추해낼 수 있다. <덩케르크>의 주인공은 다이나모 작전을 이끈 처칠 수상도 아니고, 덩케르크에서 작전을 지휘한 지휘관도 아니다. 그에게 역사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로 이들의 연대와 희생을 동력으로 나아간다.


당시의 역사뿐만 아니라 당시의 병사들도 다양한 시점으로 분석되고 또 해체된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주제의식을 뒷받침하는 플롯 구조는 자못 흥미롭다. 아니, 지극히 놀란 감독답다. 작품의 플롯은 덩케르크 해안에서 구조를 기다리는 병사들의 일주일(해변)/ 병사들의 구조 작업에 동참한 민간 어선 선장들의 하루(바다)/ 독일군의 폭격기를 제지하는 영국군 전투기 조종사들의 한 시간(하늘)으로 구성된다. 세 가지 플롯은 동일한 사건을 기반으로 하되 플롯마다 각기 다른 메인 캐릭터의 시점에서 사건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이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놀란 감독은 플롯을 쉴 새 없이 상호 교차시키는 전략을 구사한다.   

 <덩케르크>의 플롯 구조는 관객들로 하여금 당시의 상황을 다양한 층위의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서사적 장치가 된다. 곱씹어봐야 할 부분은 관객의 시선을 대변하는 작품 속 시선의 주체가 모두 보통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주제의식이 이토록 뚜렷하니 작품의 서사 진행 역시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명확한 주제의식과 맞물려 <덩케르크>는 무엇보다 성공한 감동 실화라는 점에서 이미 감정적 결말을 끌어안고 서사를 시작하는 셈이다. 그러나 <덩케르크>의 핵심은 결말이 아닌, 과정에 있다.

 놀란 감독은 보통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보통사람 = 선한 사람'이라는 정형화된 문법을 구사하지는 않는다. <덩케르크>에서 보통사람이란 그야말로 온갖 인간군상이다. 선함과 악함, 극복과 좌절 모두 보통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될 수 있다. 영국군 구조함에 승선하려는 프랑스군에게 자국민만 탈 수 있다며 거친 말들을 쏟아내는 영국군의 '이기심'도, 구조함이 침물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탈출을 미뤄가며 갇혀있는 영국군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는 프랑스군의 '이타심'도 모두 보통사람의 지칭어다.


"내가 죽는 것보다는 나아"
"불공평하잖아
"생존은 불공평한 거야"
"아니, 생존은 공포이자 탐욕이고 본능을 농락하는 운명의 장난이지"


 극명한 대립항의 제시 외에도 놀란 감독은 생존을 위해 인물들이 대치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간군상의 명암을 돋보이게 만든다. 독일군의 총격으로 어선에 구멍이 뚫려 물이 새고 있는 상황, 어선이 뜨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내려야만 한다. 죽어야 할 이유가 하등 없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죽어야만 하는 난제 속에서 이들 집단 아니, 주류가 선택한 방법은 '배제'다. 주류는 '영국군이 아닌, 프랑스군이기 때문에', '프랑스군을 옹호했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독일군의 총격으로 죽을 것이 분명함에도 두 사람을 강제로 어선에서 내리게 한다.


놀란 감독은 보통사람들이 빚어내는 '연대'의 힘과 기적을 믿는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놀란 감독의 작품답게 <덩케르크>에서도 여전히 딜레마는 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작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뤄진다. 배제된 두 사람이 어선 밖으로 밀려나기 직전, 기적적으로 어선이 다시 떠오른다. 딜레마가 너무 쉽게 풀려버렸다. 딜레마를 꼴대로 꼬아서 관객들이 선택 장애를 겪도록 만드는 놀란 감독 치고는 의외의 행보를 보여준 셈이다. 놀란 감독이 딜레마에 대한 욕심을 포기하다니. 이에는 서사 구조가 워낙 복잡해 러닝 타임을 길게 끌 수 없는 시간에 대한 한계도 일부 영향을 미쳤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따로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생존'이라는 작품의 주제의식이자 결론에 최단거리로 도달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희생'이라는 방지턱을 넘어야 한다. <덩케르크>에는 '등가교환의 법칙'이 존재해서 누군가의 생존은 누군가의 희생과 반드시 맞교환된다. 해변 플롯이 조난자(생존)의 시선을 대변한다면, 하늘·바다 플롯은 구조자(희생)의 시선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놀란 감독은 타인들의 삶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죽음 속에 내던졌던 이 평범한 보통사람들을 숭고하게 표현하는데 치중한다.


"아빠. 그러다 엔진 과열돼요. 추락할 때 낙하산 안 보였어요. 탈출 못했어요. 죽었겠죠. (포기하세요)"
"(화를 내며) 다 들었어 피터. 하지만 만약 살아있다면? 우리가 구해줘야 해"

 

  선장이 구조에 나선 이유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누군가 구해주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 하나였을 뿐이다. 놀란 감독은 이와 같은 개인의 희생을 '연대'라는 가치를 통해 완성시킨다. 독일군의 폭격이 쏟아지는 가운데 덩케르크에서 수천 명이 넘는 병사들을 태우고 영국으로 향하는 대형 구조함과 덩케르크로 향하는 선장의 어선이 마주치는 씬이 있다. 선장의 어선에 태울 수 있는 인원은 50명 채 되지 않는다.

 적진으로 향하는 선장의 어선은 위대하지만 한편으로는 '선장 한 개인의 희생이 얼마나 의미가 있겠어?'하는 의구심도 들게 한다. 그러나 그 개인이 수백 명이라면? 놀란 감독은 말미에 수백 척의 민간 어선이 덩케르크에 도착해 병사들을 구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통사람들을 구하기 위한 보통사람들의 연대는 상투적이면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기어코 뭉클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등가교환의 법칙에 따라 이들의 생존을 위해 누군가는 희생돼야만 했다. 놀란 감독은 역사 속에서 희생된 이들을 잊지 않는다.


<덩케르크>는 보통사람들의 용기와 희생에 대한 놀란 감독의 찬사다 [사진 출처: 다음 영화]


 선장의 아들과 덩케르크로 향하는 선장의 항해를 돕던 17살의 조지는 구조된 병사의 선장의 실랑이를 말리던 중 머리를 심하게 부딪쳐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다. 선장의 아들은 영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언론사에 그런 조지의 사연을 미화해서 투고했고, 조지는 다이나모 작전의 영웅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된다. 놀란 감독을 왜 조지를 영웅으로 만들었을까. 희생을 수치화할 수는 없지만 작전에 기여한 정도로만 판단한다면 하늘 플롯에서의 시점을 맡은 전투기 조종사 파리어야말로 영웅에 적합하다.

 덩케르크 해안가에 있는 병사들과 구조함을 독일군 폭격기로부터 수차례 구한 것은 파리어였다. 뿐만 아니라 파리어는 본국으로 귀환할 연료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연합군들을 지키기 위해 망설이지 않고 독일군 폭격기 레버를 당긴다. 독일군 폭격기는 격추됐지만 연료 부족으로 파리어는 독일군의 점령지에 착지하게 되고 포획당하며 끝을 맞이한다. 파리어의 이야기가 더 영웅적 서사에 걸맞았음에도 놀란 감독이 영국인들로 하여금 조지를 영웅으로 믿게 한 까닭은 조지가 파리어보다 보통사람의 표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드라마틱한 사연도 없고 그렇다고 특별한 능력조차 없는 조지는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누구보다 평범한 보통사람이다. 놀란 감독은 조지를 영웅으로 기림으로써 어디에서 어떤 역할을 했건 당시, 덩케르크에 있는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 삶의 일부를 바친 모든 평범한 보통사람들에 대한 존경을 표한다. <덩케르크>는 놀란 감독이 자신의 필모그래피에 세운 보통사람들의 희생과 연대를 기리는 기념비인 셈이다. 실화 기반에서 오는 설득력과 놀란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단단하게 결합돼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덩케르크'의 이야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이야기 중 하나"

-놀란 감독, 2017년 8월 9일 시네마 카펫 닷넷과의 인터뷰 중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도 후퇴가 끝끝내 부끄러워 얼굴조차 들지 못했던 병사들이 5년 후, 그대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투입돼 세계 2차 대전의 승리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에 더해 연합군이 덩케르크에 포위됐을 당시, 독일군이 충분히 연합군을 괴멸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히틀러가 진군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점 역시 풀리지 않는 흥미로운 사실 중 하나. 이처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덩케르크의 이야기는 놀란 감독의 시선으로 다시 쓰임으로써 기려지고 또 기억된다.  




사람 역시 세월과 함께 변해가는 것일까. 놀란 감독의 작품 세계에서 세상은 선과 악 그리고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어두컴컴한 곳으로 묘사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덩케르크>에서도 세상은 여전히 혼란스러운 곳으로 묘사되지만 놀란 감독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처럼 그 끝에 일말의 희망과 가능성을 남겨놓는다. 직전 작품인 <인터스텔라>(2014 作)에서도 이와 같은 현상을 목격할 수 있는데 또, 그 직전 작품인 <인셉션>(2010 作)에서는 볼 수 없던 현상이었다. 사소하면서도 급격한 변화라고 해야 할까. 여전히 놀란 감독 작품 특유의 음울함을 좋아하지만 그가 변했듯, 이제는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 역시 변해야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것은 그래서다.        


정식 연재(PART 1): http://www.lunarglobalstar.com/news/articleView.html?idxno=22534


정식 연재(PART 2): http://www.lunarglobalstar.com/news/articleView.html?idxno=2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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