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토 Mar 17. 2023

에드워드 양, <하나 그리고 둘> 단평

(무비토끼 시리즈)구름에서 내리친 번개, 카메라에서 번쩍인 플래시 라이트


풍선 수만큼 많은 사람들의 머릿수




 이들의 아파트에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양양이 틀어박힌 화장실에서도, 복도에서도, 방에서도, 온갖 층간소음이 침묵을 방해하기 시작한다. 이런 곳에선, 자기 마음대로 죽을 수조차도 없다. 도시에서는 모두 그렇다. 혼자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시간조차 온갖 네온사인이 의식에 수를 놓는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타인과 함께 할 수밖에 없는데, 알 수 없는 세계의 법칙 때문에 항상 그들과는 엇갈리기 일쑤이다. 영화에서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전화도, 우정도, 사랑도 서로를 빗겨서 간다. 과학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서로 같은 ‘지금’을 공유하지 못한다. “말은 미끄러지고, 행동은 엇나간다.”(신형철) 진심을 전할 수도 진실을 전할 수도 없는 세계 속에서 대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뭐 달리 방법은 없다. 계속해서 진심/진실을 이야기하는 수밖에. 그 과정 속에서 도구가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모든 도구가 그렇겠다만, 카메라는 필연적으로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도구다. 카메라는 항상 피사체와 관계짓고 있다. 무언가를 포착하지 않는 카메라는 그저 고철일 뿐이다. 


 구름에서 내리친 번개는 물과 만나 아미노산(생명)을 만들어냈다. 카메라에서 번쩍인 플래시 라이트는 피사체와 만나 무엇을 만들어내는가. 양양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삼촌이 볼 수 없는 삼촌의 뒤통수. 세계의 이면을 만들어 낼 것이다. 카메라는 절대 현실을 재현하는 도구가 아니다. 카메라는 현실을 잘라내어, 현실의 뒤통수. 현실 속에 잠재되어 있는 진실을 드러내는 도구이다. 이것은 마술도, 속임수도 아니다. 단지 그 순간의 존재를 우리가 알게 될 뿐이다. 그것을 아느냐 모르느냐는 중요한 문제이다. 어린 영화인이여, 아니 어린 세계인이여, 카메라를 멈추지 말도록 하자. 사실을 카메라에 포착해 3배의 인생을 살도록 하자. 아니, 사실 이제 생과 사의 문제는 중요한 게 아니다. 카메라에 담긴 사실은 이미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된다는 진실을 알려주고 있지 않는가.   





작가의 이전글 <스즈메의 문단속>에 앞서 다시 한번, <너의 이름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