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예상할 수 있는 반응은 딱 두 가지이다. 상대방도 그의 열성팬이거나, 혹은 누군지 몰라 되묻거나. 그를 모를 수는 있지만 그의 작품을 딱 한 편만 봤다고 하는 사람은 못 봤다.
나는 호러물이나 고어물을 싫어한다. 내 돈 주고는 절대 안 본다. 무섭고 두려운 감정을 갖는데 돈까지 지불해야 하는 건 너무 억울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액션, 누아르물의 경우 싫어하지는 않지만 보기 전에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간이 콩알만 해서 누군가를 후려 패거나 총이나 칼로 난도질하는 장면을 보기가 겁이 나는 탓이다. 잔인함을 넘어 잔혹한 영화들을 보고 나면 재밌다기보다는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한 편을 해치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는 달랐다. '이게 뭐지?'싶은 마음으로 다른 작품을 보고 또 보고, 그러다 모든 작품을 봐버렸다. 액션, 누아르 물을 즐겨보지 않는 내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그의 작품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타란티노 감독과 그의 영화에 대해 쓴 글은 브런치에도 많고 블로그에도 많고 여기저기에 많다. 그런데 읽다가 보면 그 글이 그 글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지금부터 나는 그가 감독한 영화 9편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을 기록하기 위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가 느낀 만큼, 아는 만큼만 써보려 한다.
<저수지의 개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잔인하기 짝이 없는데 웃기기도 짝이 없는 장면이다. 경찰의 귀를 자른 미스터 블론드가 잘린 귀에 대고 "Hey, What's going on?(어이, 내 말 들려?)"이라는 대사를 한다. 'stuck in the middle with you'라는 신나는 곡에 맞춰 춤을 추다가 벌어진 일이라 더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마지막에 다룰 타란티노 감독의 다큐멘터리에서 미스터 블론드 역할을 했던 마이클은 이 장면에 대해 본인이 춤출 수 있을만한 배경음악을 스스로 선곡했으며, 대본대로라면 자른 귀를 바로 던져버려야 하는데 애드리브로 귀에다 말을 걸었다고 회상했다. 이 외에도 여섯 명의 주인공이 영화 속 유일한 의상인 슈트와 구두를 각자 준비해왔다는 점, 이 와중에도 마이클은 구두가 없어 카우보이 부츠를 신고 촬영했다는 점 등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여럿 있었다.
<저수지의 개들>은 타란티노의 첫 번째 작품이다. 개봉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모두가 이 영화를 두고 입을 모아서 스타일리시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적어도 촌스럽지 않기 때문일 거다. 똑같은 등장인물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1시간 30분 내내 떠들어 대는데 그게 또 눈을 못 떼게 재밌다. 작품이 탄생한 약 20년 전에도 범죄물이나 오락물은 많았다. 그들과 <저수지의 개들>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은 타란티노의 '대사'다.
전반부에서는 말 그대로 의미 없는 대화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러다 후반부로 넘어가게 되면 캐릭터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건이 벌어지는 상황에 몸을 맡기고, 관객들은 캐릭터들과 함께 그 상황에 빠져 첩자가 누구인지 추리하기 시작한다. 극 초반부터 쌓아 올린 각 캐릭터에 대한 이미지 조각들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보통의 영화들이 캐릭터를 소개하는 방법은 정해져 있다. 국내 범죄 영화 <도둑들>을 예로 들어보자. 뽀빠이, 펩시, 씹던 껌, 예니콜 등 아예 캐릭터들을 처음부터 별명으로 부른다. 이는 <저수지의 개들>과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저수지의 개들>에서 캐릭터들에게 미스터 화이트, 미스터 브라운, 미스터 핑크 등의 별명을 붙인 이유는 단순히 편의와 신분 보장을 위해서이다. 캐릭터들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도둑들>의 경우에는 주고받는 대사 랠리를 통해 자신, 혹은 타인이 인물의 성격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도록 한다. 예니콜(전지현)과 펩시(김혜수)가 나눈 "근데 왜 별명이 펩시 세요?", "톡 쏘는 게 성격이 X 같은가 보지."와 같은 대화가 기억이 난다. <저수지의 개들>에는 일방적으로 통보받은 별명에 이의를 제기하는 장면은 있어도 왜 그 별명을 부여했는지 설명해주는 장면은 없다.
우리가 영양가 없이 주고받는다고 생각했던 헛소리들을 통해 타란티노 감독은 은연중에 본인의 캐릭터들을 소개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헛소리는 <저수지의 개들> 이후에도 계속되어 이제는 없으면 섭섭할 그만의 트레이트 마크가 되었다.
<펄프 픽션>은 '무뷰어의 50 문답'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이 오프닝과 엔딩씬이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 중에 하나다. 사실 <펄프 픽션>을 보기 전에는 쿠엔틴 타란티노가 누구인지조차 몰랐다. 나는 <가타카>와 '비포 시리즈'에 출연한 배우 에단 호크의 팬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잘생긴 남자는 누구랑 결혼했을까 봤더니 우마 서먼이라는 배우를 알게 됐고, 왜 이혼했을까 봤더니 쿠엔틴 타란티노라는 감독을 알게 됐다. 그리고는 그들이 처음으로 합을 맞춘 <펄프 픽션>까지 보게 됐다.
<펄프 픽션>에서 가장 화제가 된 트위스트 댄스 대회 장면은 나의 뇌리에 너무나도 강하게 남은 나머지 있지도 않은 신랑을 만들고, 결혼식에서 위의 장면을 재연하며 춤을 추는 상상을 하게 했다. 두 번째로 봤을 때는 이 장면만 다섯 번 넘게 돌려봤을 정도다. 우마 서먼과 존 트라볼타 배우는 둘 다 180이 넘는 장신이라 그런지 춤을 설렁설렁 추는 것 같은데도 포스가 남다르다. 특히 빈센트 역할을 맡은 존 트라볼타는 어느 배우와 붙여 놔도 환상적인 케미스트리를 자랑하는데, 한없이 진지한 표정의 그가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웃기다. 결론은 우마 서먼 때문에 봤지만 존 트라볼타에게 반하게 되었다. 뮤지컬 영화 <그리스>에서 봤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펄프 픽션>은 타란티노 감독의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귀보다는 눈을 즐겁게 하는 볼거리가 많은 영화다. 타란티노 감독 특유의 유머를 좋아한다면 러닝타임 내내 웃을 수도 있다. 빵 터지는 웃음보다는 낄낄댈만한 웃음 포인트가 계속해서 나온다. <펄프 픽션>은 'F word(F로 시작하는 욕)'를 가장 많이 사용한 영화로도 알려져 있는데 그 횟수는 무려 257회에 달하며, 대부분은 앳된 얼굴의 사무엘 잭슨의 입에서 나온다. (나는 영화제에서 이 문제를 맞혀 시사회 티켓을 받았다.) 또한, '싸구려 펄프를 엮어 만든 잡지'라는 뜻을 가진 <펄프 픽션>은 영화 제목처럼 이야기 순서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렇기에 늘어지는 장면이 없이 모든 순간이 자극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기억하는 한 <재키 브라운>의 '재키 브라운'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있고 섹시한 흑인 여성 캐릭터다. 재키 브라운을 연기한 팸 그리어는 '블랙스플로이테이션(Blaxsploitation; 흑인 제작자들이 흑인 배우들과 함께 펑크, 소울 음악을 사용해 만든 새로운 영화 장르)' 당시의 흥행 이후 대중들로부터 거의 잊혀져 가고 있었지만 타란티노의 <재키 브라운>으로 재기에 성공한다. 그는 원작 소설인 '럼 펀치'에서는 재키 브라운의 역할이 백인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팸 그리어를 캐스팅했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재키 브라운>의 가장 큰 수혜자는 캥거루 형태의 로고를 가진 헤드웨어 브랜드 '캉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1세기에 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나도 팸 그리어와 사무엘 잭슨이 내내 쓰고 나오는 캉골 베레모를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당시에는 오죽했을까. <재키 브라운>이 개봉한 1997년, 그때만 해도 캉골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가 아니었다. 그러나 타란티노 영화 속 두 주연 배우의 스타일리시한 착장이 불러온 파급 효과와 흑인 공동체와 연관된 브랜드 스토리를 배경으로 캉골은 90년대 후반과 00년대 초반에 패션계에서 정점을 찍을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사무엘 잭슨의 원색 패션은 내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했다.
<재키 브라운>은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들 중 가장 청순한 영화다.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러브라인도 있으며,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정도도 가장 덜하다. 마지막에는 잔잔한 여운마저 남는다. <저수지의 개들>과 <펄프 픽션>의 연이은 흥행을 통해 타란티노 감독은 대중들이 자신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지에 대해 확실히 알았을 것이다. 분명히 다음 작품에 대한 어느 정도의 부담감이 있었을 텐데도 그는 겁도 없이 <재키 브라운>을 내놓았다. 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가장 많이 갈리는 작품이지만 나에게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극호'였다.
<킬 빌>은 유일하게 보다가 포기한 타란티노 영화다. 간호사 복장을 한 대릴 한나가 우마 서먼을 죽이러 가면서 휘파람을 부는 장면, 복수를 위해 찾아간 첫 번째 상대와의 결투 중 그의 딸아이가 등장하면서 벌어지는 장면 등 말로만 듣던 유명한 장면들을 실제로 보는 것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그러나 한 시간쯤 봤을까. 혼자서는 끝까지 볼 엄두가 안 나서 정지 버튼을 누르고야 말았다.
내게는 보편적인 타란티노 영화에서 로맨스를 더한 <재키 브라운>보다 웃음기를 빼버린 <킬 빌>이 훨씬 낯설게 느껴졌다. <킬 빌> 시리즈는 타란티노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빠질 수 없는, 빠져서는 안 되는 작품으로 꼽히지만 만약 그가 내놓은 다른 작품이 모두 <킬 빌> 같았다면 나는 더 이상 그를 궁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특유의 B급 정서와 블랙 유머가 폭력성을 중화시켜주었기 때문이다. <킬 빌>시리즈가 작정하고 잔인해진 덕분에 나에게는 아직 보지 않은 타란티노 영화가 두 편이나 남았고, 나는 이를 아직 뜯지 않은 선물쯤으로 여기고 있다.
'잔인한 건 싫은데 타란티노 영화는 좋아 ②'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개봉한 타란티노 감독의 나머지 다섯 작품과 함께 그에 대한 다큐멘터리 필름 <QT8: THE FIRST EIGHT>을 다룰 예정이다.